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상상해 보자. 여고에 남학생이 한 명 전학 온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이슈가 될 것이다. 그러면 그 반 학생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다. 동성끼리 모여 있는 집단에 이성이 들어오면 사소한 것 하나까지 불편한 것들 천지다. 다행히 여고에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에겐 일어났다! 두둥!
아들과 함께 방문한 육아 품앗이 팀은 예상을 1도 빗나가지 않고 전원 여성 양육자였다. 심지어 담장자도 여성이다. 사실 내 이름이 중성적인 이름이라 담당자님도 내가 여성이라 생각하셨다고 한다. 그만큼 이곳은 금남 아닌 금남의 장소! 난 용감하게 그곳에 발을 디뎠다. 닐 암스트롱이 된 기분이었다. “이것은 한 아이의 아빠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모든 아빠들에게 위대한 도약이다.” 할 뻔했다.
아무튼 처음 품앗이에 참여했을 당시, 구성원들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들의 눈빛은 “네가 왜 거기서 나와?”였다. 나도 당황하고 그들도 당황했다. 그러나 노련한 담당자는 당황하지 않고 나를 자리에 안내해 주었다. 자리에 앉자 담당자님께서 한 사람씩 호명하며 소개했다. 예은이 맘, 영은이 맘 등등 모두 맘이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다.
“자, 다음은 하온이 맘께서, 아니 하온이 파파 아니 하온이 아빠십니다.”
노련은 개뿔. 노련한 담당자는 취소다. 미숙한 담당자의 실수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어색했던 분위기가 조금은 누그러졌다. 소개를 마친 후 팀명을 정해야 했다. 우리 팀 외에도 여러 팀이 있는 듯했다. 미숙한 담당자님께선 벽면에 적혀 있는 여러 팀명들을 보여 주었다.
우리는 각자의 아이들을 무릎 위에 앉히고선 팀명 정하기 회의에 돌입했다. 다들 나름 귀여운 팀명들을 생각해 냈다. “뽀로로 팀”, “사랑 팀”, “원숭이 팀”, “토끼 팀” 등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이름들이었다. 난 묵묵히 관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너무 따분한 이름이라 생각했다. 그때 한 엄마가 나에게 의견을 물었다. 순간 장난기가 발동했다.
“드래곤의 후예들 어떠세요?”
모두가 나를 ‘어디서 이런 미친 자가 왔지?’라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난 손을 저으며 농담이라고 말했다.
“농담입니다. 농담. 그럼 찰리의 숟가락 공장, 이건 어때요?”
“찰리의 숟가락 공장”은 진심이었다. 창의력 돋지 않은가? 그러나 그들의 눈동자는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동공 지진!! 그리고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더 이상 나에게 질문하는 엄마도 없었다. 결국 팀명은 “사랑 팀”이 되었다. 팀명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중요한 것은 난 완전히 눈 밖에 났다는 것이다. 내가 눈 밖에 나는 것은 크게 상관이 없다. 걱정이 된 것은 나 때문에 하온이도 덩달아 눈 밖에 나는 것이었다.
그날 밤 아내에게 품앗이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다. 팀명으로 “드래곤의 후예”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채 끝나기 전에 강력한 스매싱이 등짝으로 날아왔다. 차마 “찰리의 숟가락 공장”은 말할 수 없었다.
아내는 진지하게 솔루션을 진행했다. 여성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선 일단 먹을 것을 선물하라고 했다. 아내는 나에게 쿠키를 구워갈 것을 명령했다.
다음 품앗이가 있던 날 아침부터 주방은 분주하게 돌아갔다. 홈 쿠킹을 위해 찬장에 고이 방치해 두었던 미니 오픈도 꺼냈다. 주방이 난장판이 되어 갈수록 쿠키는 완성되어 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품앗이 갈 시간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쿠키 좀 구워왔습니다. 맛들 보세요.”
품앗이에 참석하자마자 비장의 쿠키를 투척했다. 반응은 최고였다. 아내의 솔루션은 정확했다. 모두들 담소를 나누며 쿠키를 먹었다. 아이들도 즐거워했다. 그렇게 조금씩 팀에 녹아들 수 있었다.
이야기가 이렇게 마무리되면 참 좋겠지만 이 이야기엔 한 가지 비밀이 있다. 끝내 말하지 못했던 비밀이. 사실 그 쿠키는 직접 구운 쿠키가 아니다! 홈 쿠킹은 대 실패였다. 인간이 먹을 수 없는 새로운 물질을 연성했던 것이다. 집에 남아 있는 쿠키를 본 아내의 증언에 따르면 내가 만든 쿠키는 “밥 남기면 지옥에서 남긴 음식들 다 먹어야 된다는 이야기에나 나올 법한 쿠키”였다.
그 날 품앗이 팀원들이 먹은 쿠키는 동네 카페에서 파는 쿠키들이었다. 이 글을 빌어 카페 주인장께 감사를 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