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적응의 동물

보내지 못한 답장 07

by 박탱커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박효아의 알림장>


2026년 1월 8일 목요일 / 맑음


“효아의 웃음 하나, 행동 하나가 모두 마음에 남았던 오늘의 하루를 들려드릴게요.”


오늘 우리 효아는 비닐봉지 위에 그림을 그리며 신기한 놀이 시간을 가졌답니다.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나는 비닐의 느낌이 재미있는지 두 손으로 만져보고,구겨도 보고, 효아만의 방법으로 조심조심 탐색하는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어요.


매직을 준비해 주자 원하는 색을 하나씩 골라 쓱쓱~ 자유롭게 그려보며 대·소근육도 자연스럽게 조절해 보았답니다. 좋아하는 스티커도 함께여서 더욱더 열심히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답니다.


오전과 오후 간식도 맛있게 먹었고, 특히 양파 크림수프를 아주 좋아했어요. 입을 크게 벌려 잘 받아먹고는, 기분 좋은지 찡긋 웃어주는 효아 덕분에 선생님 마음도 사르르 녹았답니다.


점심으로는 돼지고기 수육, 봄동 된장국, 브로콜리 볶음과 밥을 잘 먹었어요. 수육을 많이 먹고 좋아했답니다. 고기를 많이 먹어 밥은 조금 덜 먹긴 했지요^^


양치 후에는 내 이불로 쏙 들어가 선생님 손을 꼭 붙잡고 깊은 단잠에 들었답니다. 오늘 컨디션이 아주 좋았고, 선생님과의 놀이도 밝고 씩씩하게 잘 참여해 주어 더욱 기특했어요. 오후에도 기분 좋게, 아주 활발히 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답니다.


오늘도 웃음 가득한 하루를 보낸 효아~! 집에서도 따뜻한 저녁 시간 보내시고, 화요일에 씩씩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만나요.


효아 기저귀도 보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제는 엄마의 부재를 느끼며 등원 준비를 하고 아빠 품에 안겨서 등•하원을 하는 일상이 제법 익숙해진 목요일입니다. 아직까지도 아침에 졸린 눈을 비비며 기상을 하게 되면 가장 먼저 "엄마~엄마~"를 외치기는 하지만 대견하게도 옆에 있는 아빠를 바라보고 나면, 떼를 쓰거나 난리를 피우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아빠 품에 폭~하고 안겨서 찡끗 눈웃음을 날려주는데, 그 순간이 바로 요즘 제 하루에서 가장 따뜻하고 소중한 시간입니다. 요 조그만 녀석이 얼마나 기특하고 어른스러운지 모릅니다.


하지만 오히려 적응이 어려운 건 제 쪽인거 같습니다. 원래 계획은 와이프가 출근하고 효아를 등원시킨 뒤, 빠르게 집안일도 마치고 아침 햇살과 향긋한 커피 한잔으로 제 일을 시작하며 갓생 워킹대디의 감성을 내보는 것이 제 목표였으나 이게 웬 말입니까. 부시시한 효아를 씻기고 먹이고 입힌 뒤 부랴부랴 등원을 시키고 나면 이미 제 체력의 반이 날아가 있더라고요. 등원 전쟁을 치룬 뒤에 널부러져 있는 장난감들과 책들을 정리하고 빨래를 돌린 뒤에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며 청소기를 켭니다. 그리고 설거지까지 모두 마치고 나면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기 마련이죠. 그렇게 대충 아점을 떼우고 나면 비로소 긴장이 풀리며 새벽부터 효아의 잠투정에 시달렸던 고단함이 고개를 들고 스르륵 눈이 감겨버립니다. '30분만 눈 좀 붙이고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소파에 기대었다가 눈을 뜨게 되면 어느덧 효아의 하원 시간은 코 앞으로 다가와 있더군요.


하원 뒤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효아에게서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으니까요. 아니 떼고 싶어도 떼지 못한다는 표현이 더 적확하겠네요. 항상 책장에서 만만한 책 하나를 뽑아 들고 저에게 와서 "므아므아~"하면서 읽어달라고 건냅니다. 오늘도 곤충 책을 보며 매미와 파리 흉내만 오만 번은 한 것 같아요. 그렇게 효아와의 놀이 시간에 지쳐갈 때쯤이면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옵니다. 와이프가 전 날 준비해 놓은 대로 밥과 국, 반찬을 데운 뒤에, 흑백요리사에 나오는 쉐프와 다름 없는 마음으로 최대한 먹음직스럽게 플레이팅을 합니다. 손을 씻기고 턱받이를 세팅한 다음에 아기 의자에 앉히고 나면 마치 안성재 앞에 서는 흑수저 쉐프의 마음이 되버려요. 하지만 역시나처럼 오늘도 잘 안먹었습니다. 그런데 어린이 집에서는 양파 크림수프를 잘 먹는다고요? 돼지고기 수육과 봄동 된장국, 브로콜리 볶음을 좋아한다고요? 허허허...전 아직도 효아 밥 먹이는 스킬이 많이 부족한가 봅니다. 노력해봐야죠.


정신없는 나날들이지만 그럼에도 효아로 가득한 요즘의 하루들이 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합니다. 시간이 지나서 효아가 훌쩍 커버려 "아빠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라고 외치며 방문을 닫는 날이 오게 되면, 오늘 같은 하루들을 떠올릴 것 같아요. 너를 알아가기 위해, 너와 함께하기 위해 적응했어야만 했었던 시간들을 말이죠.


효아의 기저귀는 내일 챙겨 보내겠습니다. 월요일까지 휴가를 다녀오신다고 아내에게 들었어요. 즐겁고 행복한 시간 보내셔요!


오늘의 답장도 선생님께 닿지는 않겠지만,

오늘의 효아는 이렇게 남겨봅니다.






작가의 이전글아내의 복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