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한 길고양이 일기

3. 이젠 내가 앓아간다

by Young



저녁 8시즘 잠이 들어 새벽 3시즘 깬다. 다시 잠이 드려고 해도 온갖 근심 걱정에 잠이 들지 않는다. 아이가 밥을 좀 먹으면 다행인데 안먹었으면 어쩌나,


지금 내 걱정은 불필요할만큼 과도하고 결국 나를 잡아 먹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어쩔수 없이 앓고 있다. 왜 이럴까?


세상은 거의 모든게 불분명하고 모호하고 답 없이 자꾸만 내가 아니 남의 선택과 의지에 따라 내가 어쩔수 없이 달라질수 밖에 없는 현실. 그 현실이 자꾸만 스트레스 상황으로 만들면 나는 끝내 견디지 못할것이다. 자꾸만 내 그릇을 넘어가는 짐들이 넘치는듯하다. 이게 과연 그냥 내 생각에서 비롯한 일인지, 진짜로 외부적으로 상황이 안좋아 아무리 내가 마인드컨트롤를 해도 안되는 문제인지 조차 이젠 가늠하기가 힘들다



고양이가 밥을 잘 먹어줄지, 새로온 내 작업실에서 잘 지내줄지, 나는 한다고 하지만 그게 오히려 부담이 되어서 고양이는 더 나를 멀리하고 난 뒤부터는 아주 최소한의 것들만 하고 내버려두고 있다. 그것조차 사실 힘이든다. 내려놓는것이 더 힘이든다. 조용히 앓는것이다.



고양이를 들이고 나서 나에게 부담이 됐던 그 모든 것, 구조를 하고 수술 치료를 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 백만원이 넘는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서 몇가지 물품도 팔고 친구에게 빌려가며 어디 돈 나올 구멍만 찾아 고민했던 마음, 결국엔 마지막엔 오빠카드를 십여만원이 부족해서 긁었는데 욕을 바가지로 먹으면서도 사실대로 말할수 없었고 나는 그냥 혼자 모든걸 조용히 삼키고 아이를 데려왔다. 작업실도 사실은 아이를 둘 수 없는 곳이다. 상황상 긴 얘기를 할수 없지만 이곳은 동물이 금지 된 곳이며 심지어 한달에 한번 방역을 해야해서 이 아이가 있다는걸 알면 나는 같이 쫒겨날 위기까지 같이 감수하고 있다. 다행히 이번달 방역은 지나가서 한달여간의 시간은 벌었다. 매달 나는 이렇게 또 다른 문제로 앓아간다. 아이의 똥오줌 문제도 언젠가 한번은 문제가 붉어져서 난리가 난적이 있는데 최대한 모든걸 비밀로 해야하기 때문에 그 심리적 부담과 스트레스를 모두 안고 아이의 똥오줌을 몰래 봉지에 넣어 묶어놓고 쌓이면 직접 멀리 들고가서 버린다.



지금은 그 뿐만이 아니다. 지금은 정산 시즌이라 온갖 서류에 시달리고 있다. 작업을 하는 예술가가 나름대로 생존하는 여러 방법들이 있겠지만 지금 현재로썬 재단에서 하는 예술 사업들을 지원하고 그 기금을 받아 전시나 작업을 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산과 결과 보고를 한다. 나는 이 시스템을 할때마다 힘이들고 화가나지만 그래도 현실적으로 지금 다른 대안이 없어 울면서 하고 있다. 왜 이게 이렇게 힘드냐면 예술과 행정은 사실상 너무 먼것이고 이것을 일치 시키려 할때마다 돈을 받는 예술가가 을이 되어 행정 시스템에 짜맞추거나 아님 스스로가 편법자가 되어야한다. 이 갈등이 생길때마다 나는 자존감이 무너지고 크게는 내 작업적 삶 자체가 무너질까 걱정을 한다. 너무 싫어서 그냥 내돈으로 내가 직접 할만큼 한다고 늘 말하지만, 실상 돈이 없다. 다시 또 매년 지원서를 쓰고 있는 내가, 그 쳇바퀴가,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해도 가슴을 죄어온다.



