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앗 뜨거
얼마전에 봤던 법륜스님 영상이 생각난다. ‘앗 뜨거’ 스님 이거 쥐고 있는데 뜨거워 죽겠어요. 이거 어떡해요. 어떻게 해야돼요. 괴로워요. 스님 즉문즉설이 그랬다.
“놔라”
어떻게 놓나요? 놓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그냥 놔라”
어떻게 잘 놓는 방법이란게 없다는걸 스님은 이미 알고 계셨다. ‘앗 뜨거’ 나는 너무 뜨거운 고양이를 손에 쥐고 있다.
비에 쫄딱 맞고 죽어가던 검은 길고양이를 한번 구조하고 병원에 데려간적 있다. 그 아이는 결국 일주일 뒤 별이 되었다. 나는 오열을 했다. 살면서 처음 구조한 고양이, 나는 고양이를 한번도 좋아한적이 없다. 그냥 생명이니 살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 고양이는 밥을 전혀 먹지 않고 결국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나는 그래서 아픈 고양이가 밥 먹지 않는 것에 대해서 큰 두려움이 있다. 초조하고 불안하고 죽는 것은 아닐까 슬픔에 빠진다.
그러니 이번에 구조한 구내염 앓던 고양이도 밥을 잘 먹질 않으면, 하루라도 식욕이 떨어지면 내 마음은 널뛰기를 한다. 마음을 알아차리고 생각을 하고 가라앉히려고 노력해도 그건 이미 무의식에서 나를 지배하고 있는 문제였다. 까만 길고양이의 죽음과 슬픔이 바로 훅 하고 올라오는 것이다.
그러니 먹는 것에 유독 신경을 쓴다. 좋은 건사료는 물론이도 습식캔사료, 츄르, 자연식화식이나 스프류를 같이 내어준다. 아이가 그릇을 다 비우면 그것만큼 기쁜것도 없었고 먹질 않으면 말라버린 츄르만큼이나 내 마음이 황폐해진다. 아파서 그런걸까, 낯선곳에서 스트레스 받는 것일까, 내가 지금 잘하고는 있는 걸까, 결국 아이를 더 힘들게 하는건 아닐까,
그런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 내 기분이 오가니 나도 중심을 잡고 내 일을 해나갈수가 없다. 언젠가 내가 지쳐 아이를 포기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벌써 나는 아이의 야생으로 다시 방사를 진지하게 옵션으로 올려놓았다. 그래도, 그래도 밖보다는 여기가 낫겠지 하며 내려놓고 내려놓으며 내 마음을 달랜다.
나는 점점 친절한 무관심만이 우리가 살아가는 길이 아닐까한다. 아이가 밥을 덜 먹던 화장실을 덜 가던 나를 멀리하던 일단은 그런대로 두며 서로가 지내보려한다. 사실 이 친절한 무관심이 좋아서 한다기 보다 지금 딱히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더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고 더 잘 먹이려고 노력해도 전적으로 고양이의 의지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무언갈 하면 할수록 고양이는 나로부터 멀어지려하고 스트레스를 받아 더 악화되어갔다.
오늘도 일단은 여러 캔들과 사료와 음식을 놔두고 자리를 비우려한다. 내일이면 또 나는 고양이가 밥은 잘 먹었을까 근심 걱정으로 눈을 뜰것이다. 그러고 싶지 않아도 나는 아마 그럴 것이다. 하루 하루 알 수 없는 터널에 있는 듯하다. 언제까지 이 줄다리기를 해야할지 모르겠다. 썩은 동앗줄이라면 언제 끊기는게 좋을까, 그것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냥 일단은 이 터널안에 같이 있어주는 것밖에 없다. 이것이 되려 고양이에게 고통과 외로움을 줄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지도 않으려한다. 어쩔수 없는 지금 나의 현실이고 부족한 나에겐 이것이 최선인것이다.
앗 뜨거
내려놓을수 있을까
<라운이 구조전 모습, 아파서 침을 흘리고 늘 저 울상을 짓고있다. 그래도 이때보단 지금이 나은거야 ! 그건 확실한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