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소중한 남자 둘이 있다. 한 살 차이가 나는 동년배의 이 남자들은 사랑하는 남편과 막내 외삼촌(이하 삼촌이라고 부른다)이다. 다행히 삼촌이 남편보다 한 살이 많다. 2남 3녀 중에서 막내로 태어난 삼촌은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다. 고등학교 3년을 큰 누나 집, 즉 우리 식구와 함께 살아서 나와는 더욱 각별한 삼촌이라고 할 수 있다.
막내로 태어났지만 부모를 모시는 일에서는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것이 삼촌이다. 92세인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을 다니는 일, 집안의 모든 대소사들을 막내지만 큰 아들처럼 성실하게 해왔다. 반면 나의 남편은 이제 칠순을 넘기신 시부모님의 장남이다. 밖에 나가면 이제 환갑이 지난 것 같은 시부모님은 자신들의 건강을 잘 챙기실 뿐만 아니라 아직도 우리가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지난주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다리에 힘이 없으신 할아버지는 자주 넘어지는 일이 있으셨는데, 새벽에 일어나시다 머리를 부딪혀 뇌출혈로 응급 수술을 받게 되신 것이다. 긴급 수술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생명을 더 연장하지 못하시고 하늘로 가셨다. 바로 장례를 치를 것이라 생각했지만 삼촌은 장례식장이 아닌 경찰서로 향했다. 넘어지시면서 생긴 상처로 인해서 타인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확인서는 다음 날 오후가 돼서야 겨우 받을 수 있었다. 돌아가신 슬픔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경찰서에 가서 확인서를 받기까지의 기다림이 더 지치지는 않았을까.
장례식은 무사히 잘 끝났다. 형제가 많지만 40대 젊은 나이에 같은 직장을 28년간 다니고 있었던 삼촌의 손님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많은 손님들의 조문을 받고 복잡한 장례절차를 치르면서 금요일 오후 무사히 발인까지 마치고 각자 집으로 헤어졌다. 남편과 나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으로 힘들어할 장모님, 나의 엄마를 달래기 위해서 친정으로 갔다. 이 와중에도 삼촌은 남겨진 외할머니를 위해서 관공서를 돌아다니며 많은 일들을 해치워 나가야 했다. 외할아버지 명의로 되어있던 모든 것들을 외할머니 앞으로 바꾸는 일들을 해놔야 평일에 연차를 내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형제들이 집에 가서 쉴 수 있을 때에도 삼촌은 바쁘게 움직였다.
삼촌과 한 살 차이가 나는 남편은 삼촌에게 연락을 해서 우리가 있는 큰 누나 집으로 오라고 했다. 몸과 마음이 힘들 테지만 이럴 때일수록 함께 있으면서 마음을 나누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조카사위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삼촌은 바쁜 와중이었지만 토요일 오후가 돼서 우리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마당이 있는 친정 그늘 아래 삼촌, 숙모, 남편과 나는 맥주를 마시며 그날의 이야기를 했다. 장례를 하면서 힘들었던 일들, 고생했던 노고를 인정해주는 말들을 하면서 지친 마음을 달랬다.
마당에서 다 같이 고기를 구워 먹으며 비어 있던 속을 채우고 해가 지고 달이 차오를 때까지 삼촌과 남편 그리고 나는 의자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했다. 장례를 치르면서 삼촌은 여러모로 힘들었고, 남편은 나의 가족들을 보살피고 뒤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결혼한 지 8년이 되었지만 외가 식구들과 자주 만나는 편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오랜 시간 본 적이 없었던 남편은 장례식을 계기로 한 발 더 가까운 가족이 되었다.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끈끈해지는 전우애가 생겼다고 해야 할까. 힘든 순간 의지할 수 있는 남편이 있는 것도 고마웠지만, 지친 가족들에게 에너지를 주는 남편의 역할이 눈에 띄는 순간이었다.
일요일이 되어 삼촌이 큰 누나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가 장례 치루기 전에 크게 넘어지셨는데, 아빠 돌아가실 때 경황이 없어서 모르다가 통증이 밀려오는지 병원에 가고 있는 중이야". 아버지를 보내고 어머니가 아프셔서 또다시 병원으로 모시고 다녀야 하는 삼촌이었다. 아직 친정에서 엄마, 아빠와 있었던 남편과 나는 막내 외삼촌의 전화에 마음이 쓰을 수밖에 없었다.
그림책 <파랑 오리>를 보면 치매에 걸린 파랑 오리를 살뜰히 챙기는 악어의 이야기가 나온다. 부모님이 해주시던 밥, 당연히 해주던 양치와 같은 모든 것들이 부모가 나이 들어 할 수 없는 순간이 되면 역으로 해드려야 하는 순서를 맞이한다. 이제 칠순이 지난 시부모님과 환갑의 부모님에게는 아직도 먼 일 같다.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나를, 더 어린애처럼 안쓰러워하며 어떻게든 도움을 주시려는 부모님을 뵈면 나는 아직도 작은 악어다. 반면 삼촌은 우리와 같은 나이에 다 큰 악어가 되어 살뜰하게 파랑 오리를 보살피는 중이다. 언젠가는 나도 남편도 의젓하게 자란 악어처럼 파랑 오리를 돌보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좀 더 늦게 찾아오기를 바라면서, 동년배에 90세가 넘은 파랑 오리를 보살피는 삼촌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드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