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맛을 감내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신규교사로서 일을 한지 100일 남짓이 지났다.
그동안 나에게는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는데, 가장 큰 일은 나의 첫 제자가 갑작스럽게 하늘나라로 떠난 일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을 겪은 며칠 뒤, 다른 학생 한 명을 또 갑작스레 전학 보내게 되었다.
학기 초, 생각보다 중한 우리반 아이들의 장애 정도와 생각보다 어려운 학교에서의 생활에 버거움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아이들을 미운 눈으로 바라본 날들이 떠올랐다.
아.. 이렇게 사무치게 마음 아플 것을 알았다면 더 잘해줄걸, 더 많이 칭찬할걸, 더 많이 웃게해줄걸, 더 많이 손 잡아볼걸. 후회의 눈물이 쏟아졌다. 그들과의 헤어짐의 원인이 내가 아닌 것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괜시리 나의 잘못인 것만 같이 느껴져서 힘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나.
아이가 죽던 날 밤, 대학병원 근처에서 들리던 대학생들의 왁자지껄한 소리와 유난히 휘영청 밝았던 달이 잊혀지지 않는다. 아이가 죽은 다음 주에도 여느때와 같이 학교에 출근하여 수업을 하고 쌓인 행정업무들을 정신없이 처리해야했던 것을 되돌아보며 교사의 삶이란 뭘까 막연히 생각해보았다.
교사 특히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대하는 교사의 삶이란, 매일매일의 순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과 사의 순간에 함께하는 것일 수 있겠구나. 나에게 와준 존엄한 존재들을 나는 더 소중하게 여기고 더 없이 사랑해줘야겠구나.
임용공부를 하며 '합격만 하면..!'하고 다짐했던 아주 기본적인 교사로서의 책임감과 역할을 너무 쉽게 져버리고 안일해지지 말아야지. 앞으로도 내앞에는 많은 헤어짐이 있겠구나. 그런 변화들에 둔감해지지 말고 덜 아파할 수 있도록 매순간 최선을 다해야겠구나. 아이들은 존재만으로도 나를 반성하게 한다.
나는 카페인이 몸에 잘 받는 타입이 아니다. 특히 아메리카노를 자주 마시는 주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쓰기만 한 아메리카노는 공짜로 준다고해도 먹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나도 그 쓴맛을 조금은 즐기게 되었다. 여기저기 의미 부여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내가 아주 조금, 인생의 쓴맛을 알게 된 것이라 여기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