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밖에 있는 나를 찾아서
나를 찾아 나가는 길
우리 집에는 그림책이 많다. 내가 산 몇 권의 그림책을 제외하고는 시누에게 물려받은 그림책이 대부분이다. 아이를 낳지도 않은 내가 그림책을 받았을 때는 이렇게 많은 책이 필요할까? 의심했다. 아이가 자라나 그림책을 읽어주려고 하니 재밌고 예쁜 그림으로 된 책은 몇 권 되지 않아서 장식용으로 꽂아만 두었다. 큰 아이가 6살이 되면서 동네에 있는 분들과 그림책 모임을 하게 되었다. 서로 좋았던 그림책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눠보면서 아이들에게 좋은 책들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모임의 시간이 늘어날수록 내가 장식처럼 꽂아뒀던 전리품이 얼마나 가치 있는 그림책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앤서니 브라운, 모리스 샌닥, 에릭 칼 등 그림책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알만한 유명 그림책이 우리 집에 있었던 것이다.
최근 온라인 스터디 모임에서 "킵고잉 100일"이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100일밖에 남지 않은 2022년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서 큰 마음먹고 신청했다. 자신이 원하는 한 가지를 매일 100일 동안 수행한 뒤 블로그에 포스팅을 남기는 간단한 미션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하루에 한 권 읽어주기로 했다. 하루에 그림책 한 권 읽어주는 게 어렵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한 달에 한 권을 읽지 않고도 살아가는 불량 엄마이기 때문에 킵고잉 100일이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하루 한 권 그림책 읽기 습관을 장착하고 싶었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곰이 쑥과 마늘을 100일 동안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신화의 내용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나라는 사람은 유동적 꾸준함을 지닌 사람이다. 매일 같은 일을 하는 것이 힘든 사람이지만 장기간으로 봤을 때 끊이지 않고 지속하는 힘은 가지고 있다. 디지털 드로잉, 그림일기, 블로그 포스팅, 브런치 글쓰기 등 매일 하지는 않아도 2022년 1월을 기점으로 놓지 않고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나의 루틴은 유동적이다.
그림책을 읽으며 포스팅을 하는 것은 즐겁다. 그림책에는 나의 일상이 녹아져 있어서 책의 내용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포스팅하는 순간이 즐겁다. <할머니의 조각보>라는 그림책을 읽고는 나의 유년시절 외할머니가 사주신 담요가 떠올랐고, <갈색곰아, 갈색곰아 무엇을 보고 있니?>를 읽고는 최근 수업 듣고 있는 영어 그림책 읽기 지도사와 관련된 글로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 등원하는 막내와 인사하는 순간에 뭉클함은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라는 그림책으로 내 마음을 드러낼 수 있었다.
어제는 어떤 책을 읽고 나를 돌아볼까 고민하는데, 아이들이 소파에 올려둔 책이 눈에 들어왔다. 플라톤 원작의 <동굴의 비유>라는 철학 동화였다. 그림책 뒷면에 소개된 글을 보니 그림책의 내용이 더 궁금해졌다. 간단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동굴 안에는 쇠사슬로 묶여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희미하게 비친 빛으로 만들어진 그림자만을 보고 살았다. 사람들은 그림자를 진짜라 믿고 살아왔다. 어느 날 그림자에 대해서 의문을 품은 사람이 쇠사슬을 끊고 밖으로 나갔다. 험난한 길을 빠져나간 곳은 굉장히 아름다웠다. 이렇게 좋은 것을 혼자 볼 수 없어서 동굴 밖으로 나올 때 보다 더 힘들었지만 사람들이 있는 동굴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가 보고 온 바깥세상을 이야기하며 함께 나가자고 했다. 동굴 속에만 있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그를 따라 빛을 따라 동굴 밖으로 나갔다.
그림책을 읽으며 고전의 힘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플라톤이 말한 이론을 토대로 파생된 도서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은 사람들 안에서 파란 하늘이 보이는 새로운 세상을 동경하고 모험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바깥세상이 있다한들 우물 안이 전부라고 믿는 개구리들은 미끄러운 우물 벽을 밟고 치여가며 험난한 세상 밖으로 나가기를 꺼려한다. 생긴 대로 살면 아무런 탈이 없는데 굳이 힘든 일을 자처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우니까.
내가 동굴 밖으로 나온 것은 2년 전이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사회관계망에 한발 들어섰고, 다양한 온라인 스터디를 통해 네트워크 상에서 확장된 인간관계와 지식의 폭을 넓혀갔다. 같은 관심사와 결을 가진 사람들이 시너지를 만드는 온라인 카페에서 서로를 응원해주고 더 나은 길로 나아가기 위해 함께 연구한다. 벽돌책 <코스모스>를 읽고 고전 <논어>를 필사하며, 디지털 드로잉과 그림일기로 정서적 교류를 하면서 우리는 성장의 동행을 해가고 있다. 나보다 먼저 동굴 밖을 나갔다 온 사람들이 내민 손을 붙잡고 환한 빛이 있는 곳으로 험난한 동굴 길을 기어서 나아가는 중인 것 같다.
킵고잉 100일을 한 지 11일 차가 되었다. 개천절에 <단군신화>를 읽으며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내와 끈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재미없고 힘들어 보일 수 있는 것들일 수 있다. 하지만 유동적인 꾸준함으로 1월의 그림과 10월의 그림은 확연한 차이를 보였고 나만의 느낌이 곁들여 지기까지 했다. 블로그와 브런치 글쓰기 또한 처음 글을 쓸 때보다 소요되는 시간이 줄고 글의 구성 부분을 고민하기도 한다. 300일이 지나는 시간 동안 꾸준히 해왔던 일들이 변화된 나를 만들어 가고 있다.
아이를 키우고 집을 치우는 것만이 나의 전부라는 생각에 깊은 암흑 속으로 빨려가는 기분으로 살아왔다. 가족과 함께 있지만 엄마는 있고 나는 어디에 있을까 고민하며 수렁 속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동굴의 비유> 뒷 표지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이 있다. 나는 아이를 키우며 심심하면 티브이를 보고 그냥저냥 하루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안락함 뒤에 숨겨진 안일함의 동굴을 벗어나고 싶었다. 나보다 먼저 동굴 밖을 다녀온 사람들을 통해 향기로운 꽃과 맑은 공기가 있다는 것을 배웠으니, 그곳을 향해 나만의 속도로 따라가게 되었다.
지금 나에게 동굴밖에 나가는 것은 나 자신을 찾아 가는 일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방대한 질문 아래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내가 잘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어둡고 좁은 동굴벽을 손바닥을 짚으며 걸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분명 빛이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더 바란다면 아직도 그림자가 전부라고 믿는 동굴 안 사람들에게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