내일은 금요일. 오빠 이삿날 계약일이다. 내가 계약을 해주기로 하여 그것도 준비를 하여야한다. 계약금 70만원이 잘 준비 되었는지 확인을 한다. 방 구하는 이것도 나에게 사실 큰 스트레스로 왔었다. 그러나 어쨌든 방은 구했고, 이사가 남았다. 이것도 고양이를 구조하고 치료하면서 역시나 같이 벌어졌던 상황이다. 참 돌아켜보면, 그리고 앞서 보아도 지금 내가 감당해야하는 일들이 벅차다.



그런데 나는 왜 자꾸만 놓지못하고 있을까. 아니 근데 무엇을 놓아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되려 화가나고 묻고싶기도 하다. 고양이 문제에 대해서도 내가 이렇게까지 무리를 해가며 한 생명을 살려야 되는 일일까. 이게 혼자 떠안아서 되는 일일까. 주변에 조금이라도 함께 이 짐을 들어주려 하거나, 아님 편하게 이야기라도 할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나는 이렇게까지 속에서 곯아 터지진 않았을것이다. 남탓이 아니라 혼자 너무 외롭게 괴롭다. 결국 내가 이 책임을 짊어질 것이지만은 혼자만 이 뜨거운 감자를 안고 있기엔 너무 가혹한것도 사실이다. 예술 행정 정산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왜 그 모든 작업과 예술을 행정 시스템에 끼어맞추려고 하고 그것에 벗어난 일을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일적으로 무능한 사람으로 만들어 사람을 스스로 한심하게 만들까.



나는 이제 이 버거운 상황을 참고 지내온지가 한달이 넘었다. 사실 그 전엔 전시를 쳐내느라 몸과 마음이 정말 말이 안되게 다운 되었었다. 그리고 나서 고양이를 구조하고 또 이렇게 다운되어있으니 이렇게 지쳐 생활한지 두세달이 넘어간다.


이 지속된 버닝아웃이랄까, 과도한 스트레스 상황, 몸과 마음이 모두 고갈된 상황에서 이젠 평소에 하던 작은 일에도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머리가 잘 굴러가질 않고 쉽게 지치며 쉽게 멘탈이 무너진다. 아마도 이런 상황이라 아이가 밥을 잘 먹는지 잘 있는지 하나에도 쉽게 휘청 거리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이 내가 이 진흙탕에서 걸어나오는 길일까. 고양이를 방사하고 고양이부터 멀리 떨어지면 모든게 해결될까, 내가 스스로 마인드컨트롤을 해서 마음만 다 잡고 결국 내가 다 참고 인내하면서 쳐내면 되는일일까, 정산 시즌이 지나면 좀 나아질까, ( 하지만 사업 하나 더 진행중이고 나는 거기에 또 많은 에너지를 부어야 하는데 여분의 에너지가 정말로 하나도 없다 )


나는 솔직히 누가 이젠 내 짐을 좀 나눠 들어줬으면 좋겠다. 그게 현실적으로 내 일을 해결해달라는게 아니라 이야기라도 편하게 나누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조차도 힘들다. 사람들은 아픈 고양이 이야기를 꺼내면 오히려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와 만나고 살고 있는 사람도 고양이 문제 때문에 별거를 얘기했고 나는 그 다음부터 길고양이 얘기는 일절 하지 않고 밥을 주러 갈때도 혼자 조용히, 그리고 거짓말로 둘러대어 나간다. 이런 현실이니 나는 혼자서 그냥 앓는다. 그나마 답답할때 여기 와서 생각과 감정을 글로 정리하면서 알아가며 다독인다. 이마저도 없으면 나는 더 앓았을것이다.


<라운이 구조전, 털이 다 죽어있다. 가끔 옛날 사진을 보면 그래도 지금의 현실을 조금은 긍정할수 있다. 지금은 그래도 털이 이렇지는 않다. 살도 조금 올라있다, 제발 다시 식욕이 올라 잘 먹고 잘 자길 기도 한다. 나는 무신론자지만 내가 어쩔수 없는 생명에 대한 일을 기도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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