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 때 도둑질을 즐겼다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게 해주는 어른의 역할
어렸을 적의 기억이다. 허름한 형제 슈퍼는 결제하는 곳에서 진열대 사이의 공간이 잘 보이지 않는 장소였다. 어둡고 주인아주머니가 잘 보이지 않는 그 공간에서 나는 주로 초코파이를 훔쳤다. 아무도 모르게 조심스럽게 초코파이를 집어 들고 옷 사이로 숨겨 50원짜리 사탕 하나를 사서 나오면, 원래의 값보다 원하는 것들을 더 먹을 수 있었다.
재미로 시작했던 도둑질은 몇 번의 성공으로 인해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한 번도 실패해 보지 않았던 초코파이 도둑질은 쇼핑몰에 있는 문구점으로 나쁜 손을 뻗치게 했다. 지금은 흔하게 있는 모닝글로리, 알파 문고 혹은 다이소와 같은 것들이 있기 전, 동네에 생긴 팬시점은 눈이 돌아가게 반짝이는 곳이었다.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으로 하던 만큼만 하면 됐었다. 하지만 최신식 팬시점에는 허술한 형제 슈퍼와는 다르게 매의 눈을 하고 있는 사장님이 버티고 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도둑질을 하려고 살피던 나는 현장에서 검거되고야 말았다.
어떻게 내가 집으로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단칸방에서 엄마에게 죽도록 맞고 머리를 홀딱 깎아 홀랑 벗겨 벌세울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던 엄마의 단호했던 한 마디가 40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내 가슴에 박혀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나는 엄마에게 자주 혼이 났었다. 말을 안 듣거나 버릇없어서 혼나는 일은 파리채, 빗자루 가리지 않고 매타작을 불러일으켰다. 그랬던 엄마가 나를 혼냈던 모든 장비들을 창고에 넣으시며 이야기하셨다. “이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너를 때리지 않을 거야” 엄마는 그 약속을 정말 지키셨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초등학교 2학년 전에 내가 저질렀던 도둑일은 누가 봐도 도덕적으로 잘못되고 크게 혼나야 마땅한 일이라 정말 호되게 혼이 났다.
엄마의 회초리보다 가슴을 찌르는 한 마디로 인해서 나는 두 번 다시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 맞아서 생긴 빨간 생채기는 사라졌지만 말이 주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체감한다. 7살이 넘은 나이에 삭발은 죽기보다 하기 싫었고 홀딱 벗겨져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총을 받는다는 사실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크게 혼이 났었던 건 도둑질과 설탕물을 타오라고 했을 때 미원을 타는 장난을 했던 것 외에는 없었던 것 같다(미원이 그렇게 맛없는 줄 모르고 정말 장난을 한 것이었는데 음식을 하는 입장이 되니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긴 했던 것 같다). 정말 혼나야 할 때 강하게 혼내고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친절하지만 단호했던 엄마의 훈계만 있었다. 나는 항상 엄마 같은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화내야 할 때를 알고 나의 의사를 똑바로 전달하는 사람, 그 외적인 모습에도 엄마는 항상 밝고 사람들을 배려하며 나에게 한없이 현명한 분이다.
토익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서울에 있는 이모집에서 두 달 정도 머무른 적이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입장이라 내 지갑에는 엄마가 보내 주신 용돈이 전부인 상황이었다. 학원비를 내고 점심으로 컵라면을 사 먹을 정도의 돈이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돈이 비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평소 꼼꼼하지 못한 나는 내가 돈을 잘못 헤아려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이겠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느 날처럼 이모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다가 잠시 방에서 가져올 것이 생각나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나는 마주치지 말아야 할 것을 발견하고 말았다. 차라리 내 기억의 오류로 치부하고 넘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사촌 동생이 내 지갑에서 천 원짜리 3장을 꺼내고 있는 것을 마주하게 되었다.
당시 이모집에 있으면서 나는 그들보다 나이가 많고 대학을 갔다는 이유로 자주 훈계를 일삼곤 했다. 꼰대도 이런 꼰대가 없었을 것이다. 너희들 때문에 이모가 걱정이 많다는 이유로 공부를 봐주면서 얼마나 잔소리를 퍼부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둑질하는 것을 발견하고 말았다. 순간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으로 일순간 정적이 되었다. 하지만 과거가 있는 사람은 전처를 밟을 수밖에 없는 법. 나는 엄마가 했던 것처럼 동생을 몹시 나무랐다.
이모에게는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지만 동생과의 대화에서 심한 말을 해가면서 못된 행동을 바로 잡아주고 싶었다. 동생은 그 뒤로 나의 지갑에 손을 대지 않았지만 나는 알게 모르게 한 번씩 지갑에 있는 돈을 확인하곤 했다.
<불편한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2개를 훔치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나이가 지긋한 편의점 종업원 아주머니는 도둑질 한 아이에게 화를 내고 꾸짖는다. 반면 주인공 독고(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는 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일러주었다.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도덕적인 사실을 전달했다. 사실 둘은 묘한 연대감이 있는 사이처럼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독고가 아이에게 안 된다고 이야기했을 때 진심이 전달된다고 느껴졌다.
나는 사촌동생을 매일 나무라기만 했지 일종의 연대감이 없었다. 먼저 살아 본 선배로써 느껴지는 우월감으로 동생을 가르치려고만 했지 교감을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과연 내가 “도둑질을 하면 안 돼”라고 말했을 때 동생은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였을까?
엄마가 나에게 모진 말과 회초리로 체벌을 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도둑질은 정말 나쁜 것이고 다시는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에게 항상 믿음과 사랑을 주며 모든 일에 함께 했던 엄마이기 때문에 그 말에 신뢰도는 가히 절대적이었다.
도둑질은 어렸을 때 한 번씩 해 볼 수 있는 악마의 속삭임이라고 한다. 과거 일을 이야기할 때 친구들도 “나도 해봤어”라고 하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나쁜 길인 줄 알고 간다면 잘못된 것이지만 그런 것조차 모르고 한 행동에 대해서는 올바른 행동교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불편한 편의점>에서 독고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바른 길로 갈 수 있게 도와주는 캐릭터였다. 책을 읽는 내내 독고와 같은 어른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아이들이 직면한 문제에서 따지기보다는 잘 들어주고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진짜 어른 그리고 아이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믿음을 쌓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