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육아 생활을 시작한 지 약 3개월. 그러니깐 아이가 생후 6개월이 될 지점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늘 설거지는 쌓여 있었다. 아내는 야근하고 퇴근한 날이면 늘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제야 말할 수 있는 사실이지만 아내가 야근해서 늦게 들어온 날이면 속으로는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아내가 회사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함께 한 끼의 식사도 할 여유가 없는 삶이지만 오히려 그게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그땐 그런 것을 안타까워할 여유도 없었다. 아내에게 퇴근하기 전에 꼭 전화를 달라고 했다. 아내가 퇴근해서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집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아들이 기어 다니기 시작한 시점부턴 아이가 잠들지 않으면 집안 정리가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아들의 성장을 오롯이 목도하는 일은 기쁜 일이었다.
아들이 열심히 기어 다닐 때의 일이다. 아들을 범퍼 침대에 눕혀 놓고 방을 정리하다 너무 조용해서 범퍼 침대를 돌아보았다. 아들은 그곳에 없었다. 기어 다니기 시작하자 범퍼 침대를 탈출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내가 정리한 곳으로 가서는 질서에 무질서를 부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속상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뭐냐! 이 녀석 벌써 이렇게 움직일 수 있었어?’
아들을 다시 범퍼 침대에 집어넣었다. 그리곤 안보는 척, 다시 청소하는 척하며 곁눈질로 아들을 관찰했다. 아들은 다시 기어서 범퍼에 매달려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피식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계속 곁눈질을 했다. 아들은 나의 눈치를 살핀 후 범퍼를 넘어가고 있었다. 순간 몸을 돌려 아들을 보았다. 바둥바둥하며 범퍼를 넘어서는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대견한지 나도 모르게 웃음소리와 함께 눈물이 고였다. 묘한 감정이었다. 아니, 평생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아들의 처음을 목도하는 감동은 양육자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처음으로 전업 육아를 선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아내가 퇴근한 후 아들의 “범퍼 침대 탈출 사건”을 흥분한 목소리로 설명해 주었다. 거기에는 일종의 우월감도 포함되어 있었다. “난 보았다네. 내 아들의 대탈주를! 그대는 보지 못하였지만!” 나의 흥분된 목소리와 달리 아내는 너무나 피곤한 얼굴로 “그랬구나.”라고 대답했다. 그 상황이 어디서 본 듯했다. 다만, 남자와 여자가 바뀌었을 뿐. 섭섭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내가 누려야 할 기쁨을 내가 무능해서 빼앗아 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겼다. 그것이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 이리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어 다니는 녀석이 허리를 세우고 일어설 때부터 이유식을 만들어야 했다. 역시나 인터넷을 뒤졌다. 인터넷에서는 이유식을 만드는 방법과 식재료가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거의 매일 아들과 같이 다진 고기를 사러 갔다. 아기띠를 하고 아기와 함께 장을 보고 이유식 거리를 사는 나의 모습을 힐끔거리며 바라보는 눈길들이 느껴졌다. 정육점 직원은 내가 올 때마다 같은 질문을 던졌다.
“아기 엄마는 바쁜가 봐요?”
그들은 별 감정 없이 던진 말일지 몰라도 그 말은 나의 마음에 생채기를 남겼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고기고 나발이고 빨리 그 자리를 뜨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를 위해 애써 참아야만 했다. 난 아들의 양육자니깐!
마음에 상처가 생길 때면 난 아들의 작고 부드러운 손에 나의 손가락을 쥐어주었다. 아들이 손가락을 꼭 잡아주면 어떤 상처를 주는 말도 이겨 낼 수 있었다. 그 작은 손가락이 붙잡아 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붙잡을 수 있었다. 어떤 시선도 아들이 주는 위로를, 품 안에서 나를 꼭 안아주는 그 생명력은 나를 다시 아빠로 만들어 주었다. 내가 장을 보면서 겪는 일들을 아내에겐 말할 수 없었다. 그런 말을 전달하는 것 자체가 나뿐 아니라 아내에게도 상처를 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내가 받을 상처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전히 남성성에 대한 고정관념에 스스로를 묶어 두고 있었다. 가끔은 육아를 하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마트에서 장을 보다 아들이 대변을 보면 기저귀를 갈 곳이 없었다. 요즘은 남자 화장실에도 있지만 그때만 해도 찾기 쉽지 않았다. 보통 기저귀를 가는 곳과 수유 시설이 같이 있었다. 그런 곳엔 당연히 들어갈 수 없었다. 내가 남자라서 아들이 고생하는 것 같아 늘 미안했다. 그렇지만 아들은 그런 아빠의 마음은 아랑곳 않고 웃어 주었다.
