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딸이 되다

정서적 금수저로 만들어준 엄마의 믿음

by 친절한금금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누군가가 괴롭히거나 학교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학교에 가기 싫었다. 일부러 배가 아프다며 양호실에 들어가 학교가 끝날 때까지 침대에서 뛰거나 누워서 놀다가 하교를 하기도 했다. 이마저도 싫어서 아침 8시가 되면 갑자기 데굴데굴 구르며 배를 움켜 잡고 아프다고 호소했다. 어느 엄마가 배가 아픈 딸을 학교에 보내겠는가. 등교시간을 넘어 9시가 조금 지나면 나의 발악은 그쳤고 그렇게 하루 이틀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 늘어났다.


동네 병원을 가봐도 딱히 이상은 없었다. 정밀검사를 위해서 엄마는 나를 대학 병원에 데리고 가셨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큰 병원에 나를 데려간다고 은행에서 돈을 찾아서 갔던 엄마를 기억한다. 어린 나이에 내시경까지 해가면서 검사를 했던 나의 결과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꾀병에 진단명이 무엇이 있을까.


응답하라 1988처럼 옹기종기 동네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우리 동네에서 현숙이 아줌마네 집은 동네 사랑방이었다. 검사 결과를 듣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왁자지껄한 현숙이네 집으로 들어갔다. 검사를 받은 직후였고 배가 아프다고 혼신의 연기를 펼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죽 밖에는 먹을 수 없었다. 그런데 하필 그날 현숙이 아줌마가 멜론을 들고 나타나셨다. 세상 처음 보는 신기한 과일인데 향까지 좋은 저것은 그림의 떡이었다. 배가 아프다고 했던 말을 취소하고 싶을 정도로 욕심이 났지만 여기서 멈출 수 없어 꾸역 참았던 그날이 생생하다.


그날도 나는 정확하게 8시가 되면 배가 아프다고 방을 뒹굴었다. 9시가 지나서 얌전해진 나의 손을 잡고 엄마는 어디 갈 곳이 있다며 길을 나섰다. 허름한 주택가에 이상한 것들이 붙어있었던 집, 향초 냄새가 강하게 풍기는 그곳에는 무섭게 생긴 불상과 그림들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더 무섭게 생긴 아줌마가 나를 보고 이야기했다. “수양딸로 올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왜 저 아줌마의 딸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다음날부터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학교를 갔다. 한 달을 넘게 학교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하는 이야기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엄마에게 동네 학원을 보내달라고 얘기했다. 학원에 가면 으레 아이의 수준을 확인하기 위해서 평가를 하는데 나의 실력은 초등학교 2학년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결국 나보다 어린 친구들과 한 반에서 수업을 들으며 착실히 성적을 올려갔다. 처음에는 왜 내가 어린 친구들이랑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3학년 수업을 들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성적은 생각보다 빠르게 올라갔다. 공부를 했더니 내가 한만큼 결과가 나오는 것이 신기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희열이 있었다. 학교에서 시험을 봐도 90점이 넘어 상장을 타 오는 날도 있었다. 공부가 재밌다는 것보다 내가 노력한 만큼의 보상이 따르는 즐거움을 느꼈던 인생의 첫 순간이었다.


만약 엄마가 나를 믿어주지 않았다면? 꾀병이니까 학교에 가라고 등 떠밀었다면 나는 지금 어땠을까? 30년 동안 나는 이 일에 대해서 엄마와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날 나의 복통이 거짓말이었다고 말하기에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엄마를 속인 것이 내심 편치 않았다. 오늘의 글을 쓰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예전에 내가 배 아파서 학교 안 간다고 했을 때 이상한 곳에 가서 수양딸을 했잖아…?”

“너를 누구를 줘~”


엄마와 나의 기억이 달랐다. 나를 수양딸로 올리거나 그런 일이 없으시다고 했다. 대신 당시에 큰돈이었을 20만 원을 들여서 굿을 하셨다고 했다. 엄마도 내가 아픈 게 진짜가 아니라는 생각은 있으셨는데 워낙 나의 연기가 훌륭해서 안 믿을 수 없으셨다고 했다. 어떻게 해서든 내가 낫기를 간절히 바랐다.


엄마가 속아서 나를 믿어주신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살아오는 30년 동안 나의 마음속에는 엄마는 나를 분명히 믿고 계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어주신다는 강렬한 확신이 그 일을 통해 내 마음속에 안착되었다.


“경제적으로 흙수저로 태어났지만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외적 자극에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과 ‘할 수 있다’는 긍정적 인생 대본을 지니고 있습니다.

<정서적 흙수저와 정서적 금수저 최성애, 조벽 지음>


경제적 금수저는 아닐 수 있어도 나는 확실히 정서적 금수저를 부모님께 물려받았다. 어릴 때 형성된 긍정적 인생 대본으로 누군가와 비교하는 삶이 아니라 언제나 내가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느낀다. 부모님에게 받았던 금수저를 물려주기 위해서 나는 딸들에게 어떤 양육 태도를 보여야 할지 나의 이야기를 통해 생각해보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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