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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금금 Dec 12. 2023

어머니, 7시에 배추 씻을까요?

시근이 든 남편의 김장

이제 시댁 김장만 끝내면 올해 해야 할 큰 산을 넘기고 편히 연말을 맞이하면 된다. 토요일에 양념을 치댈 테지만 배추를 뽑아서 저리는 과정이 가장 힘든 것을 알기에 남편은 금요일에 연차를 내고 목요일 오후에 부산에 내려가자고 했다.


작년에는 금요일 에 도착해 배추를 자르고 저렸더니 장거리 운전으로 인한 피로와 함께 강행되는 김장 일정을 몸이 버텨내지 못했다. 목요일 오후에 출발한 만큼 금요일 일정은 여유가 넘쳤다.


김장을 위해 내려온 이유도 있었지만 남편이 시댁에 오는 것을 서두른 것은 부모님에게 드릴 선물을 사기 위해서였다. 올해가 가기 전에 양가에 필요한 것들 해드리고 싶다는 남편이었다. 친정에는 20년이 다돼서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티브이를 새것으로 바꿔 드렸다. 시댁에서는 시부모님의 신발과 가벼운 외투를 해드렸다. 평소 부모님들을 챙겨드리기는 했지만 자신에게 검소한 남편인 것을 어머니가 알기에 아들과 함께한 쇼핑과 선물은 남달랐다.


"세상에 네가 사준 신발을 신으니까 너무 좋다. 옷도 어쩜 마음에 쏙 들어"


결혼하고 처음에 남편을 생각하면 굉장한 변화였다. 살갑지 않은 아들일뿐더러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는 모든 것이 어색했다. 결혼을 몇 달 앞둔 시점, 집 근처 시누집에 부모님이 놀러 오셨을 때도 굳이 가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연세 드신 부모님이 김장할 때 힘드실까 봐, 장인 장모님이 수고스러우실까 봐 어떻게든 힘든 일을 마다 하지 않는 아들이자 사위가 되었다.


"결혼하고 시근이 들었는가 보네"


어머니는 요새 남편을 보고 이런 말을 자주 한다. 뉘앙스로 보아 철이 들었다는 것 같았다. 대표적인 것으로 보면 김장을 들 수 있다. 요새 남편을 보고 내내 하는 말이 있다.


"첫 김장에는 나 혼자 왔는데, 이제 남편 없으면 김장을 못하겠어"


남편은 첫 김장에 참여하지 않았다. 김장에 본인이 가야 하는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첫 김장 이후로는 출산을 이유로 양가 김장에 모두 가지 못했다.


결혼하고 5년이 지난 시점부터 드릉드릉 김장에 참여하기 위한 시동이 걸렸다. 김치를 주 식단으로 하는 우리 집 특성상 김장에 꼭 참석하여 우리가 먹을 김치를 담가와야 했다. 아이들이 어렸던 만큼 엄마인 내가 내려가니 줄줄이 소시지처럼 남편과 아이들이 함께했다. 이제 갓 기어 다니는 아이를 들춰 업고 할 수 없었기에 남편은 주로 방에서 아이를 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김치를 남편에게 치대라고 하기엔 요똥이라지만 최후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검은 속내를 드러내자면 나란히 어머니, 시누, 동서와 앉아 빨간 장갑을 끼고 김치를 치대며 막걸리 한 잔 하는 기쁨을 양보 할 수 없었다. 당당하게 허가된 즐거운 노동의 시간 아닌가. 수육이 대령되어 있고 막바로 치대서 먹을 수 있는 절인 배추, 양념이 눈앞에 즐비해 있으니 앉은자리에서 절대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결혼 10년이 되고 아이들이 부모의 손이 필요 없는 나이가 되었다. 남편은 3년 전부터 적극적으로 김장에 참여하고 있다. 주로 힘을 많이 쓰는 일 혹은 뒷 설거지와 마무리를 담당했다. 처가에서 사위는 큰 키만큼이나 든든한 김장인력이었다. 일머리가 좋아서 알아서 필요한 것들을 할뿐더러 간을 어찌나 잘 보는지 장모님 이모님들 할 것 없이 "사위, 와서 이것 좀 먹어봐"라고 말하기 일쑤다.


언제나 시댁 김장 2주 전에 친정 김장을 하기 때문에 시댁 김장에 가면 해야 할 일들이 눈에 보인다. 예전에는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던 남편과 나는 대규모 친정 김장으로 훈련되어 시댁 김장에 누구보다 앞서서 나섰다.


마당에는 아버지가 키운 황금배추가 성처럼 쌓아져 있었다. 와... 친정에서 150 포기를 해봤지만 어디까지나 엄마와 이모들이 주가 돼서 하는 김장이라 심적 부담이 없었는데, 시댁은 내 키보다 높게 쌓인 100 포기를 직접 해치워야 한다니 탄성이 자아졌다.