한 번은 아들의 기저귀를 갈아 주고 엉덩이를 씻긴 후 마트의 휴식 장소에서 엉덩이를 말려주다 왈칵 눈물이 났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 품에 안겨 조용하고 안락한 곳에서 기저귀를 갈고 나오는데 우리 아들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사방이 뻥 뚫린 휴게실에서 엉덩이를 말리는 것이 측은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울컥 한 그때, 아들의 환한 미소가 눈에 들어왔다. 그 미소가 다시 나를 웃게 했다. 그 미소가 다시 일으켜 세워주었다.
그렇게 준비된 식재료로 열심히 만든 이유식. 그러나 아들은 이것을 먹지 않았다. 요리 실력이 형편이 없기 때문이리라 생각했다. 결국 이유식은 아내에게 부탁했다. 아내는 퇴근 후 열심히 이유식을 만들어 주었다. 새벽까지 열심히 이유식을 만들고 있는 아내에게 고마움과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아내는 이유식을 만든 후 얼음을 얼리는 각얼음 통에 담은 후 얼려 주었다. 끼니때마다 한 토막씩 꺼내 데워주라고 했다. 그런 아내를 꼭 안고 “미안해. 미안해”를 되풀이했다. 아내는 아무런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다만, 나의 손을 톡톡 치며 가볍게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아내의 헌신이 참 고마웠다. 참 고마운데, 문제는 아들이 아내의 것도 먹지 않는 것이었다. 왜 먹지를 않을까? 고민하다 내가 이유식을 먹어 보았다. 이유식에는 당연히 소금간이 되어 있지 않다. 내가 먹어도 맛이 없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여러 이유가 적혀 있다. 음식 재료 본연의 맛을 배워야 한다든지 소금간이 좋지 않다든지 등등의 많은 이유가 나열되어 있다. 의문이 들었다.
‘정말 이게 맞나?’
‘인터넷이 내 아이의 양육자가 아니지 않은가? 왜 인터넷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정보대로 아무리 따라 해도 아들이 먹지를 않자 짜증이 났다. ‘이 녀석, 참 유별난가 봐’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인터넷이, 더 정확히 말해 전문가들이 정답일 수 없지 않은가? 어쩌면 스스로 남성이기 때문에 육아를 못할 것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편견은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초라함은 의존성을 강화시켰다. 결과는 참담했다. 정작 집중해야 할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는 집중하지 못한 것이다. 육아의 본질은 아이를 돌보는 것, 아이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이 아닌 내 아들 말이다. 그러나 난 아들의 양육자가 아니었다. 인터넷 정보가 양육자였다. 난 그저 기계적인 실행자에 불과했다.
과감해질 필요가 있었다. 어떻게든 이유식을 먹여야 했다. 난 아들과 중국집에 갔다. 그리곤 자장 소스에 이유식을 비벼 주었다. 아들이 그렇게 행복하게 밥을 먹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우리 둘은 너무나 행복하게 밥을 먹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그러나 이 사진은 차마 아내에게 보낼 수는 없었다. 발각되는 순간 전쟁의 서막이 펼쳐질 것은 뻔했다.
이후 난 아들과 카레부터 시작해서 여러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첫돌이 되기 전에 아들은 순댓국과 설렁탕을 맛보았다. 이런 육아 방식은 논란이 될 수도 있다. 누군가는 비난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들이 신나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다. 그렇게 인터넷 정보와 전문가 의견들에서 자유로워지자 육아는 신나는 일이 되기 시작했다. 그들이 만든 규칙들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아들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세상에 정답이 어디에 있겠는가? 만약 정답이 있다면 전문가의 의견이 아닌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아이의 눈빛이 아닐까? 내 아이 육아의 전문가는 다른 누구도 아닌 24시간 그 아이를 바라보고 사랑하는 나 자신이라는 당연한 사실이 나에게 육아의 본질을 선물해 주었다. '아이에게 집중하자. 아이의 눈빛 하나라도 놓치지 말자.' 그것이 육아의 본질이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