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9
무언가 내게 바람처럼 말을 걸어온다 해도
나는 아무런 대답을 내놓을 수 없다.
설령 그게 바람이래도. 겨울나무에 앉은 볕이래도.
하고 싶은 말이 번뜩이면 나는
무겁고도 날카로운 것에 정강이를 짓눌린 채
손가락으로 펜대를 굴리고 목청을 틔우는데
그는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서 공기 중으로 영영 사라지고야 만다.
기록할 것은 어제저녁 어머니의 마지막 말이었나.
귀담아듣지 않았으니 게워낼 것이 없어 큰일이다.
공중으로 띄운 검은 배 한 척을
도무지 닿을 방도 없는 곳까지 보내려다
그만 발을 헛디뎌 난간에 줄기처럼 매달리고 말았다.
쓰려던 것이 저 하늘 건너 먼 곳까지 손짓처럼 휙 가는데
줄지어 떠나는 그 꽁무니를 나는 눈짓으로 쫓았다.
대롱대롱. 얼마 남지 않은 듯하여 내 마지막 말을
곧 쏟아져 나올 토사물에 여러 조각으로 섞겠다.
아아, 절대 죽음과 가까이 지내지 마시라던
어머니 말씀이 이제 와 시린 발목을 잡아당긴다, 하염없이
멀어져가던 그해 여름 사랑의 배신 탓이리라.
새로운 세상 그 초입의 입꼬리에 내 수의를 걸어두고
실눈을 뜬 채 재회를 초조히 기다리는 어머니의 품을 파고들어야지.
해가 뜨고 지는 차례와는 상관없다. 졸린 눈을 위태롭게 비비며
나는 잃어버린 것이 어떤 삶인지도 모른 채 숨을 끊는다.
대롱대롱, 툭, 툭,
봄을 알리는 미지근한 비가 거꾸로 솟는다.
죽은 자의 꽁무니, 하태완
2021. 3.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