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질량 보존의 법칙
나는 지금 무엇에 치중해 있는가
내 삶에는 질량 보존의 법칙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이것을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확실하게 인지하고 나니 삶에 대해서 조금은 처연한 자세로 임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껏 상황을 즐기지 못하는 것 같은 모습에 답답한 마음도 든다.
나는 기분이 한껏 좋을 때 사고 회로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는다. 당연히 입 밖을 통해 나가는 말들은 순도 100% 거름망을 거치지 않고 나가게 된다. 주어는 어디로 갔고 목적어가 무엇인지는 듣고 있는 이가 알아서 물어봐줘야 대화가 가능하다. 들어주는 사람에 따라서 나의 말하기 방식에는 전혀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만, 이것에 민감한 사람의 경우 핵폭탄급 위기 상황이 연출된다.
"말 똑바로 안 할래?"
"누가 그랬는데?"
"그렇게 말하면 듣는 사람이 알 수 있겠어?"
기분에 취했다는 핑계로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구름 위에서 쏟아 내던 나에게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는 것은 이때부터다. 순식간에 마음은 무거워지고 왜 그렇게 말했을까? 자책 모드로 돌아선다. 그럴 수도 있지라고 나를 타일렀던 적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그럴 수 있지'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쳐야 할 점은 수정해 나가야 하는 것이 좋겠다는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물론 사람의 습성이 쉽게 바뀌지는 않아서 아직도 곤란한 상황은 벌어지고 있지만 말이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크게 기뻐하지도, 심하게 슬퍼하지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자책도 어중간하게 하는 것 같다. '이제는 꽃길만 걸을 거야'라고 나를 위안하다 보면 정말 밝은 날이 온다. 하지만 어김없이 '이번 생은 망했어'라고 할 법한 사건이 또 터진다. 그래서 삶에도 질량 보존의 법칙이 흐른다고 느껴진다. 기쁜 날이 저울의 한쪽 방향으로 기울면 평형을 맞추려는 듯 들뜬 마음을 잠재우기 위한 일들이 터진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마음도 여기가 지하라고 알려주기도 전에 이제는 올라오라고 좋은 일이 생기곤 한다. 새옹지마(塞翁之馬), 인생의 길흉화복은 예측하기 어렵다는 말을 가슴속에 담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최근에는 기분에 대한 질량 보존의 법칙보다는 나의 에너지에 대한 질량 보존의 법칙에 대해서 눈여겨보고 있다. 사람이 하루에 쓸 수 있는 에너지는 분명 정해져 있다. 하루에 에너지를 다 써서 방전이 되면 다음 날에는 쉬어줘야 원기가 회복되고, 몇 달을 달렸다면 휴가를 맞이해서라도 기운을 차려야 한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은 엄마라서 1분 1초를 아끼듯이 살아왔다. 이렇게 살아온 것이 2년 가까이 된 것 같다. 필사, 영어공부, 그림 그리기, 그림일기, 블로그, 브런치, 운동 등 돈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는 온전히 나를 위한 것으로 자유시간을 채워왔다.
나에게 에너지를 다 쏟아 버리고 나면 아이들 혹은 살림에 할애할 수 있는 열의가 부족해진다. 그럼에도 가정과 나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보육의 개념으로 아이들을 돌봐왔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쿠키를 만드는 일, 그림을 그리며 노는 일은 나에게 큰 에너지가 들어가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내가 힘들어하는 영어를 해야 한다. 저녁시간을 온전히 큰 아이에게 쏟아 영어 그림책을 함께 읽는 일은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많은 에너지가 들어간다. 이런 이유로 요 며칠 동안 오전에 무기력하게 지내 왔던 것이 아닐까 싶다. 저녁시간에 총력을 다해서 영어 그림책을 읽고 나면 내 몸이 슬라임이 된 것처럼 형태도 없이 흘러내린다.
하지만 한 달 정도 영어 그림책을 읽다 보니 어떻게 읽으면 재밌게 잘 읽을 수 있을까? 에 대한 궁금증과 욕심이 생겼다. 어렵게만 느껴지고 모르던 단어가 다른 책에서 또 나왔을 때의 반가움, 영어만의 위트로 채워진 페이지를 읽을 때의 재미에 빠져 버렸다. 때마침 지인으로부터 '영어 그림책 읽기 지도사' 수업이 평생 학습관에서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청했다. 월요일 아침부터 3시간을 앉아서 수업을 들으니 그동안 아이와 영어 그림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궁금증이 선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물론 하루 수업을 들었다고 큰 변화는 나타나지 않지만 12주간의 수업을 통해서 나의 영어 그림책 읽기와 아이와 책 읽는 방식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매일 블로그를 쓰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 같아서 붙잡고 있었던 나였다. 낮에 쓰지 못하면 아이들이 잠든 밤에 핸드폰을 붙잡고 썼던 블로그를 최근에는 일주일에 두 번 포스팅하고 있다. 나의 관심사와 에너지가 아이에게 집중되고 있는 것이 보인다. 과거에는 블로그를 쓰지 못해서 안달복달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마음이 아이를 향해 더 치중되어 있기 때문에 에너지가 이쪽으로 쏠리는구나 인정하기로 했다. 모든 것을 다 쥐려고 하다 방전되면 회복이 불가하기 때문에 내 안의 에너지를 골고루 균형 있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배워가는 중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