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초대 받지 못한 자
오늘 단톡방에 글이 올라왔다. 공문이었다. 작업실 공간에 동물사육이 안된다는 글이었다. 규칙을 어길시 퇴관을 한다는 말도 있었다. 최근 애완동물 민원이 생겼다고 했다. 나는 그 톡을 보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걱정되고 불안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 작업실 공간에 동물과 함께 있는 사람은 나 뿐인데 나에게 직접 연락 하지 않은게 조금 의아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내 옆방 작가님들께는 일전에 양해를 구했었다. 제가 길고양이를 구조하고 보호하고 있는데 가끔 울 수도 있다고, 작업하시는데 방해가 되면 말씀해달라고 했다. 고맙게도 옆방 작가님들은 흔쾌히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 누가 민원을 넣은지는 모르겠다.
일단 마음을 가라앉히고 어찌 대처할지 생각했다. 먼저 최대한 흔적도 없이 조용히 있을 것. 라운이가 먹고 싸고 하는 모든 것들을 잘 처리해야겠다. 그간 잘 한다고 해왔는데 더 깔끔히 조심히 처리해야겠다.
그리고 민원이 재차 발생하거나 직원이 직접 연락이 와서 라운이를 데리고 있는것이 발각 되면 이런 저런 이야기로 풀어나갈 셈이다. 그러나 어찌됐건 직원은 문제의 소지가 생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고 자기의 책임 소지가 되는 것을 더더욱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은 내 선택과 책임으로 돌리되 시간을 벌어야 할듯하다. 마지막엔 정말로 같이 쫒겨날 마음까지 먹고 있다. 물론 내가 조용히 떠나지 않을것이긴 하지만 ( 나는 어느샌가 배제 된 자는 누구인가, 그런 타자를 발견하고 관찰하고 기록하고 가시화하고 자리를 내어 주는 것이 마치 내 사명감 같은 취향이 되어버렸다. 그래야만 된다고 믿고 있다 )
어느 곳에서, 누군가는 선택받고 누군가는 배제 된다. 배제 된 자는 사실상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없는 생명처럼 살아가야한다. 자꾸만 나타나지 말라고 하고 요구하지 말라고 한다. 그렇게라도 살아나가면 다행이지만 경계 밖의 삶은, 삶이 아니라 생존이고, 생존에 허덕이다 사라진다. 길고양이나, 나나, 그리고 어느 한 군인이나,
나는 라운이를 나를 지키듯이 지킬것이다.
라운이는 봄이 되자 발정이 왔는지 울음이 심했다. 아마 이때 민원이 발생하지 않았나싶다. 나도 같이 있기 힘들정도로 울었다. 병원에 수술 예약을 잡고 어떻게 데려갈지 일주일 간을 고민했다. 통덫을 일주일간 놔두고 안에서 밥을 먹도록 훈련시켰다. 수술 당일 통덫으로 라운이를 안전하게 포획했다. 최대한 스트레스 받지 않는 길이었다. 아직 손에 잡히지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라운이는 중성화 수술과 2차 전발치 (송곳니 4개)를 했다. 수술은 잘 되었고 다시 작업실 공간으로 잘 왔다. 서로 많이 고생했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 그래도 많이 괜찮아졌다. 큰 산을 넘었다. 이제 조용히 올해 말까지 여기 작업실에서 잘 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