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첫날

by 최정성

대학을 졸업한 후 2년여간의 취준생 생활 끝에 나름 대형 교육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회사는 구로에 위치해 있었다. 나는 낯선 것이 두렵다. 즉흥적인 삶, 도전적인 삶은 나의 성격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런 성격 탓에 미리 내비게이션을 통해 출근에 소요되는 시간을 알아보았다. 출근 첫날의 지각은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었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시간보다 한 시간은 일찍 길을 나섰다. 이른 시간의 출근길이라 그리 차가 막히지는 않았다. 시원스럽게 달리던 차는 구로의 "수출의 다리" 앞에서 조금 정체를 겪었다. 구로는 두 얼굴의 야누스와 같은 지역이다. 낙후된 구로 그리고 현대적인 빌딩으로 화려한 구로. 이 두 극단을 이어주는 길이 “수출의 다리”다. 그것은 마치 허름한 옥탑방에 살고 있는 나를 화려한 고층 빌딩에서 근무하는 나로 변신시켜주는 장치 같다. 이내 구로의 “수출의 다리”를 지나자 본격적으로 텔레비전에서 보던 화려한 구로의 모습이 펼쳐졌다.


구로의 하늘은 높은 고층 빌딩들의 마천루로 수놓아져 있었다. 저마다 자신의 거대함을 뽐내고 있었다. 그런 건물들의 모습에 압도를 당했다. 그 높은 빌딩들은 나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내 집 한 칸이 없는 옥탑 월세 방 신세에게 이 위대한 빌딩 숲은 딴 세상의 이야기였다. 빌딩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인간들은 과연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 아니면 위대한 자본의 폭압에 눌려 건물을 지탱하기 위한 도구로 살아가는 것일까? 자본의 힘에 의해 쌓아 올려진 건물들. 이곳은 인간을 원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본을 벌어들이는 기계를 필요로 할 뿐이었다. 이곳에서 인간은 어떤 의미일까? 이런 돈 한 푼 못 벌어다 주는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꿈틀거렸다. 강한 위화감과 함께 구토가 올라올 것 같았다. 그 구토감은 이 도시와 빌딩에 대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이 사회의 잉여와 같은 나에 대한 것이었을까? 매스꺼움이 조금 더 심해졌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고민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200m 앞 좌회전 후 목적지 근처입니다."


내비게이션의 친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구토감이 아닌 또 다른 감정을 일으켰다. 첫 출근, 누군가에겐 설레는 순간이자 희망의 발걸음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희망보다는 두려움과 긴장감에 내몰렸다.


차를 지하주차장에 주차한 후 건물 14층으로 향했다. 회사는 14층에서부터 20층까지를 사용하고 있었다. 각 층마다 회사의 사업 부서들이 각각 자리하고 있었다. 부서라고 하지만 각자 고유한 브랜드를 가지고 있었다. 일종의 계열사들이었다. 나는 그중 14층의 원격교육부에서 근무할 예정이었다. 14층 복도에서 서성거리며 사무실로 들어갈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엘리베이터에서 쏟아졌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호패를 목에 걸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정체성을 그 작은 사원증으로 표현하는 듯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원증을 찍고 각자의 사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에게 부탁해 출입한 후 내가 가야 할 사무실에 들어갔다. 그는 친절하게 나의 부서를 묻고는 사내 이사님의 사무실로 안내해 주었다.


이사님은 이미 출근해 계셨다. 나를 보자 활짝 웃어 보였다. 짐짓 손짓으로 개인 집무실에 배치되어 있는 소파에 앉을 것을 권했다. 그리곤 창문으로 사무실을 바라보았다. 내심 그가 내 앞에 앉아 이런저런 덕담이나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그는 한참을 창밖만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창밖의 누군가에게 손짓을 했다. 곧 다른 직원이 들어왔다. 이사님은 그에게 나를 소개했다. 그러나 나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은 듯 머뭇거렸다. 난 재빨리 내 이름을 말했다. 그는 능청스럽게 내 이름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말을 받았다.


"민영 BP가 배승진 씨 안내 좀 해줘요. 9시에 법무부서로 안내 좀 해줘요. 그리고 콘텐츠팀이니깐 명희 AP에게 인계하면 돼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승진 AP님 저를 따라오세요."


민영 BP라 불리는 그의 안내를 받으며 이사실을 나섰다. 아홉 시가 되자 16층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법무부서 사람들로 추정되는 몇몇과 무언가 이야기를 나눈 후 “회의실 3”으로 나를 안내해 주었다. 미팅이 끝나면 14층으로 내려오라는 말을 전한 후 사라졌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법무부서에는 왜 가야 하는지 그리고 여기서 무엇을 하는지 알 길이 없었기에 두려움이 생겼다. 명치가 꽉 막힌 느낌이었다. 이름도 법무부 아닌가? 왜인지는 몰라도 법무부라는 이름 자체가 무서웠다. 크게 심호흡을 한 번 더 한 후 노크를 하자 안에서 문이 열렸다. 먼 거리임에도 남자의 스킨향이 맡아졌다. 그는 무심히 나를 바라보았다. 이내 귀찮은 듯 회의실에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떨떠름하게 회의실에 들어갔다. 회의실에는 2명의 사람이 더 앉아 있었다.


스킨 향을 강하게 뿜어대는 그는 내가 앉자마자 이야기를 시작했다.


"환영합니다. 여기 앉아 계신 세 분은 우리 회사의 신입사원이십니다. 서로 인사하시죠."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는 서로 가볍게 목례를 주고받았다. 그러자 그는 우리에게 몇 장의 서류와 사원증을 전달했다. 서류들은 근로계약서였다. 근로계약서라는 문구 자체가 긴장하게 만들었다. 나를 포함해 그곳에 앉아 있는 두 사람 모두 계약직 근로자들이었다. 근로계약서에는 이미 각자의 이름이 프린터 되어 있었다. 그것에는 연봉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조항들이 난해한 단어로 적혀있었다. 그는 간략하게 계약서를 설명했다. 그리고 계약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알려주었다. 바로 임금 부분이었다. 이 회사는 포괄임금제를 채택하고 있다고 했다. 포괄임금제가 뭔지 몰랐지만 질문하지 않았다. 질문할 만큼의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난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그는 포괄임금제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것은 연봉에 시간외의 수당이 다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는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 사람은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포괄임금제이기 때문에 야근을 해도 수당은 안 나옵니다. 다시 말해서 야근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정시에 퇴근하세요. 이 제도는 좋은 제도입니다. 우리 회사는 직원들의 워라벨을 지지합니다."


모두들 그의 말에 아무런 의심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사원증을 목에 걸며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그땐 미처 몰랐다. 내가 서명한 그 문서가 육 개월짜리 노비문서이며 그 사원증은 노비 명패라는 사실을.


입사 첫날밤, 나만의 옥상에서 자축 파티를 열었다. 파티에 초대된 유일한 손님은 달이었다. 달은 만월의 얼굴로 입사를 축하해 주었다.


“이제 다 잘 될 거야. 그동안 수고했어. 수고했어. 수고했어.”


라고 속삭이며 토닥여 주었다. 나는 달빛의 품 안에서 조용히 맥주 캔 하나를 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