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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희 Oct 02. 2020

잃어야 얻더라

이 시국 일기 (2)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다. 이미 재택근무를 시작한 지 6개월이 넘어가고 집순이 생활은 'New Normal'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출퇴근은 잃었지만 재택근무의 편안함은 얻었다. 6개월 통틀어서 3번 정도 사무실에 다녀왔는데 갈 때마다 느낌이 새롭다. 대중교통을 타는 것이 어색해졌고, 출퇴근을 한다는 것이 이상하면서도 사무실에서 동료들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갑자기 여러 명의 동료를 만나 수다라도 떠는 날이면 집에 와서는 녹초가 된다. 잠시 묵혀 두었던 사회성을 꺼내서 활용을 하느라 에너지가 방전되는 것이다. 그렇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도 안 하고 책상에 앉아있다가 몇 걸음 옮겨서 바로 소파로 퇴근을 하는 재택근무가 지금은 굉장히 좋다. 


반년이 힘겹게 흘러가는 와중에도 돌이켜보면 소중하게 얻은 새로운 일상들이 많다. 헬스장과 문화센터를 잃고 유튜브를 얻었다. 헬스장을 일주일에 서너 번씩 가면서 신체 단련, 요가, 복싱을 즐겼다. 하지만 헬스장은 3월부터 문을 닫았고 7월에 다시 예약제로 개장을 하긴 했지만 가고 싶지 않았다. 그 대신 나는 유튜브에 있는 요가, 필라테스, 홈트레이닝, 댄스 트레이닝 강사의 동영상을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해놓으며 체형 유지에 전념을 하고 있다. 집에서 매트 하나와 얼마 전 구매한 아령이 전부지만 헬스장을 다닐 때보다 오히려 더 열심히 한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고, 땀을 흠뻑 내고 나면 샤워실이 열 걸음 안에 있고, 책상에서 벗어나서 유일하게 활발하게 움직이는 시간이라 하루도 거르지 않으려 노력한다.


문화센터를 다니면서 배우던 합창 반도 중단되었다. 이 역시 미리 장만해 둔 분홍색 무선 마이크 덕에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마이크를 켜고 유튜브에 있는 노래방 영상들을 틀어 놓으면 금세 눈치 보지 않고 솔로곡을 질러댈 수 있는 나만의 노래방이 완성되니까.     


외식을 잃고 적금과 요리 실력을 얻었다. 식당과 카페는 전부 문을 닫았고 아무도 만나지 않으니 외식이 줄었다. 이곳은 물가가 높아서 한 달에 외식을 2-3번만 해도 저축은 힘들다. 외식비, 대중교통비 등이 굳자 드디어 저축을 할만한 재정상태를 갖추었다. 대신 장을 보러 나가는 횟수는 늘었다. 먹고 싶은 것의 레시피를 찾아 장을 보고 조리도 하면서 나를 대접해 주는 기분도 들고 무언가를 해냈다는 뿌듯함도 함께 느꼈다. 처음으로 제육볶음도 해봤고, 닭갈비, 돼지 숙주볶음, 소고기 청경채 볶음, 칼국수, 스파게티, 가지 밥, 등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요리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요즘은 백 대표님 이 나오는 프로그램은 거의 다 찾아보는 것 같다.   


출근 전, 퇴근 후 피곤함 대신 자투리 공부시간을 얻었다. 재택근무 시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면서 일상도 채워나가고 싶었던 나는 근무 시작 전 30분 정도는 공부시간으로 잡아두었다. 출퇴근을 할 때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했던 공부들을 더 맑은 정신에 할 수 있게 되었다. 일어나 자마나 책상에 앉으면 이메일보다는 그때그때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 디지털 마케팅 관련 강의를 수강하거나, 제3, 제4 외국어의 습득을 하며 작은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발전에도 도움이 되고 있지만 업무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도 도움이 되는 부분들이라 스트레스는 받지 않는 선에서 귀찮아도 하려 노력 중이다. 


여행 및 휴가를 포기하니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이 없다. 대신 사색할 시간은 많아져 새로운 취미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아직 어설프지만 브런치 작가도 신청했고 7월 말에 수락이 되었다. 지금 이 글처럼 혼자서도 잘 살자는 글을 쓰고 있고 나와 관련된 옛날이야기들도 써보고 있는데 지난날들을 돌이켜보면 참 재미있게 잘 살았던 것 같다. 늘 옆에는 가족이 있었고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어쩌면 운명은 항상 누군가와 같이 있던 나에게 제대로 나를 마주하는 시간을 준 걸지도 모른다. 여러 사회적 활동은 잃었지만 나를 얻고 있다.


현지 친구들과의 왕래는 줄어들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의 교류가 늘었다. 이곳에서도 적응하면서 5명 정도 마음이 맞는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다만 지금은 사는 곳도 다르고 개인의 삶을 꾸려가는데 더 열중하는 그들에게 나의 힘듦을 굳이 다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 부담도 주고 싶지 않았다. 반면, 밖에 나갈 수 없는 상황에서 나를 더 잘 알아주고 내가 더 잘 아는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마음이 더 많이 갔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존재만으로도 마음이 채워지는 묘한 커넥션이 있다. 특별히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정신적으로 의지가 된다. 아무도 만나지 않다 보니 그런 친구들과의 유대감이 많이 그리운 것 같다. 특히, 인생의 크고 작은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옆에서 같이 축하해 주거나 위로해 주지 못해 느껴지는 아쉬움은 내가 살면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정의 내리는데 큰 몫을 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깨닫는 요즘이다. 


이렇듯 나는 2020년은 버리는 한 해로 여기고 여러 가지를 포기했지만 New Normal의 일상을 만들어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얻었다. 많은 것을 잃어보고 나니 1년을 고민해도 답이 안 나던 내 인생에서 뭣이 중한지에 대한 답이 나왔다. 나에게는 '혼자 잘 살면서도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이 중요하다. 내 일이, 내 삶이 중요한 만큼 나는 마음 붙이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옆에 있어야 행복하다. 바뀔 수도 있겠지만 내가 더 행복한 사람이 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잣대가 될 것 같다. 지금은 그 균형이 깨져있어서 힘들지만 혼자 잘 사는 내가 돼야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이 배가 될 머지않은 훗날을 생각하면 투자 가치 있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오늘도 집순이의 자체 격리는 계속된다. 이 와중에 프랑스로, 이탈리아로, 스페인으로 휴가를 다녀온 이 나라 애들을 보면 난 더더욱 집에 박혀 있고 싶어 진다. 왠지 모르게 하반기도 덕분에 심상치 않을 것이고 이미 2차 바람은 불었다. 지구가 인간에게 내린 구금 명령을 올해는 겸허히 받아들이고 살련다.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나뿐이더라 - 이 시국 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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