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방학

나의 개학에는 어떤 일이 생겨날까?

by 친절한금금

8월이 시작되면서 아이들이 모두 방학을 맞이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는 아이에게 밥을 먹이지 않아도 되는 나의 방학이다. 뜨거운 한낮에 학원에 데려다 주기 위해 선글라스와 모자로 무장하고 아이를 바래다주지 않아도 되는 한가로운 시간이 찾아왔다. 매일같이 주어지는 숙제를 나의 것인 것처럼 시간에 쫓기며 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운 일주일이 온 것이다. 아이들이 방학을 했지만 내가 방학을 한 것처럼 마음이 평화롭다. 나는 그동안 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등 하원 시키고 정해진 것들을 하는 일에 매우 지쳐있던 참이었다. 나를 지치게 하는 것에 무더운 한여름이 더해져 이번 '여름방학'이 더 의미 있는 시간일 것이다.


방학(放學)이란 학기나 학년이 끝난 뒤 더위나 추위를 피하기 위하여 일정기간 수업을 쉬는 것을 의미한다. 한자의 놓을 '방'자가 마음에 든다. 최근 방영했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어린이 해방 사령관이 세 가지를 이야기했다. 어린이는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 어린이는 건강해야 한다. 어린이는 행복해야 한다. 원래 이번 여름 방학에 나는 아이가 부족해하는 부분을 어떻게 보충해 줄 수 있을까 고민했었다. 하지만 어린이 해방 사령관을 보고 난 뒤 나는 놓을 '방'을 실천하기로 했다.(어쩌면 한 학기를 열심히 살았던 내가 정신줄을 놓고 싶어서 얹혀 가는 핑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넋을 놓고 놀았다. 하루 종일 할아버지 밭에서 수영을 하고 사촌 언니 오빠와 신나게 놀기를 4일, 집에 와서는 그동안 보고 싶었던 티브이도 마음껏 보고, 10시까지 늦잠을 자며 먹고 싶은 것도 충분히 먹었다. 아쉬울 것이 없게 놀아야 개학을 했을 때 '이제는 열심히 해야지'라는 마음이 눈곱만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든다.


방학을 맞이하는 딸과 어떻게 이 시간을 보낼지 생각하다 보니, 유치원에 다니는 딸의 방학은 7일뿐인데 엄마의 방학은 7년째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신을 하기 위해 퇴사를 했던 나는 7년 차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 첫 아이는 첫사랑이라고 하지 않던가. 첫사랑과 열렬한 사랑을 하듯 바라만 봐도 좋았던 큰 아이와는 매 순간이 데이트의 연속이었다. 반면 둘째는 달랐다. 흔히 막내는 사랑이라고 말들을 하지만 혼자서 아이 둘을 키우는 게 쉽지 않았다. 나는 헬 게이트라고 불리는 문턱에 발을 디민 것 같은 느낌의 연속이었다. 첫째와 모든 것이 달랐던 둘째를 키우면서 매 순간이 멘붕이었고 '엄마'라고 외치는 두 어린아이들을 보면서 나의 마음은 용암이 터지는 불구덩이 같았다. 불꽃을 진압하려고 수시로 맥주를 들이켰지만 기름을 들이부은 것처럼 불길이 더 치솟는 느낌이었다.


둘째가 돌이 지났을 무렵, 친하게 지내는 언니가 동네에서 독서모임을 만들 것이라는 이야기에 적극 참여의사를 표했다. 코로나 이전이었지만 사람들과 교류가 없이 아이만 봐왔었다. 그랬던 내가 돌 지난 아이를 끌어안고 동네 카페에 나가 이웃주민들과 독서 모임 하는 시간이 기다려졌다. 마치 대학교 때 조별 과제를 하는 느낌이랄까? 정해진 페이지 수까지 읽고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시간은 엄마가 아니라 '나'를 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5년을 아이의 엄마로만 지내면서 나를 돌아볼 생각을 안 했던 것 같다. 독서 모임을 시작으로 필사, 그림일기, 그림 그리기, 영어 공부, 블로그, 브런치 쓰기 등 다양한 활동들이 이어졌다. 2년을 넘게 꾸준히 해보니 내가 흥미를 가지고 하는 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육아가 메인이고 나를 찾기 위한 일들은 내가 하고 싶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그만둬도 되는 것들이었다. 반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아이들이 등원한 시간, 잠든 시간 등을 찾아서 악착같이 해왔다. 아이들이 샤워하며 물놀이를 할 때에도 핸드폰을 들고 글을 쓰는 내가 이상할 만큼 열심히다.


나는 지금이, 아이를 키우며 나를 찾아가는 엄마의 방학처럼 느껴진다. 대학에서 전공했던 공부는 사실 내가 좋아해서 한 일이 아니었다. 석사까지 공부하고 추가로 학위를 더 이어가는 미련한 일을 했지만, 진심이었다면 어떻게든 아이들을 맡겨놓고 전공을 이어갔을 것이다. 결국 나는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전공을 살려 회사에 갔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는 이유를 대면서 퇴사한 나의 마음은 도피였다. 더 이상 그 일을 하고 싶지 않았고 남편에게 생계라는 무거운 짐을 지게 하면서 도망간 것이다.


나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육아와 집안을 지키는 일이다. 하지만 살림과 아이를 보는 일이 24시간 편의점처럼 불철주야로 할 일은 아니다. 원하면 언제든 하루 5분이라도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아직은 어린 나의 딸들도 몇 년이 지나면 엄마 손이 필요한 순간이 줄어들 것이다. 그때 나의 방학도 끝이 날 것이라고 본다. 개학이 되면 새로운 학기를 잘 꾸려가듯 나 또한 새롭게 펼쳐질 제2의 인생을 맞이 할 것이다. 그때 가서 허둥대거나 방황하지 않도록 알찬 나만의 방학을 보내고 싶다. 쉴 수 있을 때 충분히 쉬면서 진짜 내가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찾아 손꼽아 개학일을 기다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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