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10주차의 기록
처음 우리 부부가 난임을 확인하고 브런치에 '난임' 관련해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무렵,
나의 첫 제자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난임병원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나 역시 '이 병원을 빨리 졸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지 어느덧 7개월째이다. 현재는 너무나 감사하게도 내 생각과 예상보다 빠르게 난임 병원을 졸업했다. 임신 9주차쯤 담당 의사샘께 드디어 '임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분만까지 잘 가실 것 같다. 이제 안오셔도 괜찮다.'라는 응원과 축하를 들었고(그 전까지는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인지, 그저 '아기가 잘 크고 있다' 정도의 리액션만 해주시던 분이었음) 10주차에는 분만병원에 가서 질초음파가 아닌 첫 배초음파로 아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아이의 출산까지는 아직도 많은 주차가 남아있기에, 나에게 걱정과 두려움은 남아있지만 벌써 임신 10주차에 들어서고 분만병원으로 진료병원을 옮겼다는 사실 자체가 그저 감격스럽고 다행스러운 기적처럼 느껴진다.
입덧약을 먹고 있음에도 여전히 속은 자주 울렁거리고 밤에 숙면을 취하기 힘들다. 두 달에 한 벌꼴로 하던 새치염색도 하지 못해서 정수리는 하얗게 변해가고 입덧으로 인해 영양가있는 충분한 식사를 하지 못해 얼굴은 노래져가고 있어서 하루하루 거울 속에 내가 초라해보인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임신 중기가 되고 다시 복직을 하게되면 지금보다는 에너지틱한 삶을 살 수 있을거라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난임'과 '시험관'은 부끄러운 일도 아니지만 굳이 자랑할 일도 아니다. 그래서 주변에 누가 시험관 시술을 받고 있는지는 알기가 어렵다. 난임병원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알기에 많은 이들이 조용히, 눈물겹게 시도하고 있다고 짐작할 뿐이다.
시험관을 시도하는 6개월 정도 동안 말로 다할 수 없는 절박함과 외로움이 배와 엉덩이에 찔리는 주사바늘의 통증보다, 약물로 인한 내 몸의 부작용들보다 훨씬 더 나를 아프게했다. 시험관을 시작하면서 하루에도 몇번씩 관련 정보를 검색해보고 시험관을 나와 동시간에 경험하고 있는 분들의 근황과 심정을 수없이 읽으면서 '이 모든 것이 나 혼자 겪는 상황이 아니고 나 혼자하는 싸움'이 아님을 알 수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2회의 시도만에 임신이 되었지만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며 고통받고 있는 많은 예비 엄마들이 있음을 알고 있다. 이 세상에 정해진 아픔의 총량이 있다면 그분들에게는 그 아픔이 조금만 덜 전달되기를.
겪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또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지만,
'시험관'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여봄으로써 임신 뿐만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내가 열어보지 못한 많고도 다양한 세상의 문이 있음을 이렇게 한번 더 느끼고 또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아직 안정기가 되려면 몇주 더 남았지만 이제 나는 너무 불안해하기보다는 내 안에서 콩콩 심장소리를 내는 아가를 믿기로 했다. 계속 이렇게 주수대로 잘 자라줄거지?
난임병원을 졸업했으니 난임일기는 끝났지만 아직 너무 많은 에피소드가 남아있을 내 하루하루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