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논리

by 최정성

1순위 업체의 대표에게 연락해 미팅을 잡았다. 다행히 이 업체는 회사에서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나는 업체를 방문했다. 작은 사무실이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나는 사무실 시설들을 모두 카메라에 담았다. 이 업체는 여성 대표 한 사람과 직원 한 사람의 작은 업체였다. 사무실 전경과 시설들을 촬영한 후 응접실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표님은 자기 사업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이 강했다. 대표님의 말에 따르면 비록 작은 업체이지만 다수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법인 자격증을 발부하는 것에는 전문가였다. 업체에 등록된 자격증만 30여 개가 넘었다. 그녀는 상기되어 있었다. 대기업에서 협업 제의가 들어왔으니 기대에 들뜨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녀는 이 협업이 반드시 성사되길 원했다. 대표님은 민간 자격증 시스템부터 자신이 생각하는 이번 협업의 방식까지 브리핑했다. 나는 그녀의 모든 말을 녹음했다. 그리고 경청했다. 궁금증이 생기는 부분은 사소한 것까지 질문했다. 그녀는 나의 질문에 모두 답해주었다. 전문가는 전문가였다. 미팅이 마무리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몇 번이나 잘 부탁드린다며 나이도 한 참은 어린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작은 제조 회사를 운영했었다. 생산된 물품은 대기업에 납품되었다. 어린 시절 어느 날 아버지의 회사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용돈을 조금 받기 위해서였다. 아버지는 공장 입구에서 누군가와 대화하고 계셨다. 아니, 무언가 호소하고 계셨다. 거리가 있어서 무슨 대화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날의 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멋진 나의 아버지가 양복을 입은 누군가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굽신거리고 계셨다. 몸을 숨기고 그 장면을 지켜봤다. 그날 아버지에게 가지 못했다. 왜일까? 어린 나이였지만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내가 보았다는 것을 알려선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사업을 그만두셨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버지가 납품하던 대기업에서 납품가를 후려쳤다. 그 비용으로는 납품이 불가능했다. 공장 시설을 대기업이 원하는 설비로 변경한 터라 여유 자금 따위도 없었다. 납품 업체가 없어지자 회사는 빛만 쌓여갔다. 결국 아버지는 헐 값에 회사를 매각하셨다. 그것도 아버지가 납품하던 그 대기업에.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 회사를 매각한 돈으로도 빚을 모두 갚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목숨을 끊으심으로 우리에게 빚이 대물림되는 것을 막으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대기업에게 살해당하신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회사로 복귀하는 동안 아버지의 기억이 나를 괴롭혔다.


사무실로 복귀한 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지우기 위해 곧바로 업무에 집중했다. 미팅 내용을 정리하고 보고서를 작성했다. 작성된 보고서를 명희 AP에게 전달했다. 그녀는 찬찬히 살펴본 후 OK사인을 해주었다.


자료를 들고 이사님께 보고했다. 이사님은 묵묵히 듣고 계셨다. 보고가 끝나자 이사님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는 손짓으로 나가보라고 지시했다. 자리로 돌아와 업무를 보고 있었다. 미팅 때 녹음한 파일을 다시 들으며 혹시나 놓친 부분이 있는지 체크했다. 그때 사무실로 두 사람이 들어왔다. 그들은 곧바로 이사실로 향했다. 그들은 법무팀 사원들이었다. 나는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오늘은 정시 퇴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때 책상 위에 있지만 입사 후 한 번도 울리지 않던 전화기로 전화가 왔다. 법무팀이었다. 법무팀은 나에게 메신저를 확인하라고 했다. 메일이 한 통 와있었다. 메일에 첨부된 파일을 열었다. 그것은 지금 진행 중인 협업과 관련된 “자격 검증 제휴 계약서”였다. 법무팀의 직원은 계약서의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전화를 끊고 시계를 보았다. 결국 오늘도 야근 확정이었다. 나는 자격 검증 제휴 계약서를 들고 이사실 문을 두드렸다.


법무팀에서 들은 정보와 업체 미팅 때 들은 정보를 합쳐서 이사님께 설명했다. 계약서의 1조에서부터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는 말없이 듣고 있었다. 그러다 제4조 지급 부분에서 내 입을 막았다.


“4조 다시 읽어봐.”


그는 조금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제4조 (지급) “갑”은 “을”에게 자격증 발급비의 인센티브를 지불할 의무가 있다. 자격증비는 평균 3만 원이라고 산정되면 인센티브는 자격인증 시 수강생 당 7천 원이며 “갑”이 “을”에게 매월 말일 정산하여 익월초에 지급하면 계산서 발급을 원칙으로…….”


