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은 네가 낫더라

동일하게 주어진 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by 친절한금금

"된장은 네가 낫더라"


평소에 밥 먹으면서 특별한 코멘트가 없는 남편이다. 비린내에 예민한 남편이라 유일하게 밥상머리에서 하는 이야기는 고기 냄새가 난다는 말뿐인데, 엊그제 밥을 먹다 남편이 웬일로 칭찬 같지 않은 말을 다했다.


꾸준히 장을 담그시는 시어머니는 매년 된장, 고추장, 간장을 시누와 동서, 나에게 나눠주신다. 김장도 매년 모여서 같이 한다. 4 가족이 모두 동일한 장과 김치를 먹는 것이다.


시부모님이 우리 집에서 식사하시는 날이면 한 끼는 꼭 된장찌개와 함께 김치가 올라온다. 그러면 어머니는 연신 맛있다고 칭찬을 하신다. 나는 부끄러워하며 '어머니가 주신 된장으로 해서 맛있는걸요'라고 이야기한다. 가족 외에 다른 사람들도 엄지 척을 하는 나의 된장찌개는 어머니의 된장 맛 때문이라고 믿었다.


결혼 8년 차가 된 지금 시누는 이야기한다. '같은 된장을 쓰는데, 네가 끓인 된장찌개가 유독 맛있더라'. 나는 그 이야기를 흘려들었다. 똑같은 어머니 된장을 쓰면서 다를 것이 뭐가 있을까.


어머니 칠순을 위해서 가족들이 모두 모인 아침, 시누 집에서 모였지만 집안 일로 바쁜 시누를 대신해 내가 냉장고에서 갖은 야채를 꺼내 된장찌개를 끓였다.


별 것 없지만, 살짝 레시피를 공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멸치 육수를 낸다.

2. 감자, 양파, 애호박을 넣고 푹 익을 때까지 끓인다.

3. 두부를 넣는다.

4. 된장을 넣는다.(한 뚝배기를 끓일 경우 수저로 크게 한 스푼을 넣는다)

+된장을 마지막에 넣는 게 내 된장찌개의 비결이라고 하셨다.

5. 대파와 청양고추, 고춧가루를 넣는다.

6. 혹시 맛이 덜하다 싶으면 참치액젓을 넣는다.

(육수를 잘 낸다면 사실 6번은 필요하지 않다.)


보글보글 된장찌개가 끓는 뚝배기에 수저를 넣어 한 입 맛 본 시누가 역시 네가 한 것이 맛있다고 했다. 그리고 본인이 한 것과의 차이를 찾아냈다. 나는 양파, 감자와 같은 채소가 많이 들어가서 육수에 한몫을 하지만 시누는 야채보다는 두부를 많이 넣어서 된장을 끓여왔다. 기호에 따라 맛을 선호하는 게 다르겠지만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남편은 청량고추가 가미되고 된장 맛이 진한 나의 된장찌개가 좋다고 했다.




상에서 빠지지 않는 김치도 집마다 맛이 다르다. 똑같은 김칫소와 배추를 이용해서 각자 먹을 것을 치대서 가져가는데, 시부모님은 그중에서 우리 집 김치가 으뜸이라고 하셨다. 시누와 동서 그리고 우리 집 김치 맛에는 큰 차이가 없다. 문제는 어머니의 김치다. 20년이 넘게 사용한 김치 냉장고가 이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배추가 무르거나 얼어버렸던 것이다.


어지간해서는 새것을 들이지 않는 어머니지만 이제는 새 김치 냉장고를 사셔야만 했다. 김칫소가 들어간 양에 따라 발생되는 맛의 차이가 아니라 보관하는 냉장고의 고장으로 인해 김치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는 일이다. 새로 산 핑크빛 김치 냉장고 덕분에 이제는 어머니도 아삭하고 시원한 김치를 맛보시지 않을까.




결혼하고 8년, 매년 같은 장과 김치를 4 가족이 먹지만 각 가정의 식탁 위에서 다른 맛으로 변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장거리를 지하철로 여행하며 드는 생각이, 모든 사람들에게는 똑같이 주어지는 24시간도 사용하기에 따라서 다른 삶이 펼쳐질 수 있다 것에 다다랐다. 1분 1초도 다르지 않게 주어지는 시간을 어떻게 요리해서 먹고 느낄지는 각자의 몫에 달려있다. 같은 시간을 받았어도 역경이 닥쳐와 고난이 생긴 시점이라면, 원인을 찾아 바꾸려는 시도를 통해 더 나은 하루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새 김치냉장고를 들이신 어머니처럼 말이다.


각설하고 이제 나의 요리의 행보는 어떻게 가야 할까? 최민식이 군만두만 먹듯이 8년 동안 된장찌개만 먹어오던 남편에게 끝내주게 맛있는 새로운 찌개를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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