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내 앞에 당당히 나타난 고양이
그간 일기를 쓰지 않았다. 딱히 괴롭지 않아서 글로 토로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체로 잘 지내주었고 바쁜 날들의 연속이라 라운이에 대한 신경을 많이 쓰지 않았다
그냥 조금 더 편안하게 지내고자 했다. 나부터 마음가짐을 그리하였고 라운이 볼때도 그런 얼굴과 말투를 하였다. 항상 침대밑에 숨어있거나 구석에 짱박혀져 있는 작은 종이 캣타워에 있었던 라운이를 위해 조금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해주고 싶었다. 침대를 드나들기 편하게 움직이고 쇼파도 옆에 붙여 경계가 조금 풀리면 쇼파 위에 올라가 볕도 맞고 창밖도 보길 바랬다. 거짓말처럼 얼마 뒤 라운이는 그렇게 해주었다. 내 앞에 나타나 앉아있고 쇼파 위에 앉아 두다리를 뻗고 잠을 잤다.
그런 고양이를 보는게 따뜻했다. 어떠한 보상을 바란 것도 없는 아이였고, 사실상 늘 성가신 아이였지만 가끔 나에게 선물 같은 느낌을 준다. 이유 없는 따뜻함, 외롭지 않은 시간, 그런 것들.
아이는 마음을 열고 몸도 편안해져서 그런지 식욕도 더 생겼다. 이젠 밥을 주면 잠 자다가도 기지개를 죽 펴고 나와 홀짝 홀짝 먹어준다.
문제는 이 모든 것들과 함께 시작하였다. 라운이가 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시점부터 울기 시작하였다. 무엇때문에 울까. 배고픈걸까, 아픈걸까, 그냥 낯선곳에 와서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우는 걸까, 엄마가 보고싶어 우는걸까, 발정이나서 우는걸까, 혼자 외롭고 심심해서 우는걸까, 모르겠다. 아이는 점점 크게 점점 더 많이 운다.
내가 지금 라운이와 있는 이 공간은 동물 반입이 안되는 곳이라 발각이 되면 나와야한다. 최대한 조용히 2021년 올해 중순까지는 여기 있고 그 다음 거처를 알아보고 싶은데 라운이는 내 마음을 전혀 몰라준다. 라운아.....
우는 아이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의 위태로운 상황이 또 걱정되고 계속 우니 나도 모르게 짜증도 난다. 그래도 이 낯선 곳에서 혼자 외롭게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게 아닐까싶어 또 안쓰럽다.
선물 하나에 시련 하나, 삶이 참 만만치가 않다.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살아갈수록 나는 미약하다는 생각이 커진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풍파 속에서도 온건한 마음으로 살아 갈수 있는건 내가 할수 있는 작은 일들을 계율처럼 반복하며 사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내일, 오늘 같은 하루가 반복 될 것이다. 지겨워 하거나 미루지 않고 오늘 할 수 있는 것을 오늘 하며 하루 하루를 또박 또박 살자 감사히
아침: 아파트앞 길고양이들 따뜻한 물주기, 출장간 오빠집 고양이 아깽이 아침주기, 작업실 출근해서 라운이와 인사, 똥오줌 치우기, 밥그릇 치우기, 환기, 청소, 가습기 물갈기,
그 이 후 생강차마시면서 작업, 작업, 작업, , ,
점심: 라운이 밥주기, 오빠집 가서 아깽이 점시 주기, 나도 점심 먹기 (주로 김밥천국 포장)
다시 또 작업실 와서 작업, , ,
저녁: 7시 작업 종료, 라운이 저녁 주기, 유튜브 영상 틀어놓기 ( 고양이가 볼 동물 영상), 오빠야집 아깽이 저녁주기, 나도 저녁 먹기, 청소, 사냥 놀이, 길고양이 밥자리 두군데 밥과 물 주기
그리고 집에 와서 누우면 천국이 따로 없다. 여전히 고양이들 걱정, 본가에 있는 강아지들 걱정이 되지만 내가 누운 잠자리마저 끝고 들어오면 내일 일어날 힘이 없을 것이다. 부족하지만 오늘 여기까지하고 잘 자야 내일 또 내일 하루를 살아낼수 있으니
내일 또 같은 하루가 반복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