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숫집에서

by 최정성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업체 선정까지는 명희 AP와 BP님의 도움으로 쉽게 진행되었다. 또한 직원회의에도 참석했다. 입사 후 처음으로 업체 선정을 위한 프레젠테이션도 직접 진행했다. 직접이란 말이 조금은 쑥스러울 정도로 명희 AP의 도움이 컸다. 명희 AP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진심으로 나를 도왔다. 그녀는 처음으로 선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녀는 일과 시간이 끝난 후에도 남아 나를 훈련시켰다. 발표 내용을 꼼꼼히 암기시키고 발표 리허설도 진행해 주었다. 나와 명희 AP 둘만 남은 사무실에서 그녀는 진지하게 나의 발표를 듣고 반응했다. 시작 전 인사부터 발표 때 서 있는 위치 하나까지 자세하고 빈틈없이 교정해 주었다. 예상되는 질문들을 정리하고 정보를 수집했다. 명희 AP 역시 가능한 많은 정보를 찾아 주었다. 그녀는 나의 과외 선생님이라도 된 듯 열정적으로 나를 코치해 주었다. 그녀의 열정적인 도움에 보답하고 싶었다. 그녀에게도 인정받고 회사에도 인정받아 정규직이 되고 싶었다. 입사 후 처음으로 소속감이 생겼다.


프레젠테이션은 입사 후 첫 발표인 만큼 떨렸다. 모두가 나를 주목하고 있었다. 나를 주목하는 눈빛들은 날카로웠다. 그러나 한 사람만은 그렇지 않았다. 명희 AP였다. 명희 AP는 의도적으로 이사님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가 마치 이사님님을 바라보며 발표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사실 이 모든 것이 그녀의 작전이었다. 발표가 시작된 후 명희 AP만을 바라보았다. 함께 연습했던 그 날들처럼 명희 AP만을 바라보며 발표했다. 프레젠테이션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남들 몰래 명희 AP에게 회사 메신저가 아닌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의 도움이 고마웠기에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었다. 저녁을 사겠다는 나의 메시지를 그녀는 승낙했다. 구내식당만 다녀 본 나는 그녀에게 선택지를 양보했다. 그녀는 회사 근처 아담한 국숫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선술집 같기도 한 국숫집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명희 AP는 이곳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녀가 이 집을 좋아하는 이유는 국수의 맛이 아닌 한적함 때문이었다. 조용한 국수님의 분위기는 오늘의 긴장감을 풀어주었다. 팽팽했던 긴장감이 조금은 느슨해졌다.


우리는 오늘 있었던 프레젠테이션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녀는 조용한 가계 안을 자신의 목소리로 모두 채워 넣을 작정이라도 한 듯 연신 말을 뱉었다. 조용한 가계의 평온은 그녀의 수다로 사라져 버렸다.


“승진 씨. 이제 시작이에요. 끝까지 잘 마무리해요. 잘할 수 있죠?”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때, 음식이 나왔다.


국수를 다 먹은 후 그녀에게 발표를 도와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평소의 그녀 같지 않았다. 평소라면 자신의 선행에 대해 생색을 내며 떠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왠지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회사로 돌아오는 내내 그녀는 침묵했다. 그러나 그녀의 침묵이 싫지 않았다. 조용히 걸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녀에게 물었다. 달을 좋아하냐고.


그녀도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달을 싫어했다. 달은 언제나 지구 주변만 빙빙 도는 용기 없는 실패자이자 주변인이라 달을 보며 짜증이 난다고 했다. 자신은 이 사회의 중앙에서 살고 싶지 달처럼 외곽을 도는 인간이 되기 싫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달은 실패자의 상징이었다. 그녀의 말에 반론을 제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침묵을 선택했다. 우리는 조용히 회사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