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먹길 바랐던 건 아니었다.
아이들의 방학으로 정신없는 오전이다.
내 한 몸 살피기도 힘든 지금, 두 아이의 방학은 평소에도 어디쯤 두었을지 모를 정신을 찾을 새도 없이 지나간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십 년을 달고 있던 한포진이 오늘따라 유독 심하다. 벌겋게 부어올라 터져 버린 손가락 마디는 피가 흐르고, 조금만 데어도 시원함을 넘어 세게 문지를수록 느껴지는 작열감에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결국 보습제를 포기하고 오전에 피부과에 들러 스테로이드 주사와 약을 처방받았다. 심리적인 위안이 손의 고통을 줄여주는 것도 잠시였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계획된 일정을 이리저리 바꾸는 아이들 덕분에 오후에 보려 했던 시장을 조금 일찍 보게 되었다. 냉장고 한편을 지키던 맥주가 사라져 저녁으로 먹을 짜장 재료를 사면서 8개에 한 묶음에 파는 맥주를 사 왔다.
맥주 8개가 종이 한 장으로 한 품에 감싼 듯 포장되어 있지만 조금만 찢어지거나 기울기를 잘못하면 엄마 품을 벗어난 아이들처럼 우르르 쏟아지는 맥주캔들을 많이 경험했기에 한 품에 안아 조심스레 집에 들고 왔다.
추운 바람을 뚫고 무사히 맥주를 현관 앞에 내려두고 볼일을 본 뒤 냉장고에 넣기 위해 종이로 된 포장 부분을 짚고 냉장고 문을 연 찰나였다.
우수수수 우당탕탕 맥주가 바닥에 떨어졌다. 떨어지기만 했으면 좋으련만 줍기 위해 냉장고 문을 닫으면서 펑 하고 터지는 파열음과 함께 작은 분수가 냉장고 앞에 연출되었다. 맥주캔이 이렇게 얇았던가. 냉장고 문 사이에 있던 맥주캔이 고작 냉장고 문이 닫히는 충격에 터지다니. 남은 맥주라도 살리려는 요량으로 터져가는 맥주캔을 집어 들어 텀블러에 담는다.
응? 왜 맥주가 나오는 구멍이 두 개지?
다급히 맥주캔을 따고 졸졸졸 담기기를 바랐는데 어찌된 일인지 터져버린 구멍을 따라 흐르는 맥주의 양이 더 많았다.
삼분의 일은 건졌으려나.
손에 있는 한포진은 분명 염증 덩어리라 맥주는 피해야 하거늘. 영원히 끊지 못하더라도 주사를 맞은 오늘만큼은 안 마시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김빠진 맥주를 하수구에 버리는 일이 돈을 버리는 것이라는 생각에 몸을 버리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쥐똥만큼의 맥주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미지근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맥주가 목을 넘어가 몸에 퍼지며 뜨거워진다. 하루 종일 아이들을 쫓아다니면서 바빴던 오전과 십 년을 넘게 지겹도록 쫓아다니던 한포진에 대한 짜증 섞인 마음이 조금은 녹아들어 간다.
오히려 잘 된 건가.
터져 버린 맥주 덕분에 오랜만에 브런치 스토리에 글까지 쓰게 된 거 보면, 반강제로 하게 된 낮술이 싫지만은 않은 오후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