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당시 근무하던 다문화 센터에서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다. 우리 아이의 출산 예정일은 3월 말이었다. 큰일이 코앞에 있었기에 더욱 큰 충격이었다. 나는 자존심이 강한 편이다. 또한 가부장적 세계 질서에 익숙한 나였기에 너무 큰 고통의 시간이었다. 앞이 막막했다. 원래 우리의 계획은 아내가 전업 주부로 가사를 전담하는 것이었다. 아니,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여자는 아기를 양육하는 것이 이상적인 일이라 생각했다. 더 나아가 그것이 “정상 가족”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갑자기 모든 일이 엉망이 되었다. 내가 “비정상”이 된 것이다.
남편으로서의 자괴감과 곧 태어날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책임감 그리고 불안한 마음이 나를 짓눌렀다. 고맙게도 아내는 질책하지 않았다. 그저 나의 괴로운 마음을 묵묵히 받아 주었다. 내가 불안감에서 조금은 여유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아내의 도움 덕분이었다. 우리는 긴 시간을 들여 대화를 이어갔다.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그리 희망적인 주제들은 아니었다. 태어날 아이에 대한 핑크빛 이야기가 아닌 암담한 현실의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출산 비용의 문제부터 산후조리원 비용의 절감 그리고 출산 후 경제적 문제들까지 하나하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내와 장시간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내린 결론은 내가 육아를 담당하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대학원 석사 과정의 학생이었다. 그동안은 직장 생활과 학업을 평행했다. ‘이 기회에 학업에 몰두하자. 오히려 기회일지 몰라.’라고 생각하며 애써 자신을 위로했다. 육아에 대해서는 1도 모르는 철부지 아빠의 이 단순한 생각과 결정은 내 인생의 모든 것을 바꿔놓는다. 그렇게 어쩌다 전업 “육아맨”의 삶이 시작되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처음 3개월은 별 무리가 없었다. 잠이 조금 부족한 것을 빼면 그런대로 할 만했다. 자투리 시간에 책을 읽고 설거지를 하면서 동영상 강의를 들었다. 한 팔로는 아이를 품에 안고 다른 손으로는 책장을 넘겼다. ‘생각보다 할 만하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아니, 오히려 육아가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그런 생각은 착각이었다. 난 중요한 한 가지 부분을 놓치고 있었다. 아내가 3개월 육아 휴직을 받았기 때문에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전업 주부의 모든 것이 아니었다. 아내가 다시 출근하기까지의 3개월 동안 내가 한 일은 설거지, 청소 그리고 빨래 정도였다. 자취 경력이 10년이 넘는 나로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나고 아내가 출근을 하면서 이야기는 달라졌다. 진짜, 리얼 육아의 시작이 펼쳐졌다.
아이들은 두 시간에 한 번씩 젖을 먹는다. 두 시간! 분유를 타서 먹였다면 조금은 시간의 여유가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아들은 분유를 먹지 않는 아이였다. 오직 모유만을 양분의 공급처로 인정하는 인정머리 없는 녀석이었다. 아내는 직장에서도 유축기를 사용해 모유를 모아 왔다. 그렇게 모인 모유들은 우리 집 냉동실에 보관되었다. 여자로서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엄마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아내는 엄마이기에 가능한 일을 용감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그렇게 모은 모유를 나는 두 시간마다 녹이고 적절한 온도를 맞춰서 아들에게 먹여야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양육자의 유일한 양육 지침서는 인터넷 정보들이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전자레인지를 사용하면 좋지 않다고 해서 꽁꽁 언 모유를 중탕을 해서 녹였다. 그러나 물 온도를 잘못 맞추면 너무 뜨거워지거나 아니면 차가워져서 아이가 다 뱉어내 버렸다.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가 뱉어내는 모유를 닦아 주며 어찌해야 할지 몰라 병원으로 뛰어간 적도 있다. 처음에는 아이에게 무슨 큰일이 생긴 건 아닌지 무섭기도 했다. 다행히 찾아간 병원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의사에게 모유의 온도를 맞추는 법을 배웠다. 육아를 하며 일어나는 돌발적인 사건들에 대해 아내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아니, 물어보면 안 되었다. 내가 무언가를 물어보면 아내는 안절부절못하며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아내도 모든 것이 처음인데 물어봐도 알 턱이 없었다.
다른 집안일을 할 여유도 없었다. 모유를 녹이고 온도를 맞추고 아이에게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 주고 씻겨 주면 다시 모유를 준비해야 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평화로운 육아는 현실의 것이 아니었다.
겨우 짬을 내어 맨밥에 김이라도 싸 먹으려 하면 아들은 일어나 울기 일쑤였다. 왜 엄마들이 양푼 비빔밥을 먹는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육아의 세계에 겁도 없이 뛰어든 나는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하지만 나의 결정을 후회할 여유도 없었다. 어떻게든 해야만 했다. 아들이 울고 있다. 마음을 다 잡아야만 했다. 그렇게 초보 아빠의 진짜 전업 육아 도전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