책상을 꽝 치는 소리에 하던 말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았다.


“금액 설정 누가 한 거야?”


그는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를 쳤다.


난 이사님이 오해를 하셔서 화를 낸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설명했다. 우리가 7천 원이 아니라 상대 회사가 7천 원을 가져간다는 사실을 전했다. 그러자 그는 다시 화를 냈다.


“배 AP, 내가 그걸 몰라서 물어본 것 같아? 저쪽이 먹는 7천 원은 너무 과하잖아. 코딱지 만 한 회사가 우리 덕에 인지도 쌓는 건데 왜 7천 원이나 걔들이 먹어? 이게 자네 의견이야? 아니면 법무팀이 상정한 거야?”


몹시 당혹스러웠다. 계약서에 따르면 우리가 자격증 발급과 관련해서 하는 업무는 딱 하나, 한 달에 한 번 이수자 명단을 보내는 일이다. 자격증과 관련해 진행되는 모든 실제 업무는 상대 업체가 진행한다. 자격증을 발급하는 재료비를 포함해 그들의 노동 시간을 감안하면 건당 7천 원도 상당히 불공정한 처우라 생각했다. 법무팀에서도 최대 이윤을 따졌을 것이고 그것이 7천 원이라 계산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사는 만족하지 못했다.


이사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나갈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잠시 후 명희 AP가 이사실로 뛰어 들어갔다. 명희 AP는 한참이 지난 후에 나왔다.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명희 AP에게 다가갔다.


나와는 달리 명희 AP는 별일 아니라는 듯 태연했다. 오히려 무슨 일이냐며 되레 물어왔다. 나는 이사님이 별말씀 없으셨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늘 있는 일이라며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그녀는 나에게 일부 수정된 계약서를 보여주었다. 예상대로 제4조가 변경되어 있었다. 7천 원이 아니라 5천 원으로 수정된 계약서였다.


계약서를 확인하고 있을 때 명희 AP가 다가왔다. 그녀는 회의실로 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나는 그녀를 따라 회의실로 갔다.


“일단 수익 조정해서 이사님께 보냈으니 걱정 말아요. 그리고 저쪽에는 서류 보내지 말고 전화로 얼마까지 생각하는지 떠봐요. 나도 법무팀에서 구체적인 금액까지 설정해서 보낼지 몰랐네. 일단 승진 씨는 저쪽에서 원하는 조건을 알아보세요. 금액 차이가 많이 나면 승진 씨가 잘 말해서 조정해 봐요. 너무 기죽지 말고. 아, 그리고 이사님 화나신 건 본인 책임이 아니니 너무 걱정 말아요. 끝까지 파이팅 해요.”


그녀의 지시에 따라 협력 업체에 전화했다. 수익 분배는 얼마로 생각하시는 대략적이 기준이 필요할 것 같아 전화드렸다고 전했다. 업체 대표는 5대 5로 생각하고 있었다. 만 오천 원을 오천 원으로 만들어야 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전화 통화로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지금 미팅이 가능한 지를 물었다. 다행히 바로 미팅이 가능했다. 그녀가 이번엔 자신이 우리 쪽으로 오겠다고 전했다. 나는 회사 20층에 있는 카페에서 보자고 전했다. 나는 명희 AP에게 법인 카드를 받아 20층으로 올라갔다. 10여분 쯤 기다렸을 때, 대표님이 들어오셨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회사에서 생각하는 금액이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금액과는 맞지가 않아 이 기획이 물거품이 될 수 있음을 전했다. 그녀는 솔직하게 회사가 생각하는 조건을 말해 달라고 했다. 만 오천 원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오천 원이라 말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해야 했다. 이 건을 해결해야 했다. 용기를 내어 오천 원을 말했다. 협력 업체 대표는 어이가 없었는지 피식 웃었다.


“재료값 빼고 나면……. 날로 드시려고 하시네요.”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수치스러웠다. 나는 그녀의 눈을 애써 외면했다. 그러나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오천 원안을 수락했다. 그렇게 우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일어나며 마지막 말을 던졌다.


“승진 씨, 우리 이거 채결하면 손해예요.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받을 수밖에 없네요. 투자라고 생각하죠.”


헤어질 때 보여준 그녀의 쓴웃음이 잊히지 않았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나 애써 외면했다. 정말 손해라면 거절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무실로 복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