오후 세시가 되어 김치를 절이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내가 자르면 남편이 소금이 절이는 것이었다. 배추 농사가 워낙 잘돼서 한 품에 안아도 팔을 다 두룰 수 없을 정도로 큰 배추를 자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칼 이리 줘" 남편은 나에게 칼을 뺏어가 농구공보다 큰 배추를 반으로 가르기 시작했다.



"배추가 크니까 백 포기만 하자"


백 포기를 헤아리며 고무통에 배추를 절였다. 소금물에 적신 배추 사이에 굵은소금을 뿌려 쌓다 보니 큰 고무통 3개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어차피 숨이 죽으면 괜찮을 거라며 피사의 탑처럼 배추를 겨우 겨우 쌓고 나니 훌쩍 두 시간이 지났다. 점심에 분명 배부르게 먹은 것 같은데 잠시 일했다고 배에서 요란하게도 신호를 보냈다.


근처 고깃집에서 배부르게 고기를 먹고 12시 배추 뒤집기를 기다렸다.


"여자들은 다 들어가 내가 알아서 할게"


밤 12시가 되어 남편은 맨손으로 배추 뒤집기에 나섰다. 보다 못해 동서와 시동생과 함께 붙어서 했지만 고무통 3개에서 아래쪽에 깔린 절인 배추와 위에 있는 배추를 섞는 일은 훌륭한 지도자필요했다. 그동안에어머니가 그 역할을 해줬지만 올해 시댁에서는 남편의 지휘아래 일사천리로 뒤집기가 끝날 수 있었다.


남편과 나는 자기 전에 어머니와 잠시 미팅을 했다. 매년 김장 때 어머니는 솔선수범하시는 모습을 보이셨다. 먼저 일어나셔서 배추를 혼자 씻으셨다. 그러다 일어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일이 마쳐지는데, 남편과 나는 한꺼번에 달려들어 빨리 일을 마치는 쪽으로 진행하기를 요청드렸다.


"어머니, 7시에 일어나서 배추 씻으면 될까요?"


"그래 내가 일어나서 깨우면 그때 나와"


금요일 밤에 출발해서 토요일 새벽 4시에 도착한 시누와 저녁에 시댁으로 온 동서 식구와 함께 아침 7시가 되어 마당으로 모였다. 시누 남편, 시동생, 남편이 고무통 하나씩 잡고 배추를 씻었다. 시누와 내가 배추 꽁지를 다듬어서 동서에게 주면 물이 빠질 수 있도록 켜켜이 쌓는 일을 했다. 사람이 많으니 그 많던 배추들이 곱게 자리를 잡고 나란히 줄을 서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뭇 화목해 보이는 김장 시스템에 흡족한 미소가 걸렸다.



양념을 하고 치댄  후 각자 남편을 호출하면 가장자리를 곱게 닦아 우거지를 덮어 뚜껑을 씌우는 일까지 모든 것이 술술 진행됐다. 다만 쭈그려 앉아서 양념을 치대는 일은 몇 년을 해도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앉았다 일어나려니 벌벌 떨리는 개다리 춤을 올해도 추게 되었다. 장갑에 뭍은 양념만 아니라면 야옹 야옹 코에 침을 바르고 싶은 지경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뒤는 남편에게 맡겨두고 시린 발을 방안으로 들이 밀고 거실에서 창 밖에 마당을 바라봤다. 아버지를 닮아 일머리가 좋은 남편은 청소라면 어디 가도 빠지지 않는 선수다. 고춧가루 뭍은 장갑을 씻어 빨랫줄에 걸고 고무통을 리드미컬하게 씻어내는 남편이 보였다. 일 잘하는 것은 좋은데 저렇게 열심히 해서 탈 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입을 모아 말하셨다.



"이번 김장은 큰 아들 덕분에 수월했어"

"아들이 시근 머리가 들었는지 참 잘해"


'시근'이란 말은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할 줄 아는 힘이라는 경상도 표현이라고 나오던데, 철이 들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남편에게 수고했다 이야기하면 그냥 일을 빨리 끝내고 싶었을 뿐이라고 하겠지만, 내가 보기에도 남편은 더 나은 아빠이자 아들 그리고 남편이 되어가고 있다.


나보다 결혼을 훨씬 먼저 한 시누가 그동안 시댁 김장을 나서서 했지만 이제 수험생 엄마가 되어 미리 올 수 없는 상황에 다행스럽게도 시근 머리가 든 남편이 등장했다. 덕분에 앞으로 어머니가 고생을 심하게 하지는 않으실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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