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짓는 남편과 글밥 짓는 아내

by 친절한금금

퇴근시간이 훌쩍 지났는데 남편이 오지 않는다. 일이 많아서 늦으려니 생각하고 있었다. "띵동" 카드 결제 문자로 18,000원이 찍힌 문자가 왔다. 처음 보는 상호와 가늠이 되지 않는 가격이 찍힌 남편의 카드 문자에 궁금증이 증폭됐다.


"띠띠띠띠" 때마침 남편이 들어왔다. 혹시 국거리라도 사 온 것일까 싶어서 남편이 들고 있는 검은 봉지를 바라봤다. "그게 뭐야?"라고 물었다. 들려오는 대답과 검은 봉지에서 쏟아낸 생물은 나의 예상을 한참 벗어난 것이었다. 두 집게를 움직거리며 팔팔하게 살아있다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생명체는 "꽃게"였다. 남편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수산시장에서 18,000 원주고 꽃게를 3마리 사 온 것이다.


낮에 남편은 집에 호박, 양파, 파, 된장이 있냐고 물었다. 며칠 전 저렴하게 하게 판매하는 애호박 2개가 냉장고에 있었고 양파는 항시 준비되어 있기에 모든 재료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된장찌개를 끓이려고 물어본다 생각했다. 그런데 꽃게를 사 오다니. 이 남자는 경상도식 꽃게 된장찌개를 끓이려고 차가 막히는 퇴근시간에 수산시장을 다녀오는 정성을 발휘한 것이다.


부산이 시댁인 나는 종종 시어머니 혹은 시누가 끓여주는 꽃게 된장찌개를 맛있게 먹었다. 애호박을 한가득 넣고 꽃게가 잔뜩 들어간 된장찌개의 맛은 일반 된장찌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깊은 맛이 있다. 가끔 생각이 나서 마트에서 파는 냉동 꽃게를 사 와 끓여 봤지만 맛을 재현하는데 번번이 실패했다. 그런데 이걸 남편이 한다고?


최근 남편은 고민이 많다. 오늘 저녁밥은 무엇을 먹어야 할지, 아이들과 어떤 음식을 먹어야 맛있게 먹었다고 할지 고민한 뒤 레시피를 찾아 주방에 선다. 남편이 요리를 하면 바쁜 것은 바로 '나'다. 남편은 요리할 때 싱크대에 그릇이 있어서는 안 되고, 사용되는 재료는 모두 눈앞에 있어야 한다. 사용하고 난 재료는 바로바로 집어넣어야 하는데 모든 보조의 역할은 나의 몫인 것이다. 이런 귀찮음이 있음에도 나는 남편이 요리를 해주는 게 너무 좋다.


첫째는 맛있다. 남편은 레시피를 준수해서 끓이기 요리한다. 절대 미각까지 소유하고 있어서 적당히 무엇을 넣으면 맛이 괜찮을지를 아는 사람이다. 단순히 여기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남편에게 배우고 싶은 한 가지는 "정성"을 쏟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비가 오는 날 우연히 티브이에서 남편과 <편스토랑>을 봤다. 류수영이 하는 닭볶음탕을 강남이 맛있게 먹는 장면을 넋을 놓고 봤다. 직접 해보고 싶었지만 닭볶음탕을 했다 망한 기억 때문에 선뜻 나서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 "오늘 낮에 저거 해줄게"라고 남편이 말하는 것이다.


비가 많이 오는 일요일 낮에 나는 우산을 챙겨 닭을 사러 나갔다. 남편이 요리를 해준다고 하니 빗속을 걸어서 재료를 구하는 길이 신나기까지 했다. 내가 장을 보러 간 사이 남편은 레시피를 숙지했고 재료를 보자마자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남편과 나의 큰 차이점을 느꼈다. 재료를 써는 것도 대충, 음식을 오래 끓이면 가스비가 아까워서 바로 꺼버리는 나와 남편은 달랐다. 일정한 간격으로 아이들 입에 들어가기 좋은 사이즈로 능숙하게 재료를 손질한다. 닭고기 뼈에서 육수가 우러나오다 못해 흐므러질 정도로 푹 우려내서 음식 맛의 극대화를 이루게 한다. 이러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맛의 증명은 아이들이 한다. 평소 엄마가 할 때보다 유독 아빠가 음식을 해줬을 때 수저질이 바빠지는 아이들을 보면 아빠의 음식 맛이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다.


