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추앙하는 사람들

나의 해방 일지를 보고 느낀점

by 친절한금금


"금금님만의 글이 좋아요."


인사치레일지라도 답글로 전해지는 따뜻한 추앙의 한마디가 오늘도 나를 살린다. 갑갑한 속을 차갑게 식히려 맥주로 뻗어지는 손을 내릴 수 있게 하는 추앙의 힘.


아이 둘을 키우며 나를 잊고 있을 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그림일기를 그리기 시작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인데 일기를 공유하니 몇 번 본 사람처럼 친근하다. 코로나로 인해서 사람 구경도 못하고 아이들만 마주하는 현실 속에서 일기를 통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그들에게 스며드는 일은 일상을 새롭게 하는 마법의 한 스푼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나를 추앙했다. "금금님, 그림 개성 있어요" "금금님, 일상이 즐거워 보여요."


금금이라고 이름이 불리는 것부터 추앙은 시작됐다. 24시간 아이들의 손발이 되기 위한 부름의 신호탄으로 불리던 "엄마"가 아니라 "나"를 불러주었다. 그리고 따뜻한 추앙의 한마디가 더해지니 커뮤니티에 대한 애정은 깊어져 갔다.


막내가 4살이 될 때까지 나는 매일 맥주 2캔을 마시고 잠이 들었다. 알코올이 주는 약간의 몽롱함과 울렁거림이 필요했다. 그런 내가 요새 냉장고 속 맥주로 향하던 손을 타자 위에 올려놓고 있다. 나를 추앙해주는 분들과 함께 브런치에 일주일에 한 편의 글을 발행하기로 하면서 나의 손과 머리는 분주해졌다.


일주일 동안 머릿속은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주제가 정해져도 어떤 식으로 쓸지 방향을 생각하고 전개를 고민한다. 나의 사심을 털어놓는 편한 블로그 글 쓰기가 아니라 누구나 읽어도 공감되고 이해가 가능한 작가로서의 글을 발행하기 위해 머릿속 발품을 판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은 무료함을 벗어나는 원동력이 된다. 일주일에 한 편 발행해야 하는 브런치 글쓰기는 어느새 나의 삶에 해방일지가 되었다. 글을 쓰면서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들을 풀어내니 깊은 곳에 가라앉아있던 내가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쓰며 느낀 것은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좋아하더라도 육아에 지쳐서 쓰지 못할 수도 있는 환경일 텐데 이렇게 꾸준히 이어 갈 수 있었던 것은 나를 추앙하는 이들 덕분일 것이다. 오늘도 글을 잘 봤다는 댓글 하나에 가슴이 차오르고, 손가락 한 번의 터치로 전달되는 라이킷에 힘이 솟는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나의 해방 일지>에서 미정은 추앙하면 변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높이 받들여 우러러본다는 사전적인 말 대신 "너를 생각하는 존중의 표현"이라고 여기고 싶다. 구 씨가 미정을 위하여 트럭으로 지하철 역까지 태워다 주는 일, 미정을 위하여 라면을 끓여주는 일, 너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라는 말 한마디 모두 미정을 생각하는 존중의 행동이었다.


"인간관계는 노동이다"라고 말하던 미정을 구 씨의 추앙이 "이제는 내가 사랑스럽게 느껴져요"라고 바꾼 것처럼 추앙의 힘은 대단하다. 전업주부로 살면서 애 키우고 살림하는 일이 당연한 나를 추앙해주는 좋은 사람들 덕분에 요새는 나도 내가 사랑스럽다.


나 또한 함께하는 이들을 존중의 마음을 담아 매일 추앙한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각자의 희로애락이 있는 우리들에게 다른 곳에서 지치고 힘든 마음이 있었을지언정 서로를 향하는 따뜻한 존중의 말로 추앙하면 위로가 되고 때로는 단단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나의 해방 일지> 마지막에 미정은 구 씨에게 환대하라고 했다. 드라마를 보면서 평소 쓰지 않는 "추앙"이라는 말과 "환대"라는 말이 어색하지만 곱씹을수록 자존감을 높여주는 말들이다. 말할수록 생각할수록 내가 높아지는 느낌이 드는 단어라서 계속 쓰고 싶은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도 나는 지금과 같이 함께 걸어가는 이들을 추앙하고 추앙받으며 환대할 것이다.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하는 말들로 서로 추앙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해방의 문을 두드리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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