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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희 Oct 15. 2020

나의 언행은 나에게 돌아오더라

생일 축하 메시지

만 30살의 생일을 혼자 맞이했다.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고 목요일이었던 생일을 포함하여 금요일도 휴가를 내고 주말까지 3박 4일을 푹 쉬기로 했다. 나를 위한 선물로 올해는 재택근무로부터의 휴가를 선택한 것이다. 코로나로 밖에 나갈 일이 없으니, 옷을 사는 것도, 갖고 싶은 물건을 사는 것에도 큰 관심이 사라져 버렸다. 그저 집에서 나를 위한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렇게 나 혼자 보내는 시간으로 청소하고, 운동하고, 맛있는 거 먹고, 넷플릭스나 실컷 보겠지?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일날은 생각보다 훨씬 꽉 찬 하루를 아니 거의 며칠을 선물해 주었다.


생일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이 있는 것 같다. 생일을 늘 조용히 가족과 보내는 편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하루일 뿐이니 큰 의미를 두지 않는데 그래도 생일 전날 밤은 평소보다 신이 나서 잠이 잘 오질 않는다. 한국보다 7시간 늦은 곳에서 살아가는 나에게 생일 축하 문자는 생일 전날 오후 5시부터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일 아침 7시에 눈을 뜬 순간부터 혼자 조용히 있을 것 같았던 생일은 문자에, 통화, 그다음 영상통화로 이어져 오후 느지막이에 나 보려고 찜해 두었던 넷플릭스 시리즈를 정주행 할 수 있었다. SNS로 어떻게 살아가는지 눈팅만 하던 친구들에게 서도 연락이 오니 온라인상이었지만 큰 파티에서 나의 사교성을 최대한으로 끌어내어 많은 이들과 만난 느낌이었다. 휴가를 내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덕분에 너무나도 그리운 친구들과 오랜만에 실컷 수다를 떨었으니.


평소보다 더 많은 축하를 받은 기분이라 얼떨떨했지만 기분은 정말 좋았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다른 사람들의 생일을 나도 엄청 챙겼었다. 그만큼 나도 챙김을 받고 싶었던 것 같고, 친한 사이에는 서로 열심히 생일을 챙겨야 한다 생각했던 것 같다. 아는 사이 정도라 해도 생일이라는 표시가 보이면 예의상이라도 축하 메시지를 남기곤 했다. 나 스스로가 생일을 다른 사람과 기념하는 것에 대한 감흥이 점점 사라져서였을까? 어느 순간부터 말뿐인 인사는 점점하지 않게 되었고 나 하나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나 잘 챙기고 살자는 생각으로 점점 바뀌어갔던 것 같다. 하지만 올 한 해 혼자 있었던 시간이 길어서였을까 평소에 비해 열 배는 넘게 울려대는 휴대폰 알림이 귀찮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 역시 진심을 담아 혹은 무심코 보냈을 생일 축하 메시지는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생일을 맞이하여 내가 나를 위해주고 있고 거기에 다른 사람들의 축하까지 더해져 더욱 기분이 좋았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축하와 감사 인사를 거의 다 나누고 휴대폰 알림이 조용해졌을 때쯤 갑자기 온 카톡 하나는 글자 하나하나 한참을 정성 들여 읽게 했다. 작년에 처음, 우연히 만난 후배에게서 받은 문자였다. 올해 받은 최고의 문자가 아니었을까.

후배의 문자


작년에 업무차 잠시 졸업한 대학을 방문하고 교수님을 뵙기 위해 연구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학생 하나가 연구실 앞에서 같이 기다리길래 심심하기도 하고 후배랑 얘기를 나누어 본 것이 5년도 더 된 일이라 궁금한 마음에 오지랖 넓게 말을 붙여 보았다. '몇 학번이에요?'로 시작된 복도에서의 가벼운 대화는 그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는 진지한 대화로 바뀌어갔고 이미 여러 진로 고민을 거쳐 사회생활을 하는 나로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진심을 다해 얘기를 나누어주었다. 20대 초반의 나에게 고학번 선배는 피하게 되는 존재였던 적이 더 많다.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고 그렇다고 고민을 털어놓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그런 아쉬움이 있는 나에게 여섯 학번이 차이 나는 이 친구와의 대화는 신선했다. 의도치 않았지만 내가 바라던 편안하게 진로 상담을 할 수 있는 고학번 선배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얼떨결에 연락처까지 주고받고 돌아섰지만, 말 그대로 그렇게 지나가는 인연일 줄 알았다.  


'잠시나마 저에게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말이 참 많이 와 닿았다. 그 친구에게도 그날의 짧은 대화는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나 보다. 가끔은 모르는 사람에게 고민을 터놓다 보면 해결의 실마리를 얻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기분이었을까? 무엇보다 내가 그저 별생각 없이 건넨 인사가 상대에게는 엄청난 의미로도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문자였다. 그 수많은 생일 축하 문자들 가운데 이 친구의 문자는 나의 하루를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었을 뿐 아니라 혼자 지내면서 많은 고민이 있던 나에게 '너 잘 살고 있어, 걱정 마'라며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위로해 주기 위해 보낸 편지 같았다.


이렇듯 내가 행하는 모든 행동과 말은 결국 언젠간 나에게 보답이든 고난이든 어떤 형태로든 꼭 돌아오는 것 같다. 그래서 참 어렵다. 혼자서도 잘 살아가야 하지만 나만 생각하고 살아가서도 안된다. 내가 무심하게 내뱉는 말 한마디가 때론 상대에게는 힘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큰 상처를 입힐 수도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꽉 찬 서른이 되어 30대를 맞이하는 2020년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 나 역시 정신적으로 힘들지만 모두가 힘든 상황에 사소한 말 한마디라도 건네어 주변을 둘러보는 사람이 되자는 다짐을 하게 하는 생일이었다. 자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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