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상담사 3급 연수를 마치고
한 달간의 연수가 끝이 났다. 첫 과목인 개인 상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해 진땀을 빼며 시작한 연수는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사춘기 아이를 이해하기 위한 동기에서 비롯된 자격증 도전은 예상보다 험난했고 나의 한계를 직면하면서 괴롭기도 했다. 연수가 진행될수록 모든 청소년상담사들이 존경스러워졌다.
극 내향형인 내가 막연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던 과목은 집단상담이었다. 연수의 꽃이라며 기대에 부푼 이들과 집단상담을 경험해 봤다는 이들 틈에서 나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려 애썼지만 하루 만에 나의 노력은 실패로 끝났다. 강사는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며 존중하는 훌륭한 성품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집단상담 연수 마지막 날 청소년 내담자에게 듣고 싶은 말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상담자로서의 자신을 꿈꾸는 기대와 간절함이 담긴 말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내 차례가 되었다.
"저는 상담자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으로 공부를 하게 된 거라서요. 듣고 싶은 말은 없습니다."
강사는 웃으며 그럼 아이에게 듣고 싶은 말을 해도 된다고 얘기했다. 나는 멋쩍게 대답했다.
"엄마 화가 줄었어." 요.
나에게는 이 말 한마디면 충분할 것 같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아직 나도 내 아이를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다른 청소년들을 돕겠다고?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나는 아직 자격이 없다.
연수 내내 청소년보다는 엄마의 입장에 더 많이 마음이 기울었다. 아직 아이와 해결되지 않는 내 안의 감정들이 불쑥 튀어나왔다. 엄마의 마음도 누가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생겼다. 이해와 공감으로 마음이 채워지고 나면 아이를 향해서도 너그러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양한 요령을 배우며 그럴듯한 흉내만 내는 육아는 금방 지친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용기를 내어 나를 개방하는 글을 쓰고 있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나와 같은 누군가를 위해서. 결국엔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서.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