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비가 쏟아진다. 먼 곳에서 병원 일정 때문에 오신 시어머니와 시누집에 있으면서 점심을 먹어야 할 참이었다. 날이 좋았으면 여기저기 모시고 좋은 것을 먹으면 좋을 텐데 한 두 방울도 아니고 대야로 들이붓듯 쏟아지는 비 앞에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시누는 얼려놓은 수제비 반죽이 있으니 점심에 김치 수제비나 해 먹자며 얼린 반죽을 꺼내 놓았다.
시누가 일이 있어 자리를 비운 사이 다가온 점심시간 앞에 어머니와 주방에 섰다. 꽁꽁 얼어있던 벽돌 같은 반죽은 말랑하게 잘 녹아있었다. 지난주 시부모님을 모시고 바다에 가서 캐 온 바지락과 멸치 육수를 내어 국물을 만들었다. 2년 전 시댁 식구들과 다 함께 만든 김장 김치도 꺼내 쫑쫑 썰어 육수에 넣고 팔팔 끓이니 이제 수제비를 떠서 던져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큰 그릇에 물 한 그릇 떠 놓고 어머니가 반 덩어리 떼어준 반죽을 받아 들었다. 손가락에 물기를 묻히고 반죽을 어르듯 살살 펴가며 최대한 얇게 만들었다. 두껍게 반죽이 떼어지면 밀가루 덩어리를 씹는 것 같아서 싫으니까. 시누가 반죽을 잘 만들어 놓은 건지 냉장고 안에서 긴 시간 숙성이 잘 돼서 인지 반죽은 손으로 만지는 대로 얇게 잘 펴졌다. 육수에 조준을 하고 알맞게 떠진 수제비를 던진다. 풍덩. 강물 위에서 물수제비를 하듯 던지지만 반죽은 튕겨 나가지 못하고 김치가 둥둥 떠 있는 육수 안으로 퐁당 잠기고 만다. 하나 둘 어머니와 수제비를 뜨며 입을 떼어 본다.
"어머니 요즘 제가 큰 아이 때문에 걱정이 많아요"
"그럴 때지, 그런데 걱정이라는 게 끝이 없어. 죽어야 끝나. 그말인즉슨 우리가 살아 있다는 거야."
어머니는 살아있기 때문에 걱정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해 보는 건 어떻겠냐고 하셨다. 제발 걱정 좀 안 하고 살면 좋겠다고 하지만 살아 있는 시간 중 걱정이 1도 없는 시간은 없다. 학교를 다닐 때는 시험 성적으로 사회에 나가서는 실적으로 결혼을 하고 나서는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걱정했다. 아이만 생기면 걱정이 끝날 줄 알았는데 아이를 낳고 보니 아이가 때에 맞춰 잘 크고 건강한지를 염려하다 공부를 시작하니 아이 공부가 내 공부가 되어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있는 지금이었다. 그러나 아이의 공부가 끝난다고 과연 정말 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머니도 나와 같은 고민을 30대에 하셨다고 했다. 그러나 70이 넘은 지금도 고민은 끝이 없다. 결국 죽어야 끝나는 걱정과 고민들인 것을. 오히려 걱정하며 살 수 있는 지금에 감사하고 좀 더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즐겁게 맞설 것을 수제비 한 점 떼듯 삶의 지혜를 나눠주셨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살아오면서 좌우명처럼 새긴 말이었다. 요즘은 피할 수 없는 현실에서 어떻게든 쥐구멍을 찾아 더 깊은 곳으로 도망가고 싶어서 요리조리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살아 있기에 피할 수 없이 닥쳐오는 역경들에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시선의 변화가 반가웠다. 잠시 시누가 자리를 비워줘서 어머니와 수제비를 뜨며 좋은 강의를 들은 기분이다.
수제비를 뜨는 내내 어머니와 교감을 하고 즐겁게 떠서일까. 비 오는 날 김치 수제비는 짭조름하면서도 육수의 진한 맛이 일품이었다. 숙성된 시간만큼 쫄깃함을 간직한 수제비는 씹을수록 단맛이 나서 국물과 잘 어울렸다. 수제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시아버지도 한 그릇 더 달라고 말씀하셨다.
소울 푸드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맛이 좋아서 생겼다기보다는 만드는 과정과 시간 속에 어머니와 간직할 수 있는 추억거리가 생긴 음식으로 김치 수제비가 남겨졌다. 밀가루 반죽은 바로 해서 먹으면 쫄깃한 맛을 느낄 수 없다. 인생의 단맛을 느끼고 싶으면 긴 시간을 견뎌낸 수제비 반죽처럼 오늘을 즐기고 견디며 맛있게 살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