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한 길고양이 일기

12. 화가 나는가보다

by Young



완전히 버닝아웃을 겪고있다. 밤잠 낮잠 가리지 않고 잤다. 무기력하다. 평소에 하던 일을 하는데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더 놓게 된다.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쉬거나 자고싶다.



하루는 낮부터 길가다가 눈물이 났다. 볕이 잘드는 길로 오래걸었다. 이 우울한 감정의 시작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억울함이나 화가 있는것 같다.



일부러 잘 챙겨먹으려고 한다. 집에서 혼자 된장국에 밥을 해서 먹었다. 그 조차 너무 힐링이 되었다. 눈물이 나던 낮에도 한참을 걷다가 칼국수와 만두를 사먹었다. 집에 들어오는 길에 젤리와 초코하임을 사서 유튜브를 보면서 먹었다. 그리고 다시 또 잤다. 일어나서 인스턴트를 또 먹었는데 속이 좋지 않았다. 바쁠때 하루 한끼 먹다가 갑자기 배도 고프지 않는데 탄수화물 위주 음식을 자꾸 먹으니 속이 부대끼고 몸이 찌뿌둥해 기분이 더 다운된다. 정우열 정신과의사 말이 생각난다. 멘탈 관리는 멘탈이 하는게 아니라 체력으로 하는거라고. 나는 귀찮지만 일어나서 라운이 밥을 주러 갔다가 이것저것 또 누군갈 보살피는 일들을 했다. ( 아깽이, 오빠, 길냥이, 본가의 두마리 강아지) 집으로 들어와서는 스스로에게 보상을 해줘야 할 것 같아서 문어를 시켜먹었다. 문어가 타우린도 많고 지금 먹기에 좋을 것 같았다. 양질의 식사를 꼭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제는 진지하게 구조한 고양이 라운이의 방사를 고민했다. 그 이야이는 차차 또 꺼내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라운이를 위한 길이라고 스스로에게 둘러댔지만 사실 내가 이젠 지쳐버렸다. 내게 내 집, 내 방이 있었다면 어찌 해보겠지만, 나는 내 집, 내 방이 없다. 억지로 기여코 작업실에 몰래 들여다 놨지만 장기간 둘 수 없다. 사람들은 구조한 길고양이가 마음을 여는데 일년 정도도 걸린다고 하는데, 나에겐 그 시간이 없다. 그리고 나는 그 시간동안 말라간다.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외부적 조건 상황 변수 때문에 하루에도 여러번 흔들릴 수 밖에 없는 나날들. 마음을 조아리며 버텨온 시간이 길면 길수록 나는 버닝아웃을 겪고 나 조차 죽어가는걸 느끼며 모든걸 놓아버리고 싶어졌다.




오늘 아침엔 명상을 다시 시작했다. 호흡명상을 짧게 오분 했다. 나는 몸과 마음이 얼타래처럼 얽혀있다. 그때그때 풀지 못하고 이젠 얼타래가 너무 크게 얽혀있어 푸는것을 내려놓았다. 그냥 그대로 두었다. 명상을 아무생각 없이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또 고양이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다는걸 다시 느낀다. 나에게 나만의 공간이 있다면, 아님 고양이가 나에게 다가와준다면, 오빠가 이사한 집에 집주인이 간섭이 없고 고양이에 질색하지만 않았다면, 아님 누군가 한명이라도 나를 도와주려고 했다면, 나는 이 중 하나라도 충족이 됐다면 라운이 입양 포기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을것이다.



화가 났다. 갑자기 화가났다. 구조를 망설이는 당시 구조를 고민하던 당시 구조를 재촉했던 사람, 그 사람에게도 화가났다. 구조한 고양이와 잘 사는 모습만 보여주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도 화가 났다. 나는 그런 성공적인 컨텐츠만 보았기 때문에 이런 난관이 있을줄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혹시나 누군가 길고양이 구조를 할까밀까 고민하고 있다면, 당신에게 일어날수 있는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해보고 그래도 품어야겠다 하면 하길. 그런 생각 없이 치료만 하면, 수술만 하면, 그러면 우리에게 해피엔딩이 일어날거야 하는 마음만 가지고 구조를 했다가는 하루 걸러 하루 아니 매일매일 멘붕을 겪을것이다. 그만큼 생명을 다루는 일이 너무 어렵고 힘들다.



깊은 생각을 할 수가 없다. 계획도 할 수가 없다. 매일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고 상황을 렛잇고 해버리면 점차 대안이 사라진다. 출구 없는 터널에 있는듯하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저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서 이렇게 해보자 이런 의욕적인 마인드도 점차 사라진다. 왜냐, 그렇게 자꾸 되지 않기 때문이다. 뭔갈 할수록 망가진다. 아무것도 안하는게 나에게 최선이 되어버렸는데, 시간도 내 편이 아니다. 깊은 생각을 할수도 계획도 할 수가 없다. 일단 오늘은 오늘을 살고 보자.






<초반에 그래도 나와있는 라운이. 그러나 내가 한번 더 잡아서 병원에 데려가 이젠 아예 숨어서 나오지도 않는다. 내가 있으면 밥도 안먹고 화장실도 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왠만해선 작업실 밖에 나가 있는다. 그럼 또 혼자 너무 오래 두는 것 같아 마음이 안좋다. 매일을 이렇게 조아리며 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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