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회복
’우우웅‘
해가 늬엿늬엿 지고 있는 어느 저녁, 아빠에게 메시지가 왔다.
’○○아, ☐☐,야(나와 내 동생 이름)
아빠가 젊을 때 폭군이었음을 용서해 주기 바란다.
모든 것을 예쁜 두 딸이 올바르게, 남보다 더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 잘못된 행동이었음을 이해하고 용서해주면 고맙겠구나.
너희 둘은 아빠처럼 하지 말고 엄마처럼 교육하길 바래.
아빠는 한참 전부터 후회하고 있단다.'
메시지를 보자마자 생각했다. ’아빠가 오랜만에 음주하셨군.‘
최근에 임신한 나와 곧 결혼식을 앞둔 여동생에게 갑자기 과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아빠. 두 딸이 자립하고 부모의 역할을 맡게 된다고 생각하니 어떤 마음의 변화 같은게 생기신걸까?
사실 아빠가 그렇게까지 심하게 폭력적인 분은 아니셨다. 나와 동생에게 체벌(어릴 때 잘못하면 손바닥을 때리거나 주먹으로 머리 콩! 등)이 있기는 했지만. 다만 나와 내 동생의 의견을 존중하시기보단 본인이 생각하기에 옳은 것을 독단적으로 강요하셨고 내가 갓 성인이 되었을 때까지도 생활방식에 대한 통제가 심한 편이었다. 큰 소리로 화를 내신 적도 많았다.
나는 순종적인 편이고 지금까지도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 나를 보며 자란 동생은 상대적으로 반항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하다. 그런 나를 보며 아빠는 최근에 ’나 때문에 네(나) 성격이 강하지 못한 것 같다.‘라는 말씀도 하셨다. 어릴 때도 아빠는 종종 내게 ’답답하다, 약아 빠지지 못했다. 느리다‘와 같은 피드백을 하시곤 했다. 아빠 기준에 나는 여전히 여리고 약한 사람인건가? 하는 마음과 동시에 아직도 나를 어린애 취급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착하고 선하다‘는 말을 썩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다 최근 이런 내 감정이 폭발하는 일이 생겼다. 남편과 저녁 산책을 하던 도중 남편이 내게 ”나는 네가 더 똑똑한 여자인 줄 알았는데, 결혼해보니 답답하기도 하고 좀 바보 같은 모습도 있더라. 속았어 흐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웃으면서 말하는 걸로 보아 장난끼도 어느 정도 섞여있었으나 그 말을 들은 나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내가 어느 정도 인정하는 사실도 있고 남편도 웃자고 한 얘기 같은데 나는 왜 그렇게 마음이 아팠던걸까‘ 밤새 고민하다가, 남편에게서 아빠를 느꼈기 때문이라는걸 깨달았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또 사랑받고 싶은 두 남자에게 같은 비난을 받은 느낌이었다.
독자분들께서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나의 아빠는 평생 우리 가족을 위해 헌신하셨고 나를 무척 사랑하신다. 나 역시 그런 아빠께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아빠가 나를 평가듯이 툭툭 던졌던 말들이 내게는 상처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음날 남편에게 내가 눈물까지 흘릴 정도로 속상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더불어 나는 절대 우리 아이에 대해 단정 짓거나 평가하는 태도를 가지지 않을거라고, 신체적 폭력은 당연하거니와 언어적 폭력도 폭력임을 늘 상기하며 지낼거라고 다짐했다. 한편으론 남편에게 부탁하는 말이기도 했겠지.
아빠의 평가대로 나는 누군가에게 ’바보같고 여리고 부족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 누군가에게 나는 ’성실하고 순하고 부드러운‘ 사람이기도 하다.
나의 아이가 생각하는 스스로에 대한 이미지가 나로 인해 고정되지 않고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부모가 되고 싶다. 그렇다고 아빠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아빠 나름대로의 교육방식이었을테니. 그리고 그 방식은 나에게 가르침도 주지않았는가. 심지어 아빠는 사과까지 하시는 성숙함을 보여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