남편이 음식을 해서 좋은 두 번째 이유는 음식에 대한 평가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나는 입맛이 좋다. 고기 냄새, 비린내에도 강력한 비위를 가지고 있어서 어떤 음식이든 맛있게 먹는 편이다. 하지만 남편과 그의 입맛을 쏙 닮은 큰 딸은 냄새에 예민하다. 고기를 넣고 하는 음식에서 조금만 냄새가 나도 큰 딸은 "엄마 이거 냄새나서 못 먹겠어"라며 그릇을 치운다. 그럼 나와 같은 입맛을 지닌 막내딸이 얘기한다. "그래도 먹어야 해, 그래야 튼튼해져". 유전자를 통해 반으로 갈리는 아이들의 입맛이 참 신기하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고기 냄새에 둔감한 내가 음식을 할 때보다, 고기 냄새 킬러인 남편이 요리를 하기 때문에 아빠 음식을 먹으면서는 불평 한마디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내가 한 것에 대한 평가를 듣지 않으니 식탁에서 마음이 가볍다. 수저에 들어가 나온 뒤 가족들의 얼굴을 살피고 어떤 음식을 잘 먹는지, 안 먹는 것은 무엇인지 눈치 보지 않아서 즐기며 식사를 한다. 혹시나 남편 음식이 싱겁다 하더라도 "아이들을 위해서 싱겁게 먹는 게 좋지", 조금 짜게 되었을 때는 "다음에는 간장을 넣지 않고 간을 하는 게 좋겠네"라는 자발적인 피드백이 있을 뿐이다.


결론이야 어찌 되었든 나는 내가 하는 음식도 맛있지만 특히 남편이 해주는 모든 요리가 맛있다. 그가 자신의 요리에 대해 부족한 부분을 이야기해도 나는 맛있고, 내가 한 음식이 아니기 때문에 비평이 나오더라도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즐기듯 가벼운 수저질로 든든히 배를 채우고 있다.



밥을 짓는 남편과 달리 나는 매일 정성을 쏟아 글밥을 짓는다. 매일 한 끼 글밥이라는 알빰님의 블로그를 통해서 글밥 짓는 일을 작년부터 해오고 있다. '글밥 짓기'라는 표현이 참 좋다.


고슬고슬 따뜻한 밥을 짓듯이 매일 한 끼 글밥을 짓는다는 말이 내 삶에 들어왔다. 어떤 날은 죽을 쑤고, 어떤 날은 설 익은 밥을 하는 날도 있다. 기가 막히게 윤기도는 찹쌀밥이 지어 쌓인 나의 글밥들을 보면 한 끼 든든하게 먹은 것처럼 배가 부르다.


남편이 닭볶음탕을 완성하기 위해서 재료를 썰듯이 나는 글을 위한 소재를 일상에서 찾아 다듬는다. 남편이 레시피를 찾아서 숙지하는 동안 나는 책 혹은 다른 정보와 나의 글을 연관시킬 수 있는 것이 없을지 검색을 하기도 한다. 육수가 우러나기 위해 남편이 닭볶음탕을 푹 고으는 것처럼 나는 글을 쓴 뒤 다시 또 글을 읽으며 퇴고한다. 음식에서는 대충인 나지만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더 맛있는 한 끼 글밥을 차리기 위해서 정성을 쏟는다.


대장금처럼 타고난 능력이 아닌 이상 끊임없이 요리를 하면서 실패라는 경험들이 쌓여서 요리의 맛을 끌어올리듯 나는 매일 다양한 글밥을 차려낸다. 어떤 날은 다 태워 누룽지도 건지지 못하는 날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글밥을 짓는 일을 놓지 않는다. 한 끼라도 안 먹으면 영양실조로 힘들어지는 몸처럼 글을 쓰지 않는 하루는 나의 멘털을 강하게 흔들어 놓는 일상의 한 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오늘도 나에게 재료들을 보내면서 냉장고에 없는 것들을 사주기를 요청한다. 어떤 음식을 할지 빤히 보이는 레시피를 보면서 입맛을 다신다. 오늘은 제육볶음을 할 생각인가 보다. 퇴근 후 그가 음식을 하는 동안 나는 글밥을 짓기 위해 바쁘게 머릿속을 움직일 것이다. 자기 전에 발행하고 싶은 글은 어떤 것을 쓸지, 어떤 재료가 들어가고 레시피가 따라야 맛있는 한 끼의 글밥을 차려낼지 행복한 상상을 하며 밥 짓는 남편 옆에서 오늘도 글밥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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