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따라 밑그림을 그린 지 벌써 3시간째다. 전시회에서 본 그림이 잊히지 않았다. 은은한 나무 색이 감도는 채반에 담긴 노란 민들레 그림이 내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림에 관련된 전미랑 작가님의 이야기를 통해 그림이 내 안에 들어온 것이다.
전미랑< 그리운 날에 - 감사>
시간을 내서 전시회에 일부러 가지는 않는다. 갈 시간이 없다는 것은 핑계고 안 해봤던 일인지라 발을 떼기 어려운 것뿐이다. 이번 주 월요일, 평생교육원 수업을 들어가다 2층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가 눈에 들어왔다. 때마침 수업 끝나고 할 일이 없었던 나는 유익하게 시간을 축내 볼 생각으로 그림 구경을 해보기로 했다.
전시회 장에는 화려한 꽃들이 아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들꽃들로 이뤄진 그림들이 채워져 있었다. 보는 내내 따뜻한 감정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잠시 보고 가는 것이 아쉬워 사진을 찍어 간직하고 싶은데, 저작권이 마음에 걸려 데스크에 계시는 분에게 여쭤봤다.
"혹시 사진을 찍어도 되나요?"
"당연하죠"
"그럼 SNS에 올려도 되나요?"
"네 물론이죠"
사진을 찍어도 된다는 말과 동시에 블로그에 올려도 되냐는 허락을 구했다. 알고 보니 대화를 나눴던 분은 그림의 작가님이셨다.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그림의 주인을 만나는 영광을 거머쥐다니, 내 입에서는 '정말 멋지다'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작가님께서 그림 앞으로 다가가 그림에 대한 소개까지 해주셨다. 마치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우아하게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내 모습이 생소했다.
전시된 작가님의 그림에는 강아지풀이 꼭 담겨있었다. 20년 전 겨울, 작가님이 굉장히 힘들었던 때 길가에 강아지 풀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다. 강아지 풀은 뿌리를 깊게 박고 자라는 식물인데, 힘든 상황에서 꿋꿋하게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풀을 보고 삶의 희망을 느끼셨다고 했다. 작가님은 그날 이후로 20년 동안 강아지 풀을 그림에 그려 놓고 계신다. 오랜 시간을 관찰하고 그려오신 강아지 풀이라서일까? 작가님의 그림을 보고 있자니,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강아지 풀이 아닌 귀한 화초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림 중 강아지 풀들 아래로 버려진 무당벌레 머리핀이 그려져 있었다. 놀이터 한 편에 아이가 흘리고 간 것 같은 앙증맞은 핀이었다. 실제로 이렇게 놓인 것을 사진으로 찍어 놓고 그리신 건지, 어떤 의도로 빨간 무당벌레 핀을 넣었는지 여쭤봤다. 무당벌레는 우리나라에서는 반겨 주지 않는 벌레지만, 외국에서는 행운의 상징이라고 한다. 돈벌레, 누에와 같이 무당벌레는 해충이 아니라 익충이라고 하셨다. 반짝이는 빨간 등껍질을 지닌 무당벌레를 그림 속에 숨겨 두신 데는 작가님만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전미랑 작가님의 그림이 특별한 이유는 종이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러 종류의 화선지를 겹치고 아교로 칠해서 본인만의 캔버스를 만드신다. 캔버스의 밑 작업 여부에 따라 물감의 번짐 정도라던지 표면 질감이 달라졌다. 작가님이 먹선으로 그림을 그리고 동양화 물감으로 채색을 했다고 하셨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림에 문외한이지만 내가 아는 동양화의 느낌과 달랐기 때문이다.
어제는 온라인 그림 그리기 클래스에서 자유 그림을 그리는 날이었다. 무엇을 그릴까 고민하다 전시회장에서 봤던 채반에 담긴 민들레를 따라 그려보기로 했다. 디지털 드로잉의 장점을 살려 동그라미 툴로 채반을 그리면 될 줄 알았는데 작품에서의 느낌을 전혀 살리지 못했다. 결국 따라 그리기를 포기해 버렸다. 차선책으로 원작에 미농지를 깔고 그리는 것처럼 디지털 드로잉으로 트레이싱해서 작품을 따라 그렸다.
*트레이싱 : 원본의 투명도를 낮추고 그 위에 대고 따라 그림, 원본은 지우고 트레이싱된 그림만 남음
그리다 보니 그려야 하는 민들레가 너무 많았다. 다섯 송이만 그리고 말까도 싶었지만 채반이 눈길을 끌어서 그린 것이라 손을 놓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이 흘러 세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트레이싱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정성껏 그렸으나 민들레가 너무 많아서 투박하게 선을 그렸다. 꼼꼼하지 못하고 성격 급한 내가 한 시간이 넘게 그림을 그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새삼 먹선으로 일주일 동안 스케치하셨다는 작가님의 인내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채반에 담긴 민들레가 모두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있는 것도 놀라웠다. 얼마나 관찰을 하고 그려야 이렇게 세밀하고 각자의 개성이 담긴 꽃송이를 그려낼 수 있을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하루 중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매우 한정적이다.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그림 하나로 소진할 수는 없었다. 평소 그림을 그리는 시간도 한 시간을 넘지 않는다. 그런데 어제는 민들레 그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끝을 보고 싶었고 몰입의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분명 집안 살림과 다른 할 일들이 눈에 보였지만 이 그림만큼은 꼭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 우선시 되었던 것이다.
스케치 한 시간이 오래 걸려서 채색은 다른 날로 미루려고 했지만 이 그림을 끝내지 않는다면 다른 일들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오전에 3시간에 걸쳐 완성한 스케치를 오후가 되어 또 붙잡게 되었다. 공부를 하고 있는 딸 옆에서 하얀 민들레에 노란빛을 입히기 시작했다. 선으로 이뤄진 채반에 나무 색을 입혀놓고 보니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소박한 그릇이 완성됐다. 하나 둘 채워지는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 뿌듯함이 나를 감쌌다. 드디어 해냈구나.
민들레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생각했다. "나는 왜 돈이 되지 않는 일에 이다지도 몰입하고 있는 것일까?" " 왜 그림을 그리는 것일까?" 아직도 완전한 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하지만 느낌은 알 것 같다. 學習之說(학습지열, 논어 학이 1-1) 학습은 인생에서 가장 가슴 떨리는 일이라는 말과 같을 것 같다. 배우는 것을 즐기고 이를 통해서 자존감 높은 삶으로 이끄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선을 하나 긋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림 하나를 완전하게 마무리 지었을 때의 성취감, 사물을 관찰하여 형태를 이뤄가도록 그릴 때의 몰입감, 그리는 방법을 익혀가면서 느껴지는 희열감 등이 끊임없이 나를 자극한다.
본래 취미라는 것은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긴다는 사전적 의미가 있다. 취미가 수익화를 이뤄내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지금의 나는 순백의 마음으로 그림을 마주하고 있다. 오로지 '즐겁다'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이 순간이 인생을 살 맛나게 해 준다. 당장 작가님처럼 다른 이의 마음을 울릴 만큼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그림은 나에게만큼은 언제나 감동이다. 굳이 진취적인 의미를 두지 않더라도 삶에 기쁨이 되는 취미가 있다는 것 하나라면, 돈 안 되는 그림 그리는 이유에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