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냉장고 청소해 주시는 시어머니

응석 부리고 싶은 막내딸 같은 며느리

by 친절한금금

"다른 며느리들은 이런 거 청소해주면 엄청 싫어하던데, 절대로 너를 추잡스럽다고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니라, 할 일이 없어서 요고 조고 손 보며 하는 거니까 절대로 절대로 안 좋게 생각하지 말아"


어머니는 오늘도 며느리의 냉장고를 청소하신다. 어머니의 레퍼토리는 항상 같다. 동네 헬스장에 청소해 주는 사람이 없는데, 백내장 수술을 하시고 난 뒤 머리카락이 너무 잘 보여서 돌돌이를 들고 내 집처럼 청소를 하신다고 한다. 며느리인 내가 청소를 안 하고 게을러서 어머니가 나서는 것이 아니고, 며느리를 흉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절대로 마음 쓰지 말라고 하신다. 그러면 나는 대답한다. "어머니, 너무 죄송한데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하하하" 너털웃음을 지으며 청소하시는 어머니 옆에 붙어있으면 어머니가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너처럼 웃으면서 좋게 받아들여주니 하는 나도 좋구나"라고 말씀하시며 냉장고에 있는 반찬통을 일열 종대로 맞추고 버릴 음식들을 정리하신다.


나는 살림이 죽어도 싫은 주부 중에 한 명이다. 이 나라 어디 한 구석에 나처럼 살림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만큼 살림을 해가고 있다. 하지만 정리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나의 집을 본다면 뒤집어 놓고 싶은 것들이 하나 둘이 아닐 것이다. 부산에서 살고 계시는 어머니가 한 달에 한 번 우리 집에 방문하실 때면 백내장 수술로 눈이 밝아진 어머니에게 하나 둘 포착되는 것들이 있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힘드실 테고 나의 치부일 수도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미리 대청소를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사람의 근성은 변하지 않고 살림보다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 나는 결혼 10년 차에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나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어머니는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신다. "가서 블로그 써~그래야 내가 읽을 게 생기지" 내 블로그 글의 1호 팬인 어머니는 며느리가 글을 쓰고 취미 생활하는 것들을 적극 장려하시며 나의 살림을 하나 둘 해치워 나가신다.


어느 날에는 딸과 산책을 다녀오라고 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에 가볍게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왔다. 집에 들어서려는데 현관문이 열려 있는 것이 아닌가. 열린 문틈 사이로 쭈그리고 앉아서 물티슈로 현관 바닥을 청소하는 어머니가 보였다. 보다 못한 남편이 어머니를 만류하며 본인이 마무리를 지었다. 머쓱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어 "어머니 죄송해요 제가 평소에 치워야 하는데..."라고 말씀드리만 "내가 소화가 안돼서 운동 삼아한 거야"라고 웃으시는 어머니다. 그러면 나는 뭐가 좋다고 헤죽거리며 "어머니, 너무 감사해요~하지만 다음에는 하시지 마세요, 이러면 제가 청소 열심히 해야 하잖아요 하하하"애써 죄송한 마음을 웃음으로 넘겨본다.


지난주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몇 년 동안 방치하고 정리하지 않은 화장대 앞에서 어머니가 움직이지 않고 계시는 것이다. 아침에 운동을 나가려다 화장대 앞에 서계신 어머니를 보고 말했다. "어머니, 제가 할 거니까 절대 손대지 마세요" 신신당부를 하고 나섰다. 한 시간 뒤 돌아와 보니 어머니는 아직도 화장대 앞에 계셨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내 화장대를 싹 정리하실 거라는 걸. 죽어도 하시 싫었던 화장대 정리였는데 이 기회를 빌어 어머니의 손을 빌리고 싶은 얄팍한 마음이 한구석에 있었다. 결국 어머니는 화장대를 말끔하게 정리하셨고, 화장대 앞을 지나가던 나의 딸은 "와! 화장대가 엄청 깨끗해졌어"라고 눈치 빠르게 이야기를 했다.


이번에도 나는 비장의 무기인 너털웃음으로 어머니의 노고에 대해 죄송함과 감사함을 전했다. 어머니는 "나도 너 때는 아무것도 하기 싫고 설거지는 매일 쌓아두고 그랬는데, 나이가 들수록 희한하게 자꾸 하게 되더라. 너무 신경 쓰지 말어. 때가 되며 다 하니까, 너는 지금 아이 둘 키우고 네 일 하는 것만으로도 많이 바쁘잖아"라고 말씀하신다. 다 거짓말이다. 어머니는 예전부터 부지런하셨다. 시누와 연년생 쌍둥이 아들을 냉장고와 세탁기 없는 시절에 살뜰히 키워내신 분이다. 혹여나 이렇게 나서는 시어머니를 며느리가 불편해하거나 부담스러워할까 봐 혹은 살림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지 걱정하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나는 안다.


이렇게 며느리 냉장고 청소를 해주시는 시어머니가 동서 집에 가서는 우아하게 커피만 드신다고 한다. 나와 정반대로 정리를 꼼꼼하게 하고 살림에 일가견이 있는 동서의 집은 모델하우스처럼 깨끗하다. 어머니의 손길이 필요한 지점이 한 구석도 없다. 편안하게 티브이를 보시고 차를 마시며 안락한 소파에서 여유를 부시실 수 있는 것이다. "어머니는 우리 집에 오면 편하게 커피 드시고 계셔요"라는 동서의 말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바뀌지 않을 것을 안다. 오히려 나는 어머니에게 응석을 부리고 싶기도 하다. 싱크대를 말끔하게 정리하신 어머니에게 "와~~~ 어머니가 싱크대에 손 만 갖다 대면 번쩍번쩍 빛이 나요!"라고 칠푼이처럼 말하는 나를 막내딸처럼 바라봐 주시는 시어머니에게 기대고 싶다.


이제 칠순이 넘으신 시어머니는 4년 전에 자궁암 수술을 받으시고 많이 회복이 되신 상태다. 평소 본인의 몸 관리를 철저히 하시기 때문에 영양제와 보조 식품들도 잘 챙겨 드시고 운동도 쉬지 않고 계신다. 하지만 연세가 있으시고 수술 후 자주 찾아오는 소화불량으로 고생하시는 걸 보면 여간 마음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그저 어머니가 건강하게 오랜 시간 우리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 '어머니~'라고 부르는 콧소리로 아양을 떨며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싶은 막내딸로 오랜 시간 함께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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