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친절한금금 Jul 02. 2024

감자전하면 생각나는 그사람

장마가 시작되었다.


빗소리를 담은 지글지글 소리가 프라이팬에서 울려 퍼진다. 프라이팬에서 빗소리를 내며 구워지고 있는 것은 올해 농사로 지은 감자전이다. 친정 부모님이 직접 키우시고 직접 가져다 주신 감자전을 특히 올해 잊지 못할 것 같다.


태양이 가장 높게 뜨고 낮의 길이가 길어지는 하지가 지나면 감자를 캔다. 작년 여름 남편과 아이들은 나 없이 친정에 내려가 감자를 캤다.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해야 했기에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대낮에 일을 했다. 가만히 있어도 꽝꽝 얼어 있는 하드가 녹아내릴 것 같은 더위에 남편은 기절할 것 같은 더위였다고 표현했다.


올해도 감자를 캘 생각으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잡혀버린 강의 일정과 큰 아이 친구의 생일 파티로 감자를 캐러 가지 못해 죄송하다는 인사만 건넸다. 엄마는 막내 삼촌이 와서 도와줄 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수업을 가는 아침에도 마음은 감자밭에 가있었다. 무릎이 불편한 엄마와 폐활량이 좋지 못한 아빠가 감자를 캐시는데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엄마, 나 수업 끝나고 오후에 감자 캐면 안 될까요?"

"아니야, 새벽에 막내삼촌이랑 같이 하면 되니까 신경 쓰지 마"


한사코 새벽에 일어나 토요일에 감자를 캐겠다는 심지 굳은 말씀에 올해 감자 농사에는 참여할 수 없다고 마음을 접었다.


새벽부터 감자를 고 고르던 바쁜 친정의 일상만큼이나 나의 하루도 정신없이 돌아갔다. 강의를 마치고 집에 가자마자 딸 친구의 생일파티에 아이 둘을 데리고 갔다. 내향적인 성격에 엄마들 틈 사이에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모습을 위안 삼아 자리를 지켰다. 그때 평소 먼저 연락하시는 법이 없던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뭐 하니?"

"지금 딸 친구 생일 파티 왔는데 저녁에는 저 머리 하러 미용실가요"


아빠는 감자를 가져다주러 오시려고 하셨다. 하지만 이미 일정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던 나는 감사한 마음을 뒤로했다. 부모님을 뵙는 건 좋지만 이미 오전부터 줄줄이 이어진 스케줄에 이제 그만 누워서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돌려 말하듯 거절의 의사를 전하고 장마를 대비해 머리까지 매직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와 기절하듯 누웠다.


다음날 새벽 6시 전화가 왔다.


"딸 일어났어?"

"엄마 감자 가지고 가려고 하는데 오늘 무슨 일 있니?"


사전에 예고 없이 오시는 부모님이 아니셨는데 햇감자를 주고 싶은 마음이 전화기를 넘어 전달되었다. 부모님은 아침에 밭에 물을 주고 할 일을 마치신 뒤 딸 집에 오셨다. 트렁크에서 덩굴에 방울방울 열린 호박처럼 박스 더미가 쏟아져 나왔다. 하나는 햇감자 박스, 하나는 아이들 과자 박스, 하나는 오늘 아침에 갓 따은 상추, 오이 등 싱싱한 채소들이었다.


마트에서 시장보기가 무서운 요즘이다. 오이는 제 철이라 한 개에 500원을 주고 사기도 하지만 엄마가 직접 기른 오이 맛을 따라갈 수가 없다. 애호박과 양배추까지 집에 텅텅 빈 냉장고를 가득 채워 줄 식자재들이 쏟아져 나와 손으로 입을 막고 탄성을 질렀다.


"엄마, 고마워요"


엄마는 오자마자 팔을 걷어 부쳤다. 딸 집에 일찍 와봐야 밥 한 끼 제대로 얻어먹지 못할 것을 아시고 이미 본인 집에서 아침을 드시고 오셨다. 하지만 아직 아침도 안 먹은 손주들과 사위를 보니 가만히 계시질 못하셨나 보다.


"감자전 해 먹을까?"


엄마는 이미 껍질까지 깐 감자를 꺼내 들었다. 강판을 준비해서 드리니 리드미컬한 손동작으로 주먹만 한 감자를 자갈만큼 작게 만들어 놓으셨다. 작은 감자들은 칼을 이용해 탕탕탕 소리를 내며 채를 썰었다. 옆에서 엄마를 40년 가까이 보아온 나도 9년의 인생을 살고 있는 나의 딸도 탄성을 자아냈다. 엄마로 살아온 지 9년이 되었지만 칼 질과 거리가 먼 나는 무림의 고수를 본 것처럼 경이로운 눈빛으로 친정 엄마를 바라봤다. 덩달아 옆에 있던 나의 딸도 물개 박수를 쳤다.


