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한 길고양이 일기

14. 하루를 소중히

by Young






오늘은 원래 하고 있었던 프로젝트인 장애인 학교 학생들의 예술활동 촬영을 하러 갔다. 이 장애학교는 중증 장애아이가 많아서 의사소통이 힘든 아이들이 다수 있다. 아이들은 가만히 앉아서 듣는것조차 버거워했다. 자기에게 집중하는 것도 부담스러워했고 불편하거나 불안하면 돌발 행동을 했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거의 본능만이 움직이고 있다고 느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나 본능은 균질하지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제 각각 이러한 것들을 제어해가며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그 모든 질서나 규칙이라는게 신기하고도 아름답다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사실 규칙이나 질서를 병적으로 싫어했는데 그것은 내 오만이었다. 규칙적이거나 질서잡힌 곳에서 불규칙과 무질서를 선호한다는 것일뿐이지 정말로 거의 모든게 불규칙적이고 무질서하면 살아갈수가 없을것이다. 실체적으로도 그럴것이고 심리적으로는 더 그럴 것이다.



나는 이 아이들을 보면서 라운이 생각을 하였다. 장애 아이의 행동을 보면서 라운이를 떠올린다는게 웃긴 얘기겠지만, 서로 언어로 소통 할 수 없고 감정과 본능과 남아있는 상대와 나는 어떻게 관계맺고 함께 살아가야하는 것인가 떠올려보았다. 나는 좀 웃기게도 라운이에게 규칙과 질서를 하나씩 서로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우리는 말로 통하지 않기 때문에 반복을 통해서 규칙이나 질서를 라운이가 알아간다면 앞으로 예측할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안을 덜 가져도 될것이고 삶이 한결 나아질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걸 만들기엔 우리가 짧은 시간을 보낸 것도 맞고, 내가 이런 부분을 신경쓰지 못한 것도 맞다. 더군다나 내 심리상태가 규칙적으로 무엇을 해나가기에 출렁임이 많았다.



오전이 호흡명상을 조금 더 하였다. 집중하기 위해서 매 호흡마다 들어마실때는 ‘산다’ 내뱉을째는 ‘죽는다’를 마음속으로 읊었다. 매초 매순간 살고 죽는다. 허무하게 끝나버린 단절이 있는 듯 하지만 점과 점, 점과 점 사이 영속적으로 이어져 있는 것 같다. 알 수 없는 생각인데 알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시 다른 생각(라운이) 하였다가 집중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였다.



라운이는 앞으로 얼마나 살까? 나는 또 얼마나 여기에 있을 수 있을까?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는것만으로도 기적인데 나는 왜 그렇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고통받고 괴로워했을까. 나의 애초의 바램은 라운이의 고통을 끝내주는 것이고 내가 그 바램을 다 충족하지는 못하더라도 아이는 예전차럼 아파하지 않는 것으로 충분히 내 바램을 채웠을 것이다. 한숨 한숨 공들여 쉬었던 것처럼 하루 하루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돌아오지 않을 오늘은 오늘을 감사히 생각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것이다. 라운이게 오늘 줄 수 있는 음식을 소중히, 그리고 잘 먹고 잘 잤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냥 그렇게 서로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일일지도 모른다.



하루를 소중히. 우리가 여기에 이렇게 서로가 있다는 것만으로 기적이니 하루를 소중히.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진다.






<라운이 이를 뽑은 흔적이다. 이렇게나 다 삭아있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성한 이가 없어보인다. 잇몸을 헤집어 놓았을 것이다. 아이는 많이 아팠을 것이다. 죽을만큼 무서웠을것이다. 그러니 내 눈을 맞추고 내 손이 닿으면 다시 또 저 공포를 겪을 까봐 피할수 밖에 없을 것이다. 라운이가 미운 고양이라서가 아니라 얘도 그냥 너무 힘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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