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관한 역사
나에게 안 배웠으면 하는 한 가지
부모님은 사이가 참 좋으시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26에 맞선으로 엄마와 결혼했던 아빠는 참 혈기왕성하셨다.
친구들을 좋아했고 그들과 술 마시기를 즐겨했다. 한 미모 했던 엄마를 끔찍이 아꼈던 아빠는 술을 드시면 엄마에 대한 애정을 과하게 드러내셨고 주체할 수 없는 흥분으로 가끔 집안에 화를 미치기도 했었다.
그럴 때면 엄마는 당황하지 않고 내 손을 잡은 채 근처에 있는 할아버지 집으로 갔다. 당연히 우리가 그곳에 있을 것이라 것을 알고 아빠는 채 몇 분도 되지 않아서 우리를 찾으러 왔다. 당시에 할아버지 또한 젊으셨기 때문에 26살인 아들을 제압할 수 있는 힘이 있으셨다. “술을 마셨으면 곱게 가서 자라” 한마디 하시면 만취상태였던 아빠는 조용히 방에 들어가 잠을 주무셨다. 그리고 다음날에 엄마가 끓여주는 북엇국을 마시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평화로운 날이 이어졌다.
하루는 아빠가 술에 취해 오시더니 내 방에 있는 책들을 모두 바닥에 던지셨다. “공부도 안 하는 게 이런 책이 왜 필요해, 다 불태워버려”. 나는 엄마 뒤에 숨어서 울 수밖에 없었다. 술에 취한 아빠를 말리고 어르고 달래는 것은 주사 제어 학위라도 받은 것 같은 엄마의 몫이었다. 엄마는 아빠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낭랑한 목소리로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 술 취해 흥분한 아빠를 어르고 달랬다.
30대 중반이 되시면서 아빠는 술을 즐기실 뿐 여타의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셨다. 문제는 나였다. 수능이 끝나고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맥주를 마신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에는 맥주를 가볍게 한 잔 마셨지만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본격적인 술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대학교 오티는 강촌에서 했는데 선배들이 있는 방을 돌아다니면서 인사를 하고 술을 마셨던 것 같다. 워낙 목소리가 크고 이름조차 독특했던 나는 과에 소문이 자자했고 주사까지 더해져 유명인사가 되어버렸다.
술을 좀 적당히 마시는 습관을 어른에게 배웠으면 좋았을 텐데 처음 시작이 친구들 혹은 선배들이었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필름이 끊기기 전까지 술을 마셨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보자 싶은 마음으로 술을 먹고 눈을 뜨면 기숙사 천장이 보이는 일의 반복이었다. 물을 한 두 컵 마셔서는 갈증이 해소되지 않아 몇 푼 있지 않은 동전을 긁어 모아 기숙사 자판기에서 과일맛 음료수를 마시며 혓바닥에 남아있는 술맛을 중화시키려고 했다.
대학생활의 묘미는 동아리 생활이 아닐까? 스포츠 하나쯤 배우고 싶었던 나는 검도 동아리에 들어갔고 활력이 넘치는 선배들 덕분에 술 또한 주야장천 마셨던 것 같다. 특히 전설의 홈런볼 선배가 나타나는 날에 신입생들은 초주검을 각오하며 동아리방에 들어왔다.
졸업한 선배가 왔기 때문에 기존에 시켜먹던 짜장과 짬뽕, 탕수육 외 양장피와 라조기 같은 고급 요리도 놓여있었다. 그리고 홈런볼 과자도 함께 놓여 있었다. 국민과자 홈런볼은 플라스틱 케이스에 과자가 들어있다. 재미있는 건 이 플라스틱 케이스에 소주가 딱 한 병 들어간다는 것이다. 신입생들을 환영한다는 의미로 이것을 원샷하는 게 동아리의 전설처럼 되어 있었다.
안 먹어도 상관없지만 나의 젊은 패기는 “할 수 있어”라고 외치며 선배 앞으로 당당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주문을 외우듯이 홈런볼에 담긴 소주를 들이키며 나는 속으로 외쳤다 “이건 물이다 이건 물이다”. 차갑고 농밀한 감촉이 목젖을 스쳐갔고 꿀꺽 거림을 대여섯 번 했을까? 나는 정말 소주 한 병을 원샷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이모집에 있었다.
당시 나는 기숙사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선배들이 왜 50분 거리에 살고 있는 이모에게 전화를 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눈을 뜨자마자 이모에게 등짝을 한 대 세게 맞고는 감자탕을 먹으며 해장한 뒤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젊은 피가 흐르는 나는 그날 저녁 또 술을 먹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봐도 주사가 참 심했다. 침도 뱉고 소리도 지르고 싸우는 일도 있었던 걸 보면 나는 술에 대해서는 자제력이 없는 약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분위기에 취하고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는 게 술이다 보니 한 없이 마셨다. 이런 나의 주사를 바꿔준 것은 바로 남편이다. 그 어떤 사람의 말도 듣지 않았던 내가 술을 줄이고 술 마시면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던 이유는 남편과 끊임없는 싸움 때문이었다.
회사 동료였던 남편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주민이었다. 매일 같이 술을 마시고 웃다 싸우기를 반복했다. 싸우면서 정도 들었지만 악감정이 많은 게 사실인데 너무 심하게 싸우다 보니 술을 먹고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꼬박 2년이 걸렸나 보다. 이제는 정신을 잃게 하는 소주를 끊고 맥주만 마시기로 했다. 그나마 맥주는 덜 취하니까.
7년 동안 가끔 어쩌다 소주에 맥주를 먹고 취한 적이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크게 취하는 일 없이 술을 즐기면서 지내고 있다. 술이라는 것이 즐거운 일이 있을 때 축배를 들고 서로 즐기자고 마시는 것이지 죽자고 들이부으며 무식하게 먹는 일은 옛날 일인 것 같다.
속상해서 마시고 취하는 바보 같은 짓, 나의 주량을 모르고 덤비는 일을 딸들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에게 과시하기 위하여 분위기를 맞춘답시고 마시기에 술은 건강에 너무 해롭다. 제발 바라건대 엄마의 주사와 객기만은 배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처럼 너의 주량 것 마시고 그 자리를 즐기는 사람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