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매일 집 만 지켜?
내가 작가여야 하는 이유
평온한 오후였다. 아이는 숙제를 하고 있었고, 나는 컴퓨터에서 급하게 사야 할 물건을 검색하느라 모니터에 목을 빼고 집중하고 있었다. 숙제를 하던 아이가 갑자기 연필을 내려놓고 물어본다.
"엄마는 왜 매일 집 만 지켜?"
아이의 말에 당황한 나는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다. 아이는 속상하다는 듯 오전에 있었던 일을 풀어낸다.
"유치원에서 엄마와 아빠의 직업을 물어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아빠는 회사를 간다고 이야기하면 되는데... 엄마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잖아! 엄마는 왜 매일 집 만 지켜?"
아이의 말에 그저 '픽' 웃어버렸다. '내가 집을 지킨다고? 네가 유치원에 가는 순간부터 내가 얼마나 바쁘게 지내고 있는데.. 알지도 못하면서...' 차마 밖으로 내뱉지는 못하고 혼잣말을 삼켰다.
엄마라는 역할을 하는 나는 굉장히 바쁘다. 아이가 등원하고 집을 지키기는커녕 나를 위한 것들로 시간을 채우느라 1분 1초를 금쪽같이 사용한다. 그래서 아이의 말에 기분이 상하기보다는 '피식'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단순히 넘어가기에는 언젠가 또 부딪혀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러워서 스스로 꺼내지 못하는 말이지만 아이에게 일러주었다.
"혹시 다음에 또 이런 질문이 들어온다면 이야기해줘, 우리 엄마는 작가예요"
나는 작가다. 엄마이면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떤 책을 썼는지, 어디에 연재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겠지만 그냥 브런치 작가다. 블로그와 달리 브런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심사받은 후에 작가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할 수 있다. 이거면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어디에 속해있지 않고 사회에서 활동하는 것이 없는 내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명함이다.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 일주일에 한 번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는 일, 매일 그림을 그리는 일 등 나는 글 혹은 그림 작가로서의 일들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다만 베스트셀러가 아닐 뿐이고 나만 읽고 내 주변인들이 알아봐 주는 글과 그림일지는 몰라도, 나는 작가로서 매일같이 쉬지 않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축적되면서 내 마음에 쌓였던 근심들이 사라져 갔다. 1년 전까지 나는 아이 둘이 잠든 밤 의미 없이 틀어놓은 티브이 앞에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왔다. 다음 날이 되면 숙취로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늘어난 몸무게를 보면서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일들의 반복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티브이로 남들의 이야기를 보는 것보다 내 안에 풀어내고 싶은 것들을 써 내려가는 시간에 벅참을 느낀다. 못 그릴 것 같았던 그림을 완성하는 순간 환희를 맛본다.
남들이 그렇듯 나 또한 약하게나마 산후 우울증을 가지고 있었다. 생리 증후군이라고 치부하며 배란기 때 한 번 생리 전에 한 번 감정이 요동칠 때면 잘못도 없는 아이들을 몰아세우곤 했었다. 브런치에 글을 쓴 것이 6개월, 블로그에 매일같이 글을 쓴 게 2년 정도 되었는데 최근 나의 마음이 바람 한 점 없는 호수 같은 느낌을 받는다. 삐뚤빼뚤 다양한 모양으로 모났던 나의 감정들을 정돈해서 한 곳에 쏟아 놓을 수 있는 핑크색 감정 정리함을 찾은 것이다.
지금 직면한 문제가 무엇이든 그 일을 쓰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냥 쓰는 행위 자체로, 타자를 두드리는 이 단순한 움직임만으로 들쭉날쭉 뛰는 나의 마음은 진정된다. 하나의 글을 완성해서 발행하는 순간에는 성취감까지 거머쥘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내 마음 안정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누가 "엄마는 뭐하는 분이시니"라고 물어보거든 "우리 엄마는 작가예요"라고 꼭 말해주렴 딸아. 내가 나를 지키고 우리 가족을 지킬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