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나를 양육하는 시간(2)

100일간 자신을 양육한다는 것의 의미

by 진정

4050에 비자발적 퇴직을 맞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큰 충격입니다.

하지만 긴 인생으로 바라보면 이 시기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방향으로 나를 다시 성장시키는 중요한 발달 단계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이 또한 수많은 인생의 위기들 중 하나를 지나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까지 익숙했던 것, 어쩌면 사랑한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들까지 내려놓아야 하는 시간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출근하던 길, 동료들과 함께 하던 점심시간, 회의로 가득 찬 오후에 마시던 커피, 차가 막혀 짜증이 나도 왠지 뿌듯한 퇴근길, 매달 어김없이 들어오던 월급과 목표를 달성하면 따르는 보상

한때는 벗어나고 싶다고 투덜거렸던 이 일상이 막상 내 손을 떠나고 나니 생각보다 깊은 상실감으로 다가옵니다.


처음의 해방감은 잠깐입니다.

'이제 좀 쉬어보자'라는 안도 뒤에 익숙함과 결별하는 고통과 공허가 밀려옵니다.


회사 안에서는 나름 쓸모 있는 사람이었는데 이제 보니 혼자서는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잘하는 사람을 뽑고 그들이 일하도록 돕는 게 나의 일이었는데 이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해야 하는 상황이 어색합니다. 실업급여 신청하는 것 하나도 쉽지 않고, 사업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 엄청나게 대단해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인들의 승진 소식이 들려올 때면 '모두가 잘 살고 있는데 나만 멈춰 선 건 아닐까'하는 마음에 주눅이 듭니다.


이 과정에서 우울감이 찾아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익숙한 세계가 한 번에 무너졌는데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닐까요.

중요한 건 이 감정을 '실패'로 생각하지 않고 '이제 삶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변화의 신호'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내 마음은 여전히 과거를 붙잡고 싶어 하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과 그것을 포기해야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때때로 밀려오는 우울감은 나에게 변화가 필요하다는 무의식의 건강한 메시지일지도 모릅니다.

이것을 받아들이고 그 성장통을 겪어내며 통과해 내야 합니다.


생각해 보면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때 신입사원 시절이 있었듯이 이제 막 회사 밖으로 나온 나는 어떤 면에서는 어린아이와 비슷한 단계입니다.


그래서 지금 해야 하는 일은, 잘하지 못한다고 내게 실망하고 주눅 드는 게 아니라 배우는 연습입니다. 잘하는 게 뭔지 관찰해 보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고, 잘 안되면 다그치기보다는 격려해 보는 것, 너무 힘들면 쉬게 하면서 다시 해보면 되지 않을까요? 어린 시절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내가 나의 보호자이자 응원자가 되어주어야 할 때입니다.


다만, '마음이 원할 때까지 푹 쉬어야지'라는 말로 동력을 완전히 꺼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휴식은 필요하지만, 늘어진 일상에 젖어들다 보면 의지가 흐려지고 현실에 적응하게 되며, 적응하는 순간 내가 진짜 원하는 삶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는 조금씩 멀어집니다.


비자발적으로 주어진 시간이지만, 어쩌면 내게 다시 오지 않을 황금 같은 시간이 앞에 와 있습니다.

동력이 남아 있는 100일 동안, 나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나의 삶을 스스로 이끌기 위한 근육을 키우는 시간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100일은 위기를 견디는 시간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다시 만나고 성장시키는 시간입니다.


자, 그 여정을 함께 시작해 볼까요?









작가의 이전글지금은 나를 양육하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