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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금금 Dec 07. 2023

결혼 10주년에 선물 받은 스미싱 문자

남들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일이 현실이 되어 다가오는 순간, 얼마나 기가 막혔는지 모른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목요일 저녁이었다. 결혼기념일을 맞이하여 예약한 풀빌라에 가려면 서둘러 일과를 마치고 짐을 챙겨야 했다. 속으로는 쌓야할 짐들을 생각하면서 아이들 숙제를 봐주기 위해 식탁에 앉아 있었다. 그때 방에서 갸웃 거리는 남편을 흘깃 쳐다보았다. 어리둥절하면서 심하게 고개를 가로 짓는 남편에게 무슨 문제가 발생했음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남편은 핸드폰 문자를 유심히 보더니 조용히 읊조렸다.


"이 형한테 아버지가 없을 텐데..."


남편은 부고문자를 뚫어져라 보더니 장례식장이 어딘지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 주소창을 열었다. 하지만 어떤 정보도 알 수 없었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어 바로 창을 꺼버렸다. 문자를 보낸 당사자와 연락이 닿지 않아 답답한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일 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지던 순간 드디어 연락이 왔다.


"너 그거 인터넷 주소 안 눌렀지? 그거 내가 보낸 거 아니야 누르면 안 돼"


이미 눌러버린 남편은 헛웃음을 질 뿐이었다. 유튜브에서 보이스 피싱하는 사람들을 모아 놓은 영상을 보며 이런 걸 도대체 누가 당하냐면서 웃었던 게 어제 일 같은데, 부고 문자에 속아 url을 누르고야 말았다. 웬만해서는 문자에서 오는 인터넷 주소에 손을 대지 않는데 해도 해도 수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새는 결혼식, 돌잔치와 같은 경조사를 이용한 스미싱 문자로 사기를 치는 형태가 유행한다고 한다. 평소 의심이 많은 남편도 부고라는 특수한 상황에 이런 일을 겪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진짜 사고는 여기서부터였다. 이런 일이 처음이었던 우리는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찾았다. 불법스팸대응센터 118에 전화했더니 밤에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려주었다. 세세하게 알려주는 것은 아니었다. 문자로 해야 할 내용들을 보내주었는데 몇 번씩 읽어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번호에 적힌 대로 대응을 한 뒤 남편이 선택한 것은 포맷을 하는 것이었다. 핸드폰 안에 은행과 관련된 모든 것이 있는 요즘 시대에 한 번 해킹으로 무슨 일을 당할지 어찌 안단말인가. 하지만 남편의 핸드폰은 7년이 넘은 삼성 노트 9이었다. 사진 용량도 많았을뿐더러 깔려있던 앱을 다시 설치할 생각에 까마득했다. 마음먹으면 해치우고 마는 남편은 sd카드에 사진을 모두 옮긴 뒤 핸드폰에서 카드를 빼내고 망설임 없이 포맷을 했다.


시간은 1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결혼 10주년 여행을 가기 위한 짐을 쌓아야 하는데 마음의 짐짝만 늘어나 피로도가 올라간 나는 당장 이불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결국 남편이 포맷을 완료하고 난 후 간단한 뒷정리만 하고 이불속으로 숨어버렸다. 오후 3시 입실이니 내일 짐을 싸도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바닥난 체력에 충전기를 꽂기로 했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나니 눈이 무섭게 내리기 시작했다. 풀빌라에서 먹을 새우와 가리비를 소래포구에서 사고 근처 마트에 들러 음료와 간식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식사의 메인은 고기라서 동네 정육점에 들러 고기까지 사고 나서 집에 오니, 출발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았다. 집을 정리하고 갈 여유도 없이 가서 놀 때 입을 옷 정도만 간단히 챙기고 결혼기념일 여행을 위해 길을 나섰다. 어차피 1박인데 다녀와서 설거지와 밀린 빨래를 하면 될 일이었다.


결혼 10년을 기념한다면서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어째 바쁘다 바쁘다 열매를 선물 받은 것 같다. 스미싱 문자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촌각을 다투며 준비하지 않았을 텐데. 그나마 긍정회로를 돌리자면 남편의 핸드폰이 새것 같은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7년을 넘게 쓰다 보니 인터넷 창을 들어갈 때도 매우 느려서 답답해했었는데 포맷을 한 덕분에 새 거처럼 빠른 속도로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다. 핸드폰 기능들도 업데이트를 해서인지 사진을 찍을 때, 그동안 써보지 못했던 기능을 사용하며 신기해한다.


다행히 아직까지 금전적인 피해는 없다. 스미싱 사기를 하는 사람도 나쁘지만 당하지 않기 위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한다. 나 같은 피해가 없길 바라며.. 인터넷 주소 함부로 누르지 말자! 조심, 또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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