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연말이다. Thanksgiving(추수감사절)부터 시작해서 많은 매장들이 세일을 써 붙이기 시작하고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기 위해 많은 주택들이 색색깔의 장식을 둘러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뿜어내는 거리들이 많아진다. 아이에게도 이 기간은 매일매일이 축제다. 미국에 온 후로 산타 할아버지와 그의 요정들, 루돌프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아이는 그분이 벽난로 옆에 선물을 놓아두고 가시는 순간만을 고대하며 지내고 있다. 처음으로 예쁘고 큰 크리스마스트리를 정성스럽게 만들었고 거기에 큰 주머니 양말도 걸어두었다. 올 한해 얼마나 착한 어린이였는지 알려드리기 위해 영어로 정성스레 산타 할아버지께 편지도 써서 놓아둠으로써 그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마치고 이브에는 잠이 든다.
크리스마스 아침, 아빠가 조심스레 와서 아이를 깨운다.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가신 것 같아!' 아이는 아직 졸려서 비몽사몽 한 와중에도 벌떡 일어나 아빠의 손을 잡고 벽난로로 향한다. 진짜다. 벽난로 앞에는 어린이용 골프채 세트와 편지가 놓여있다. 산타 할아버지는 만나서 반갑고 내년에 또 보자는 내용의 편지와 멋있는 필기체 사인을 남긴 채 홀연히 떠나셨다. 아이의 편지는 가져가신 걸 보니 산타 할아버지와 비밀 펜팔 친구가 된 느낌이다. 아이는 그 다음 해 열심히 엄마 아빠를 따라 골프 연습장에 다니며 산타 할아버지가 주신 골프채를 사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가족은 다른 집으로 이사를 했다. 아이는 걱정이 되었다. '산타 할아버지가 나 이사한 거 모르시면 어떻게 하지? 올해도 만나자고 하셨는데.' 엄마 아빠는 산타 할아버지는 한번 만난 어린이는 까먹지 않고 꼭 찾아오실 거라며 아이를 안심시켜주었다. 다시 찾아온 이브 날 밤, 아이는 눈에 힘을 주어 떠가며 잠을 쫓고 있다. 산타 할아버지를 직접 만나서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와 함께 편지를 전달하고 싶지만 잠을 이기긴 힘들었고 결국 아이는 산타 할아버지를 보지 못한 채 잠에 들었다.
한밤중이었다. 갑자기 지붕에서 '쿵쿵'하는 큰 소리가 나서 아이의 잠을 깨웠고 엄마 아빠도 다 거실로 나왔다. 아이는 산타 할아버지의 썰매가 지붕에 내려앉는 소리가 아니냐며 밖에 나가서 확인을 해보자고 했다. 하지만 세 가족이 밖으로 나왔을 때 거짓말처럼 밖은 고요했다. 혹시 쓰레기차가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모든 쓰레기통들은 그대로 있었다. 지붕 위도 완전히 다 볼 순 없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이상한 느낌만 가득한 채로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와 보니 산타 할아버지는 아직 다녀가시지 않았다. 선물도 없었고 아이의 편지도 그대로 있었다. 아이는 거실에 앉아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렸다가 썰매를 우리 집 지붕에 주차하셨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다시 쏟아지는 졸음에 지붕에서 난 큰 소리의 정체는 밝히지 못한 채 잠에 든다.
크리스마스 아침이 밝았다. 아이는 좋아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며칠 전 쇼핑몰에서 보았던 큰 루돌프 인형이 벽난로 앞에 앉아있었던 것. 엄마가 갖고 싶으면 산타 할아버지한테 기도하랬는데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 비록 지붕에서 난 소리의 미스터리는 풀지 못했지만 아이는 이 모든 상황이 기적 같았고 분명 산타 할아버지의 썰매 소리였을 거라 확실하게 믿게 되었다. 다행히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12살이 되던 해까지 산타 할아버지와의 교신은 이어졌다. 산타 할아버지는 마지막 선물로 영어사전을 남겨두고 편지로 이별을 고했다. 이제 청소년이 되니 산타 할아버지는 더 어린 친구들을 만나러 가겠다며 나중에 아이가 어른이 되어 애기를 갖게 되면 다시 만나자며. 모두가 산타 할아버지는 가짜라 했지만 아이는 그가 남긴 정성스러운 편지와 멋진 사인을 보며 산타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끝까지 간직하고 믿기로 한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아이는 중2의 여중생이 되었다. 어느 날 문득 테이프가 필요해서 아빠의 서랍장을 뒤지고 있을 때였다. 검은 상자가 하나 있어서 열어보게 된 아이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상자 속에서는 여러 장의 종이가 곱게 접혀있었다. 첫 번째 펼친 종이는 산타 할아버지의 사인을 연습한 종이였다. 두 번째는 산타 할아버지의 그 간의 편지들을 퇴고한 종이가 나왔다. 세 번째는 아이가 예쁜 그림까지 그리며 산타에게 보냈던 편지들이 나왔다. 중2, 14살이면 이제 충분히 알고도 남을 나이지만 아이는 엄청난 배신감이 들었다. '엄마! 엄마! 이게 왜 여기서 나와?!'
산타 할아버지의 실체 발견하고 눈물까지 글썽이는 중2 딸에 엄마는 잠시 할 말을 잃었지만 배를 잡고 웃으며 뭘 그런 걸로 우냐며 당연히 엄마 아빠가 꾸민 거 아니겠냐며 놀렸다. 아이는 배신감으로 가득 찼다. 산타 할아버지한테 배신감을 느껴야 할지 엄마 아빠한테 배신감을 느껴야 할지 몰랐지만 철석같이 믿고 싶었던 크리스마스의 동화는 그렇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깨져버렸다. '숨기려면 제대로 숨겨 놓던가!...'
30살이 된 아이는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지붕에서 나던 쿵 소리는 도대체 뭐였을까. 그 부분까지는 분명 엄마 아빠가 기획한 크리스마스는 아닌데. 아이를 위해 몰래 선물을 준비하고 Santa의 필기체 사인까지 연습하던 크리스마스 조작단의 완벽한 속임수를 응원하기 위해 일어났던 작은 기적은 아니었을까. 비록 추억과 배신감을 같이 남긴 결말이었지만 아이는 반드시 크리스마스 조작단의 계보를 이어 산타 할아버지를 만나 훗날의 자녀들에게도 동화 같은 세상을 선물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