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내가 뭘 그리 잘못했을까?
오늘 공동 작업실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레지던시 공간 운영 공지사항 글을 보게 되었다. 이러 저러 수칙들 중에 “ 반려동물 반입이나 사육을 금합니다” 라는 문구가 있었다. 가슴이 갑자기 두근대고 불안 초조하였다. 금지 된 것, 가시화 되지 못할 존재의 명시, 상징계는 역시나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다시 느꼈다.
이번주 토요일은 매달 있는 전체 방역 하는 날이다. 라운이를 작업실에 몰래 임시 보호한 후로 늘 불안하던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이 이것이다. 직원이 들어와서 소독제를 뿌리는 것도 라운이 건강상에 문제가 될 것 같아 걱정 되지만 그것 보다 더 한 것은 라운이가 발각 되는 것이다. 나는 최대한 이 상황이 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러 가지 조치를 생각해봤지만 딱히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잘 숨기자는 것밖에.
매달 있는 방역에서 라운이가 걸리지 않는다면 천만다행이지만 발각 되었을시에 어떻게 해야할지 혼자 고민해보았다. 심장이 다시 두근거린다.
라운이는 내 개인 작업 <이방인을 위한 침대> 을 하다가 만나게 된 아이이다. 작업 막판에 길고양이 작업을 연이어 하게 되었고, 이방인을 위한 자리는 어디 인가 라는 작업의 애초 질문에 나는 ‘환대’ 만이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 생각하였다. 라운이는 작업 속에서 만나 ‘환대’를 몸소 실천한 아이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전혀 환대 받지 못한 숨겨진 존재이다.
발각이 되면 나는 일단 어떻게 데리고 오게 되었는지 이 이야기를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엔 키우게 하지 못할 것이기에 얼마간의 시간을 달라고 부탁을 드려야 될것 같다. 그러면서 다른 장소를 찾아봐야겠다.
나는 내가 그렇게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위축되고 초조하고 불안하다. 오지 않을 여러 상황까지 미리 생각하고 해야할 말들을 정리하고 대책을 마련한다는것이 사실상 내 머리를 너무 복잡하게 만들어 지금 이 순간 라운이를 보살피는걸 버겁게 만들고 에너지를 고갈시켜 내 일도 제대로 못하게 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걸리면 걸리는 것이고, 그 때 그냥 당당하게 이야기를 하고 그 다음 대책을 생각하면 될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잘 되질 않는다. 금지 된 것을 한다는 것, 부정당한 존재를 끌어안고 몰래 살아야 한다는 것, 이 자체가 주는 압도감이 있기 때문일까. 나는 길고양이가 타자로써 하나의 메타포 임을 알고 있었다. 난민이라던지, 불법체류외국인, 성소수자라던지, 이러한 정체성을 가진 존재, 타자들이 다시 떠오른다. 라운이도 타자이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타자일것이다. 나는 라운이가 부정 당하는 것만큼이나 내가 부정당하는 것 같다. 그래서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방향에서 오는 중압감이 나를 위축들게 한다.
나는 안다. 상징계가 명시한 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고, 신이 한 것도 아니라는 것. 규범에 벗어난 내가 틀린 것이 아니라, 입장이 다르다는 것일뿐. 그래도 여전히 내 입장은 소수로써 받아들여지지 않겠지만 내 안에 잃지 말아야 할 마음의 심지는 당당함과 발언권과 무너지지 않고 다음 걸음을 갈 의지를 둘 것.
나는 잘못한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