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길고양이가 내게 준 단 하나
라운이는 꽤나 독립적인 고양이같다. 아직 순화되지 않고 날 신뢰하지 않아서 거리를 두는 것도 사실이지만 단 한번 크게 운적도 눈길도 요구도 하지 않는다. 아이는 그저 자신의 안전만 보장 되면 밥과 물과 화장실과 그리고 잠만 있어도 충분한 삶처럼 보인다. 아이의 화장실을 치우면서 몰래 버린 쓰레기 봉지가 어느덧 5리터 짜리로 세 봉지가 된다. 그간 힘들게 적응하고 버텨온 흔적이라 생각한다. 어제는 똥을 치우면서 이 일을 내가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아무런 보상 없이 내가 선택해 내게 주어진 일이다. 언젠가 나는 모든게 귀찮아질것이다. 그럼에도 이 짐을 내려놓지는 않을 것이다.
고양이가 내게 아무런 보상을 주지 않는다고 했지만 단 하나 강렬한 인사이트를 주는 것이 있다. 바로 삶에 대한 생에 대한 실질적 감각이다. 하루 걸러 하루 죽어가는 생명들을 보면서 고통스러운 것도 사실이지만 그 고통을 외면 하지 않고 응시하면 하루가 너무나도 소중해진다. 한 끼 맛있게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따뜻한 물로 씻고 깨끗한 방에서 조용히 잘 수 있음에, 그리고 아침에 커피 한잔 마시고 다시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한다. 작업실로 나와 라운이의 빈 그릇과 화장실을 치우면서 하루 하루 살아온 하루의 그림을 한 장 한 장 받아 켜켜히 쌓아올리는 기분이다. 늘 살아온 나로서는 살아있다는 것이 어떤 감각인지 잊을 때가 많은데 길고양이 밥을 주고 보살피는 후로 부터는 매 번 깨닫게 된다. 나도 살아있고 소중한 너도 살아있네 서로 오늘 하루도 잘 살아보자.
너무 많은 관념 속에 삶을 낭비하지 말자. 몸으로 느끼고 작고 가까운 것으로 눈길을 돌리자. 반짝이고 화려한 작은 문을 가기 위해 달리지 말고, 너무나도 흔해 그러나 사실은 내팽겨처버린 것들을 사랑하고 보살피자. 그것은 나와 전혀 상관 없을것만 같은 길고양이로 시작해 다시 나에게로 온다. 내팽겨처버린 것, 그러나 다시 사랑하고 보살필 것, 나.
<처음으로 구조한 까만 길고양이의 작은 장례식. 나는 아이를 살리지 못했다. 마음도 주지 않았다. 밥 한번 준 적 없는 아이인데 그저 내 눈 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모른척 할 수가 없어 병원에 데려갔다. 아이는 워낙 상태가 좋지 않았다. 입원 일주일 정도 즈음 나는 마지막임을 직감했는지 처음으로 아이를 만져주었다. 그간 살아내느라 너무 고생했다고. 오래 토닥여주고 만져주었다. 아이는 그것을 안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가까이 오고싶어했다. 그러나 아이는 그 날 내가 간 그 후 숨을 거두었다. 나는 많이 울었다 오래 우울했다. 삶과 죽음 오묘한 경계이서 완전히 죽음으로 넘어설때, 허무함이 밀려오는 것이 아니라 되려 삶에 대한 강렬한 감각을 느낀다. 살아있는것은 너무나도 신비하고 소중한 것이다. 이 날 이후 조금 더 빨리 살릴 수 있을때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길고양이를 위한 급식소 하나를 만들었다. 거기에서 라운이도 만났다. 라운이는 두번째 구조이다. 라운이가 하루 하루 살아줘서 고맙다. 그것은 아마도 살리지 못한 까만 길고양이의 미련이나 안타까움 일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