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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armony Apr 20. 2020

53. 흰머리는 cool하다?

당신은 머리카락이 없어서 몰라요

'경기도 긴급재난소득'으로 인해 생각지도 않은 수입이 생겼다.

이 돈으로 뭘할까 생각하다가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바로 머리카락 '염색'이었다.

염색은 벌써 몇 개월전부터 고민하던 중이었다.

염색을 할까 말까 고민하게 되는 것은 비단 비싼 염색비용 때문만은 아니다. 염색은 현재도 그다지 좋지 않은 내 머릿결을 더욱 상하게 할 수 있고, 염색한 색상이 내게 잘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고, 한 번 염색을 시작하면 그 색을 모두 잘라낼 생각을 하기 전까지 무한 뿌리염색이라는 굴레에 갇히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의 염색 욕구는 단순히 '예뻐지기 위함'은 아니다. 

최근 거울을 볼 때마다 나를 거슬리게 하는 '흰머리' 요인이 더 컸다.


뒤늦은 공부를 하기 시작할 무렵, 내 머리에는 새치가 나기 시작했다. 특히 정면에서 잘 보이는 앞 정수리쪽에 그 양이 점점 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학원 동생이 쉬는시간에 나를 앉혀놓고 흰머리를 뽑아주는 놀이(?)를 하기에 이르렀었다. 그 당시에는 흰머리가 앞에 집중되어있는 것을 근거로 "공부를 하도 많이 해서 전두엽이 힘들었나봐." 하며 웃어넘겼는데 오히려 30대에 진입한 지금 여전히 눈에 띄는 내 흰머리 한올 한올이 그때보다 더 보기 싫다 느껴지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대학에 다시 입학하고 나서는 내 흰머리에 대해 언급하는 이가 별로 없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외국인에게 흰머리에 대한 의견을 들었던 경험이 있다.

외국 원어민이 진행하는 영어 회화 수업을 들었을 때 외국인 교수가 머리를 숙이고 열심히 중간고사 문제를 풀고있는 내게 와서는 조용히 말을 걸었다. 

"너 흰머리 있구나. 흰머리 멋져(cool). 잘라내지마."

시험을 보다가 갑자기 흰머리 어택을 받았던 그 멍한 기분이란.

그 때 그 외국인 교수의 헤어스타일이 대머리였던 것을 감안했을 때 순간적으로 억울할뻔하기도햇지만 당시에는 그 'cool'이라는 단어 선택이 어색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한편으로는 '그래, 이깟 흰머리, 내 고생의 흔적일 뿐이지.'라며 그의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작년 초까지만해도 아빠의 흰머리 염색 담당은 나였다. 비닐을 잘라 아빠의 목덜미에 두르고 염색약을 섞어서 아빠의 머리에 골고루 발라 드리면 되는 간단한 일이기는 했지만 할때마다 투덜거렸던 나였다. 

집에서 하는 셀프 염색이라 그런지 염색의 유지기간이 짧아 염색을 해드린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금세 흰머리로 뒤덮혀지는 아빠의 머리카락이 야속하기만 했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아빠가 내게 염색해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으시고 계속 흰머리를 유지하고 계신다. 문득 최근에 촬영한 아빠의 사진을 보니 아직도 내게는 잘생기고 멋진 아빠의 얼굴 위로 흰머리가 수북하다. 

이제 아빠도 염색이 귀찮아지신걸까? 아니면 투덜거리는 내게 자꾸 부탁하기 미안하셨던건가? 그것도 아니면.. 이젠 흰머리와 동행하시기로 마음먹으신걸까?  


종종 TV에서 볼 수 있는 백발의 유명인들을 보면 중후하고 멋있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지만 아빠의 백발은 이상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게는 항상 슈퍼맨 같았던 그 얼굴에 어느샌가 처져버린 눈과 피부, 이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진 인상과 더불어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카락을 가진 사진 속의 남자가 이제야 보인다.

이유가 어찌됬건 나는 아빠의 흰머리가 cool하다는 말을 하지는 못할 것 같다. 

철없는 딸은 아빠가 여전히 powerful and hansome이면 좋겠다. 


이번 긴급재난소득의 용도는 부모님 머리 염색과 맛있는 외식, 너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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