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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완 Aug 30. 2020

나의 탄생화

당신의 탄생화


  탄생화라는 말을 알고 있나. 이는 한 생명이 태어난 애틋한 날을 꽃으로써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는 나는 문득 나의 탄생화가 무척이나 궁금해져, 내가 태어난 날인 5월 12일의 탄생화를 황급히 찾아보았다. 그윽한 봄 향기를 머금고서 적지 않은 이들의 시선을 단숨에 앗아가는 라일락. 그 꽃말은 ‘사랑의 ᆨ’이라고 한다. 나의 탄생화가 ᅧᆼ소 가장 좋아한다 여겼던 봄꽃이면서도, 품고 있는 꽃말 또한 내가 가장 중요시하는 감정이라는 게 퍽 신기할 따름이었다. 역시 인간의 삶 중 팔 할은 정해진 운명에 의해 꾸려진다고 했었던가. 나는 늘 봄이면 심경에 많은 변화가 이ᅥᆻ고, 대부분의 날을 사랑에 황홀해하거나 아파하는 것으로 지나 보냈다.
  새로운 사랑이 싹을 틔울 때마다 나는 다시 태어난다.
  내 탄생화와 그 꽃말을 확인하고 난 후에 가장 먼저 속으로 깊게 읊조린 말이다. 실로 나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때면 ᅥᆫ혀 다른 삶을 시작한 기분에 휩싸이곤 한다. 정말이지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그 탓에 아직 아무런 가르침을 얻어내지 못한 아이처럼 작은 공기의 움직임에도 온 생이 뒤흔들린다. 물론, 이제는 그러한 사랑의 기운을 온ᄌ히 즐기는 법을 조금씩 ᆯ아가고 있기는 하나, 완전히 그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있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무리인 듯하다.  사랑이라는 감정에는 아주 섬뜩한 독기 같은 이면이 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을 도지 정신 차릴 수 없게끔 만들어 놓고는, 그 틈을 타 사랑 외의 다른 감정을 완전히 재기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망가뜨려 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꽤 영리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사랑과 그 외의 감정 모두 최상의 컨디션으로 끌어올리는 일을 쉽게 이루어내지만, 나처럼 한번 사랑에 빠지면 미친 사람처럼 그 기분만 좇는 사람인 경우에는, 품었던 사랑을 잃는 순간 마지막 들숨을 잃는 것과 같은 공황 상태에 빠지기 마련이다.   때 묻지 않은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허황된 꿈을 자주 꾼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만, 어쩌면 내가 날 때부터 추구해왔을지도 모르는 사랑을 끝끝내 이뤄내고야 말겠다는 고집만큼은 포기할 수가 없다. 올해 여름에는 그 사람이 꽤 청초한 자태를 뽐내는 싹을 하나 틔워주었으니, 이것을 최선의 노력을 다해 가꿔내는 것은 나의 몫이리라. 이듬해 봄에 또 한 번의 라일락꽃이 만개할 때에, 그것을 한 아름 꺾어다 그 사람 손에 쥐여주며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까.
  네가 나의 마지막 탄생화이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내 인생에 더이상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나에게만 보이는 무언가를 잡기 위해 헛손질을 하는 내가 없었으면 좋겠다. 그 사람이 고요한 종착지로써 나의 길고 힘겨웠던 여정을 그만 끝내주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내가 쓰는 글의 전부가 되어, 잔뜩 푸석해진 내 손을 세게 잡아주었으면 좋겠다. 지루할 틈이 생길 수가 없다는 다채로운 삶은 애초에 원한 적도 없었으니까.  문득 당신의 탄생화가 궁금해졌다. 과연 당신 또한 탄생화의 꽃말과 엇비슷한 삶을 살아왔는지가 궁금하다. 당신 그간의 삶 중 팔 할도 운명에 의해 정해진 것만 같은 날들로 꾸려져 있는지. 그렇다면, 부디 그 운명의 촉이 행복과 아주 가까이 닿아있기를 바란다. 당신은 부디 이 냉랭한 도시의 그을음 속에서도 한 움큼의 낭만 정도는 품고 살게 되기를. 당신을 떠올리면 괜스레 눈물이 나지만, 우리가 서로를 꼭 오래 보고 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지금은 무려 당신의 탄생화가 무척이나 궁금한 흐린 여름밤. 2020.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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