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한없이 낭떠러지로 떨어질 때

나는 글을 쓴다

by 친절한금금

여자라면 호르몬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어려서는 호르몬 따위가 있기나 했냐는 듯 나의 일상을 침범하는 일이 없었는데, 30을 넘기고 40을 바라보는 지금에 나를 가장 힘들 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한 달을 주기로 생리를 한다면 그중 일주일은 임신이 가능한 배란기이고 며칠 뒤 일주일은 어김없이 생리를 한다. 보통의 여자들이 힘들어하는 게 배란기 증후군과 생리증후군이다.


이렇게까지 심하지 않았는데, 몸의 변화에 민감한 나는 최근 벌어지는 호르몬 장난에 바람에 휘청이는 허수아비가 된 기분이다. 감정이 급격히 좋아지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시가가 왔다가도 이번 생은 망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여 좌절감의 노예가 되기도 한다.


나약한 감정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밖으로 표출되는 나의 악감정을 가족들에게 쏟아내며 마음이 곪아가는 것뿐이었고, 이를 받아주지 않는 날에는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싸움밖에 되지 않았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은 입장료를 끊지 않으면 타지 않아도 되지만 감정 기복은 해가 지고 달이 뜨는 당연한 수순처럼 일정한 주기로 나를 찾아왔다.


이제는 모든 것이 호르몬의 탓이다. 아이와 감정이 격해질 때, 남편과 싸웠을 때,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모든 행동에 대해 호르몬을 탓하며 잘못된 나의 행동은 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모든 것은 나로 인해서 벌어진 것임에도 보이지 않는 호르몬에게 나의 죄를 덮어 씌우며 면죄부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악다구니를 쓰면서 상대방을 비난하며 나에게 왜 이렇게 못되게 구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사람이라며 몰아세웠다. 그가 나쁜 사람이 돼야만 내가 정상 범주에 들어설 수 있었고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인식으로 안정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무슨 일이든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었고 상대가 화를 내는 데는 실오라기만큼 나의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눈이 호르몬으로 인해서 덮어졌다고 생각했을 때 안개가 걷히듯 해가 비춰오기 시작했다. 어쩔 줄 몰라하고 주체되지 않던 심장 박동이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한 상태가 되었던 건 글을 쓰고 난 후였다. 코로나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집콕 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의 육아와 일상을 블로그에 쓰기 시작했다. 사용했던 장난감에 대한 리뷰, 아이들과의 있었던 일상들을 적은 글 한 편이 모여 나의 이야기 주머니가 되었다.


글을 적으면 적을수록 나는 참 할 말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카페에 대한 후기를 남길 때는 오픈 시간을 찾아보고 카페가는 길을 글로 알려주는 것이 재밌었다. 육아의 일상을 적을 때는 나와 같은 개월 수의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공유될 수 있게 발달 사항을 적는 일이 리포트를 잘 적으려는 대학생이 된 기분처럼 느껴지게 했다. 여전히 정보성 글쓰기도 재밌지만 글을 통해서 치유받는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은 나를 드러내는 글을 쓰고 난 후였다.


온라인 상에서 <매일 한 끼 글밥 짓기 프로젝트 with 알빰>에 들어가 매일 글을 써서 인증하는 일을 5개월간 해왔다. "나의 딸의 장점은?" "나의 남편의 장점은?"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등 블로그에 대놓고 쓸 수 없는 부끄러운 주제의 글들을 인증이라는 방패막을 삼아 써 내려갔다. 하루는 밉고 하루는 좋아지는 남편도 장점을 써 내려가다 보니 좋은 점이 참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매일 같이 소리를 지르며 몰아세웠던 아담한 나의 딸도 사랑스러움으로 가득 찬 딸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것이 글이었다.


"내가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면서 나에게 빛났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나는 앞으로 어떻게 빛나고 싶은지 돌아볼 수 있었다. 아득한 것들의 조각을 모아 하나의 퍼즐을 맞춰가며 활자로 적어 내려가는 순간 나에게도 빛나는 순간은 있었고, 앞으로 반짝일 나의 인생도 눈에 들어왔다. 글쓰기는 활자를 쳐 내려가는 작은 두드림으로 황무지 같았던 마음의 토양을 단단하게 두드려 주고 있었던 것이다.


배란기 증후군, 생리 증후군을 느끼지 못한 것이 두세 달 정도 지난 것 같다. 글쓰기의 힘은 많은 작가들이 극찬할 정도로 위대하다고 한다. 이것을 몸소 느껴 본 바로 앞으로 나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글을 쓰는 두드림을 멈추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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