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무김치 담가놓고 학교 가던 7살 금순이는 없다

by 친절한금금

시골에서 해는 유난히 일찍 뜬다. 새벽 4시 창호지를 통과하는 빛을 따라 금순이는 졸린 눈을 뜬다. 엄마는 몇 마디 말을 남겨 놓으신 채 부지런히 나가신다. "금순아, 콩밭에 가서 열무 좀 따다가 김치 좀 담가놔라". 앞치마를 둘러메고 부지런히 논길을 걸어 콩밭으로 향한다. 이슬 맺힌 열무를 한 줌에 따서 소쿠리에 한 움큼 담아 집에 가져온다. 가난한 집에 재료라고 할 것 뭐가 있겠냐만은, 나의 손이 닿으면 다들 맛있다며 군침을 훔치고 먹기에 바쁘다. 제법 뻘겋게 담가진 김치를 아궁이 멀리에 놓고 보자기에 학교 갈 채비를 한다. 말 안 듣는 말순이의 코를 옷소매로 훔쳐주고, 혹여 잃어버릴까 손을 꼭 잡은 채 드디어 학교에 간다.


나는 공부가 '참' 좋았다. 선생님은 "금순이는 문학을 잘하는구나"라고 종종 칭찬하셨다. 셈도 잘했지만 국어에 소질이 있었던 나는 학교에 가지 못하는 동생들을 모아놓고 밤 선생님이 되어 가르치기도 했었다. 나는 무언가를 하면 끝을 볼 줄 알았고, 모든 일에 욕심도 있는 7살 여자 아이였다.


어느 날 선생님이 등록금을 내지 않은 아이들을 모아 밖에서 벌을 세웠다. 당연히 동생도 내 옆에서 저린 팔을 어쩔 줄 몰라하며 베베 몸을 꼬고 있었다. 말순이는 공부에 취미가 없는 것 같은데 학교는 가고 싶은 모양인가 보다. 엄마에게 학교에 갈 등록금을 달라고 바득바득 애를 쓰다 마당 옆에 있는 대빗자루로 먼지 나게 두들겨 맞는다. "여자가 학교는 가서 뭐혀". 나는 말을 아낀다. 가난한 형편과 여자라는 이유로 등록금을 대주시지 못할 것이 뻔히 보였기 때문에 입을 떼지도 않았다. 그렇게 글공부와는 멀어진 것이다. 나는 참 공부가 좋았는데 말이다.




새벽 두 시 어머니와 술 한 잔 기울이며 머나먼 과거 속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어머니는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라며, 잘 기억해 두었다가 남편이나 시누에게 우스갯소리로 전해달라고 하셨다.


어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다 '성격'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도 알고 있었지만 어머니는 완벽주의 성향이 강하신 데다가 욕심도 있으신 분이다. 어려서는 공부에도 큰 뜻을 품으셨던 것 같은데 가정 형편과 시대적인 상황들에 의해서 이어가지 못한 학업에 눈물을 고이셨다.


<EBS 여성 백년사- 그때도 틀리고 지금도 틀리다>가 11월 7일부터 9시 40분에 3부작으로 전파를 탔다. 어제 방영된 2부에서는 우리나라 최초 여자 경제 학사 최영숙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자비로 스웨덴에 유학을 가서 경제학을 배웠다고 했다. 돈이 없어 빚을 지고 공부하면서 아르바이트로 돈을 갚아가며 먼 나라에서 졸업을 했다. 머리가 좋아 5개국에 능통했던 최영숙은 고국에 돌아와 무엇을 했을까?


방송에서 보기에 나온 것은 기자, 교수, 외국어 선생님, 콩나물 장사 등이 있었다. 당연히 답이라고 생각했던 기자와 교수와 같은 직업은 정답의 과녁을 시원하게 비껴갔다. 최영숙은 고국에 돌아와 콩나물 장사를 했다. 최영숙이 취업을 하려고 했던 당시, 세계 대공항과 함께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도 좋지 않았다고 한다. 기자, 교수 등에 취업을 하기 위해서 원서를 넣었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금도 OECD 국가 중에서 유리천장 지수(각 나라별 여성들의 고위직 진출을 가로막는 방해 요소를 수치화 한 지수)높은 우리나라에서 그 당시 신여성의 취업 비율은 1%에도 못 미쳤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일본인에 비해 절반의 임금을 받았던 조선 남자들이 있었다면, 이중 차별을 받았던 조선 여자들은 그의 절반을 받아야 했다. 취업도 힘들었을뿐더러 노동에 대한 임금에서 조차 심한 차별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인이라서 그리고 여성이라서 취업이 힘들었던 최영숙은 결국 시장 한편에서 콩나물 장사를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잘 되지 않아서 영양실조 상태까지 이르게 됐고 과중한 스트레스까지 겹쳐 결국 하늘로 가고 말았다. 스웨덴에서 여성들의 자유로운 사회생활에 감명받은 최영숙은 고국에 돌아와 조선 여성과 노동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애쓰고 싶었지만 꽃도 펴 보지도 못한 채 목이 꺾여 버렸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다른 세상을 실제로 탐험하고 우주를 심층 탐사할 수 있는 시대에 살 수 있게 된 것도 내게는 엄청난 행운이었다. 만일 내가 더 앞선 시대에 태어났다면 나의 의지가 아무리 강했더라도 나는 별이나 행성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코스모스-칼 세이건>


우주의 질서를 이야기하는 코스모스 책에는 위와 같은 이야기가 나와 있다. 코페루니쿠스의 지동설은 당시 지구를 중심으로 하는 종교적 신념에 의해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케플러, 갈릴레이, 뉴턴을 거쳐 지동설이 인정받았지만 잘못된 이론이 수정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칼 세이건은 자신을 행운아라고 한다. 내가 별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연구하고 싶어 할 때 이를 위한 시대적인 분위기가 변했고 조상들이 쌓아온 자료들이 축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지위는 100년 사이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남녀칠세부동석( 男女七歲不同席)이 당연했던 시대에서 이제는 서로 마주 앉아 식사를 한다. 남성만의 전유물이라고 여겼던 직업군에 여성들의 비율이 높아져만 가고 있다. 물론 아직도 우리나라는 유리천장 지수가 10년째 꼴찌인 것은 사실이다. 줄곧 1,2를 하고 있는 스웨덴과 비교하면 아직도 이런 현실에 씁쓸하기만 하다.


하지만 며느리의 글쓰기를 비난하던 허난설헌의 시어머니 같은 분들이 줄어들었다.(나의 시어머니는 오히려 며느리의 글쓰기를 독려하신다.) 5개 국어가 능통하고 스웨덴에서 경영학사를 졸업한 유능한 최영숙 같은 인재라면 여기저기서 데려가려고 하는 시대에 나는 살고 있다.


칼 세이건처럼 나도 지금 시대에 살게 된 것을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쓰고 싶은 글을 자유롭게 쓰고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글동무들이 있다. 배우고 싶은 것들은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온라인상에서 함께 스터디하고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린 자녀를 키우고 있어서 전업으로 주부로 있지만 아이들이 등원하고 난 황금 같은 이 시간에 나를 위한 성장의 물줄기를 기울일 수 있는 '시대의 변화'에 감사한다. 지금의 행운을 누리기까지 지난 100년간 애썼던 분들의 노고를 잊지 않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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