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한 길고양이 일기

23. 행복에 관하여

by Young





어제 홀가분한 기분으로 치맥을 하였고 오늘 아침부터 유난히 바빴다. 본가에 있는 강아지 한마리가 미용 후 산책 하고 나서 발바닥에 피가 나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다행히 큰 문제는 아니었다.


오빠가 아직 포항에 출장중이라 아침에 오빠집에 있는 아깽이 밥을 주러 갔다. 아이가 잘 있는지 화장실은 잘 가는지 밥은 잘 먹는지 확인하고 나온다.


나오는 길에 길고양이 급식처 두군데를 들러 간단히 물이나 사료를 채워넣는다.


여러 아이들을 돌보다보니 차는 거의 짐차가 되어 오랜만에 세차(?)를 하였다. 세차 라기 보다는 사료 봉지, 캔, 물통, 빈박스를 비롯한 여러 쓰레기들을 버리고 에어건을 쏘았다.


작업실에 도착해서 구조한 길고양이 라운이를 살펴본다. 아이는 오늘 토를 했다. 건사료 토는 아니었고, 헤어볼 같은 토로 추측된다. 그러나 아이는 토를 하고 힘들었는지 어제 저녁 퇴근길에 주고간 음식들을 거의 먹지 못했다. 컨디션이 확 떨어졌는지 다시 침을 흘렸다.


일단 토를 한 자리를 치웠다. 토를 한번 하면 아무리 닦아도 냄새가 나서 빨래를 하는게 나았다. 이불 커버, 매트리스커버, 쇼파 커버, 쿠션 커버를 빨았다.


아이에게 괜찮다고 얘기해주었다. 토를 할수도 있다고 얘기해주었다. 라운이는 토를 하면 이상하게 내 눈치를 보는 기분이다. 혹시나 자기가 아픈게 티가 나면 내가 또 병원에 데려갈까봐 그러는지 토한 후엔 꼭 저렇게 주눅이 들어 구석에 가 있다.


아침 10시가 되기전에 일들이다. 이젠 며칠째 반복되는 일상 같은 일이다. 아직 점심과 저녁이 오지 않았는데 이와 비슷한 일을 점심에도 저녁에도 반복한다.


버거울때가 있다. 지친다는 말보다 책임감 같은 것들이 나를 옥죄는걸까. 그래도 내가 조금 피로하면 생명들이 하루라는 시간을 벌 수 있으니 어찌 힘들거나 지쳐도 내팽개칠수가 있나. 생명은 정말로 신비한 것이다. 살아있다는건 축복이라는 그럴듯한 말보다 어찌됐건 신비로운 일이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 이 시공간, 구조한 고양이 라운이와 함께 하는 이 시공간, 라운이는 없을뻔한 오늘을 살고, 나는 그 하루를 보내면서 삶의 감각을 느낀다. 매일 매일 살아있어서 살아있다는 감정을 잊을때가 많다. 일상적인것들은 무뎌져 아무 가치를 못느끼게 되고, 반대로 삶은 대체로 고통이 많은데 고통을 느낄때는 삶 자체가 고통 같다. 생명들을 보살피면서, 주로 하는 일은 청소와 돌봄인데, 이 일들을 하면서 나는 살아있다는 그 자체와 하루 소소한 일상이 사실은 얼마나 이루기 힘든 것인지, 이 일상이 너무나도 감사하게 느껴진다. 길고양이들이 나에게 준 유일한 선물이자 너무나 큰 선물이다.



뉴스가 너무 흉흉하다. 어찌 어린 생명을 그렇게 할수 있을까. 어디 어린 아이만 그럴까 주변에 너무 많은 생명들이 사실은 생존이 힘들고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 외면 하고 살고 있다. 정면으로 응시할수록 나도 고통 받기 때문일까. 행복이라는 감정은 내가 안전하고 내가 얻고 싶은 것을 얻었을때 오는 충만감일까. 아닐 것이다. 세상은 대체로 고통 받는 존재들이 많고 이들을 사랑할수록 나는 삶의 감각을 느끼고 또 동시에 고통을 느낄수 밖에 없는 것일까.


내가 행복하려면 사실은 타인이 행복해야한다.


갑작스러운 말이지만 채식을 이젠 할때도 되었다.


모든 일과를 끝마치고 저녁 10시즘 차에 올라타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문득 내일 당장 죽는다 해도 오늘 같은 일을 반복할 것인가 되물어보았다.


그럴것이라고 생각했다. 생명들을 그래도 내가 할수 있는만큼은 보살펴 주는것이 내겐 가치로운 일이 맞다.




라운이와 나

어제 저녁 토를 다 해놔서 모두 빨래를 하였다 하하






작가의 이전글구조한 길고양이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