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동네 서점에 출근한다.

동네 사랑방 세종 문고에서 벌어지는 세모들의 이야기

by 친절한금금

아이를 등원시키고 난 후 시계를 보니 9시 55분이다. 헐레벌떡 텀블러와 짐을 챙겨 발검음을 재촉한다. 오늘도 동네 서점으로 출근하는 길이 늦었다. 10시에 시작하는 수업에 늦지 않게 뛰어보지만 세종 문고에 발을 들여놓으면 10시 3분. 지각이다!


하지만 모두 아는 사이인지라 그러려니 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텀블러에 시원한 냉수를 담고 자리에 앉아 <늘푸른 도서관> 박소희 관장님께서 들려주시는 그림책 이야기에 집중한다.




우리 아파트 앞에는 먹자골목이 있다. 삼겹살집, 초밥집, 카페 등 다양한 식당이 즐비한 골목 한편에 세종 문고라는 동네 서점이 있다. 시아버지가 하시던 가업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계시는 세종 문고 사장님은 서점 한편에 작은 사랑방을 만들어 놓으셨다. 긴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그곳에서는 알게 모르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내가 사랑방에 발을 들인 것은 연수문화재단에서 주최하고 세종 문고에서 함께한 <우리 동네 문화 등대>를 통해 동화작가 김리하 님으로부터 수업을 들었던 "내 인생의 글쓰기"수업 덕분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서점에는 자주 방문했었다. 세종 문고 사장님과는 같은 어린이집 학부모였고 가까운 곳에 갈 수 있는 서점이라서 책을 사러 자주 방문하곤 했었다. 인터넷으로 책을 사는 것보다 서점에서 책 향기를 맡으며 사는 곳이 좋았다. 지척에 영풍문고라는 대형 서점이 있었지만 동네 상권에 내 집처럼 드나들 수 있는 세종 문고가 편했다. 책을 사러 가기만 하던 그곳에 수업을 들으러 가다니 느낌이 새로웠다.


동화작가 김리하 님으로부터 수업은 '나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해 준 뜻깊은 시간이었다. 이대로 모임이 해체되기 아쉬웠던 우리는 만남을 지속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책을 읽는 모임으로 이어갔지만 시간이 가면서 모임의 방향성은 '그림책'이라는 주제로 또렸해졌다. 같은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었고 그림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었다. 비록 나는 그림책에 문외한이었지만 나에게는 시누에게 받은 고전 그림책이 많았다.


세종 문고 통유리로 비치는 햇살을 받으며 그림책을 선정해 온 분이 들려주는 책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들에게 들려주기만 했던 그림책을 누군가 나를 위해 들려주는 순간이 이색적이었던 것 같다. 감상에 젖어 그림책을 듣고 난 후에는 그림책 속에 담긴 이야기에 대해 말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단순한 그림에 대한 이야기부터 그림으로부터 비롯된 나의 이야기를 꺼내다 보면 얼핏 잊고 지냈던 '나'를 마주하게 했다. 이 순간이 좋아서 세종 문고를 향한 발걸음이 멈추지 않았던 것 같다.


세종문에서 진행된 그림책 모임은 <오늘의 어린이 책>을 통해서 그림책으로 배우는 성인지 감수성 수업까지 이어졌다. 세종 문고라는 공간과 좋은 선생님에게 배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신 분들의 노력이 이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램책 x성교육>을 통해 성교육이라고 하면 남자와 여자, 정자와 난자가 다라고 인식되던 것을 타파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에는 성이라는 것을 통해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시대다. 정자와 난자를 가지고 태어난 우리는 서로 다른 존재일 수밖에 없다. 흑인, 백인과 같이 인종이 다르고 할아버지, 엄마, 아빠와 같이 다양한 양육자에게 아이들이 자라기도 한다. 이거 아니면 저거로 귀결되는 흑백 논리가 아니라 너와 나의 다양성을 존중할 수 있는 올바른 성인지 감수성에 대하여 배울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을 세종 문고에서 서현주 선생님을 통해 배웠다.




최근에는 환경모임을 세종 문고에서 가지고 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사장님은 연수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주민들을 대상으로 환경 모임을 모집했다. 사장님은 항상 핸드폰을 5년 이상 사용하고 있는 나에게 말씀하신다.


"정말 환경을 사랑하는 분이세요"


내가 환경을 사랑한다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환경에 대한 죄책감은 가지고 있지만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는 나에게 환경 운동가라고 말씀하시다니, 나를 놀리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사장님 말씀을 생각해보니 나도 환경 보호에 일조하고 있기는 했다. 예전에는 최신 핸드폰이 나오면 바꾸기 일수였지만, 최근에는 신형과 구형의 기능이 평이하다는 판단하에 핸드폰을 바꾸지 않고 있다. 사실 아이들 사진을 찍는 것이 취미인 나는 최신 폰으로 다양한 모습에 아이들이 담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장님께서 하신 말씀이 자꾸 귀에 맴돈다.


"금금님은, 환경 운동가예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던데 세종 문고 사장님의 한마디가 씻지 않고 요구르트 병을 버리던 나를 싱크대에 한 번 서게 하고, 어딘가를 이동할 때는 텀블러를 이용하는 습관에 길들여지게 했다.


환경모임에 참석한 주민들 중에는 이미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시는 분들도 계셨다. 대나무 물티슈를 사용하거나, 천 장바구니를 이용하거나, 친환경 세제를 이용하는 등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지구를 사랑하고 계셨다. 환경 모임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앞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탐색해 볼 수 있는 알찬 시간이 되었다.




세종 문고에서 쏘아 올린 작은 공으로 퍼져 나가는 효과들이 크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분리수거를 할 때 진심이 되고 그림책에 대해 전보다 많은 것을 알아가는 나를 보며 느끼게 되는 단편적인 생각만은 아니다.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 "지역주민과 소통하고 함께 성장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모여서 작은 우리 동네가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다.


<호박이 넝쿨째> 이지현 작가님과 세종 문고가 진행한 우리 동네 문화 등대 <자연 공작소>를 통해 생태계를 배운 아이가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철새에 대해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저어새"라고 당당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환경과 자연에 대해서 나도 모르는 사이 스며들게 알려주는 세종 문고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동네 아이와 어른 모두가 이곳에서 성장하고 있다.


세종 문고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진 <세모>에는 그림책으로 연결된 주민 4명이 꾸려가고 있다. 추진력이 뛰어난 모서리, 꾸준함을 지니고 있는 모서리, 사업을 구상하는 모서리, 기록에 진심인 꼭지들이 모였다. 환경, 그림책, 성장, 육아 등 다양한 부분에서 고민하고 성장을 꿈꾸는 세모가 세종 문고라는 사랑방 안에서 앞으로 어떤 모양으로 변화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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