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직 따위가 감히

by 최정성

어느덧 입사한 지 두 달여가 지나고 있었다. 그동안 정시에 퇴근을 한 기억이 없다. 주말에도 출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밀려드는 콘텐츠를 감당할 방법은 오로지 야근뿐이었다. 원격교육부는 콘텐츠 팀, 마케팅 팀, 행정 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콘텐츠 팀이다. 나의 업무는 교사들의 원격연수를 위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이다.


주말에 콘텐츠를 촬영했다. 촬영 자체는 외주에 맡겨졌다. 외주 업체에서 촬영한 원본을 회사에 보내준다. 내가 맡은 업무는 외주 업체에서 받은 영상에 자막을 넣고 여러 대의 카메라로 촬영된 영상 중 교육자에게 제공될 영상을 선택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제작된 영상은 바로 시판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일명 케리스의 심사를 거쳐야 했다. 심사일은 정해져 있었다. 심사 일정은 늘 촉박했다. 심사일정에 맞춰 작업을 하기 위해선 늘 야근을 해야 했다.


총 3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콘텐츠 팀의 팀원들은 매일 야근을 해야 했다. 팀원 모두 피로감이 극에 달해 있었다. 작은 실수라도 발견되면 서로 언성이 높아졌다. 나 외의 2명의 정규직 AP들은 틈만 나면 싸우기 일쑤였다. 그러나 난 비정규직 사원이었다. 그들에게 짜증은커녕 그들의 히스테리를 모두 받아주어야만 했다. 그들이 나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대한 그들에게 잘 보여야 했다. 그들의 요구는 그것이 무엇이든 나의 업무 수행 평가와 연결되어 있었다.


나에게 처음 맡겨진 콘텐츠는 초임 교사들을 위한 교육 영상이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나의 삶을 갈아 넣었다. 보름간 밤샘 작업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콘텐츠가 완성되었다. 완성된 콘텐츠를 케리스에 보내야 했다. 당연히 서류 작업이 진행됐다. 이전에 작성되어 있는 심사 서류를 토대로 서류를 작성한 후 선임 AP에게 보여주었다.


선임 AP는 작성된 서류를 하나하나 살폈다. 그녀는 짜증스러운 듯 볼펜으로 서류의 콘텐츠 담당자란을 톡톡 치며 왜 여기에 내 이름을 넣었는지 물었다. 나는 당황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미간에 잔뜩 주름이 잡혀선 비정규직은 콘텐츠 담당에 이름을 넣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곤 이런 것도 지적해야 하냐며 더욱 짜증스럽게 말을 뱉었다. 그런 그녀의 말이 날카롭게 들어와 상처를 남겼다. 그녀에게 난 자기 분수를 모르는 어리석은 인간이었다. 그녀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암세포처럼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었다.


이 건은 분명 내가 한 일이다. 나의 이름을 넣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러나 차마 말을 뱉지 못했다. 먹고살기 위해 그리고 경력 한 줄이라도 쌓기 위해선 참아야만 했다. 그녀는 나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인간이었다.


한 마디의 저항도 하지 못한 체 조용히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을 남기고 서류를 받아 돌아섰다. 그녀의 책상에서 나의 책상으로 걸어오는 다섯 발걸음이 오백 걸음은 된 듯 느껴졌다. 한 걸음씩 디딜 때마다 나를 지켜온 성벽들이 무너졌다. 수치스러웠다. 의자에 앉자 서러움이 밀려왔다. 나의 업적을 빼앗긴 기분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자존심은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 나의 이름을 지웠다. 아니, 내가 지운 것은 이름이 아닌 나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적었다.


나의 업적을 빼앗긴 수탈의 서류를 들고 우체국으로 향했다. 막내의 업무였다. 내가 받아 마땅한 것을 다른 이의 것으로 만드는 그 서류를 들고 걸어가는 발걸음은 서글픔에 젖어 있었다. 비에 젖은 신발처럼 걸음마다 무겁고 질척거렸다. 한 발짝 한 발짝 서글픔에 젖은 발자국이 땅에 새겨졌다. 우편 업무를 마친 후 조금씩, 조금씩 서글픔을 말리며 회사로 돌아갔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복귀한 회사에서 기다리는 것은 새로운 과업이었다. 막 과업을 마쳤는데 바로 새로운 과업을 주는 것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오늘은 일찍 퇴근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역시는 역시였다.


우울함과 피곤함이 뒤범벅이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한 후 씻지도 않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러나 서러움은 여전히 울렁였다. 결국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난 6개월 전 담배를 끊었다. 책상 서랍에 반년 동안 묵혀 놓았던, 마지막 샀던 담배 갑을 찾아 꺼내 들었다. 다행히 라이터가 담배 값에 꽂혀 있었다. 결국 6개월 만에 금연은 끝이 났다. 옥상 한편에 우두커니 서서 담배를 태우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에 가려 친구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올려다보았지만 구름은 끝내 달을 가렸다. 담배 연기에 가려진 내 눈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