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무언갈 하지 않는 용기
1월 10일. 오늘이 디데이였다. 지원 받은(?) 예술 사업 결과 보고를 하는 마지막 날이다. 올해 신작으로 한 개인전을 빼고 기획 단체전 하나를 하고 아카이브 사업에 매진하고 있었다. 이 사업은 크게 두개, 디지털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주는 것과 영상 제작 하는 일을 했다. 혼자 말이다.
(지원은 받았지만 지원금의 대부분은 모두 참여 작가님들을 위해 사용하였다. 나의 노동력은 다시금 강조하지만 최저 시급은 커녕 무급 봉사일뿐이다)
나는 사진 베이스로 시각 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전공 장르와 어쩌면 무관한 (어쩌면 깊게 연관있는) 홈페이지 제작과 영상 제작을 실험으로써 혼자 도전한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무모한 짓이었다.
어쨌든 돌은 굴러갔다. 네 명(팀)과 홈페이지 작업을 하여 4개의 홈페이지를 만들었고 영상은 총 5편을 만들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일을 이렇게 굴리진 않았을거다. 그냥 딱따구리가 통나무를 뚫듯 매일 매일 일만 하였다. 월화수목금금금이었다.
내일 조금만 더 마무리를 짓고 나면 나를 끄집어 올리고 있던 사업이 종료된다. 그리고 바로 또 몇년 전부터 기록했던 문화예술계 미투 사진 작업을 하여야한다. 이 일은 부담스러진 않다. 사진은 내 전공 장르이고 그다지 실험이라고 할 것 없이 예상대로 일을 진행하면 될것이다.
그렇게 1월달이 끝나고 한동안 쉬면서 2021년을 어찌 보낼지 생각해보고싶다. 지금으로써는 굴러가던 돌을 이제 멈추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의외로 관성의 법칙을 따르는것이 수월할때가 많다. 실제로 몸이 편하다 불편하다의 의미가 아니라 자전거 바퀴를 돌리는 페달을 멈추면 사람을 휘청휘청 중심을 잡기 힘들어지고 넘어지기도 한다. 욕망의 에너지던 불안의 에너지던 일을 자꾸 만들어 내고 성과를 자꾸 내는 것이 한때는 나를 위한 원동력이라 생각했지만, 이게 정말로 나를 위한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든다.
일에 파묻혀 쳐낼때는 깊게 고민하고 방향성에 대해 재고 하는 시간 없이 기계적으로 일하거나 어찌어찌 우연히 설정된 방향으로 그냥 무작정 걷기도 한다.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이 아카이브 사업일을 내년에도 똑같이 할 수 있지만 반복해서 습작을 만들어내는것이 과연 정말로 좋은 것일까 반문 할수 밖에 없었다.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때로는 방향을 완전히 뒤틀수 있는 것은 필히 여유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마감에 치여 어떻게든 성과를 쥐어짜야하는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대신 마일리지 쌓이듯 무언가 결과물은 나오고 있다. 물론 그 긴 시간동안 자연스럽게 쌓이는 약간의 테크닉이은 생겼다.
그냥 무언갈 하지않고, 꼭 굳이 본질적인 질문이니 그런 깊이 있는 고민도 하지 않더라도, 그간 읽지 못한 텍스트, 보지 못한 영화, 때론 멍때리며 시공간을 느껴보는 일, 내 사랑스런 반려견들이랑 시간을 보내는 일, 가족 친구와 자주 식사를 하는 일, 아무것도 거창 할것 없는 일을 스물스물 하면서 어느 순간 아 이걸 해야겠다, 이걸 하고싶다 그 확신이 들때까지 연못에 물이 찰때까지 기다리고 마중물을 퍼내는 일, 올해 2021년엔 꼭 그리 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