"우와" 내가 놀란 눈으로 소리를 냈다.

"할머니 우리 집에서 같이 살면 안 되나요?" 나의 딸이 말했다.



깔깔 거리며 감자를 갈다 팔에 힘이 빠진 엄마는 채칼로 남은 감자들을 썰어내셨다. 거의 다 감자를 썰어 갈 때쯤이었다.


"아야"


열심히 감자를 갈던 엄마는 감자대신 손가락이 도려내져 빨간 피를 보았다. 손녀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할머니를 치료하기 위해 밴드를 들고 왔다. 하나면 충분한 밴드를 서로의 것을 붙여야 한다며 상처보다 두 배는 넓은 면적으로 붙여 드렸다.


손에 물 닿으면 안 된다고 하였지만 엄마는 감자전 만들기를 멈추지 않으셨다. 강판에 간 감자와 채 썬 감자에 부침가루를 넣었다. 물을 살짝 넣고 저어주니 반죽은 짧은 시간만에 완성되었다. 엄마의 요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엄마는 요리를 하면서 단 한 번도 짜증을 내 거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간단하지만 맛이 있고 여럿이 같이 즐길 수 있는 것이 엄마의 요리였다.  



아침을 먹지 않은 우리 식구들은 식탁에 둘러앉아 친정 엄마가 해주신 감자전을 먹었다. 감자전을 먹으며 지난번 직장 동료에게 받은 도토리 묵을 꺼냈다.


"엄마 도토리묵 무침 해주면 안 될까요?"

"그럴까~"


엄마는 안 되는 것이 없다. 집에서 따오신 오이와 상추를 썰어 간장, 매실액, 고춧가루, 참깨를 넣고 버무린 뒤 씻은 도토리 묵을 넣고 묵이 다치지 않게 달래듯 버무려 뚝딱 무침을 완성하였다.


노랗다 못해 잘 익은 갈색 빛이 감도는 감자전을 간장과 식초가 섞인 초간장에 찍어 먹었다. 퍽퍽할 것 같은 감자는 없었다. 촉촉하면서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감자의 포실한 맛과 함께 바사삭 소리를 내는 감자튀김 같은 감자전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감자전 하나에 도토리묵과 오이를 함께 먹으면 여기가 산 아래 3대째 이어오던 맛집인가 싶다.



무엇보다 감자전의 기억이 오래가는 건 큰 아이의 반응 때문이었다. 평소 고기를 좋아하는 딸은 야채 종류는 잘 먹으려 하지 않는다. 감자전은 그나마 감자튀김과 비슷한 맛일까 싶어 아이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런데... 세상에 감자전을 추가하고 또 추가해서 먹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친정 엄마가 남겨 놓은 반죽이 었는데 다음 날에도 해달라고 요청을 했다. 돈가스와 감자전 중 감자전 만을 공략하는 딸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친구를 초대 한 날, 평소와 같이 냉동 핫도그를 데우려고 할 때였다.


"엄마, 할머니 감자전 아직 있지?"

"친구야, 우리 할머니 감자전 진짜 맛있어 먹어봐"


핫도그보다 햇감자로 만든 건강식이기 감자전 3-4개를 구웠다. 얼마나 먹겠나 싶었던 감자전은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다. 친정 엄마가 사다 주신 바나나 우유까지 대접했더니 아이들의 얼굴에 빙그레 웃음이 지어졌다. 그리고 며칠 전 친구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도대체 감자전을 어떻게 한 거야? 우리 애가 맛있다고 난리야"


엄마의 감자전은 별 거 없었다. 감자를 갈고 채 썬 것에 부침가루를 넣은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내가 흉내 낼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엄마가 자식을 생각해서 갓 땅에서 뽑아 올린 감자를 새벽같이 들고 오신 정성과 손이 다쳤어도 손녀들을 먹이기 위해 칼질을 했던 따뜻한 마음일 것이다.


딸은 외할머니의 금손이라 제목으로 일기를 썼다. 기절할 정도로 맛있었다는 표현이 나올만큼 할머니의 요리가 좋았나보다. 엄마의 감자전은 10년 20년이 지난 후에도 딸의 일기장에 기록되어 비밀을 간직한 할머니의 금손으로 기억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드디어 드럼 세탁기를 버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